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모두 각자의 운명이 있다. 어느 가정에 언제 어느 때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 살아간다. 싫거나 좋거나 그 운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평생토록 쫓아다닌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그만큼 운명이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느 때 태어나서 누구의 짝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들은 어쩌면 오래전 태고적에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고생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고생하지 않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불공평하다.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생각지 않던 일들이 생기고 그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힘들게 일하며 나는 왜 이렇게 매일 일만 하고 살아가는가 라고 생각해보면 누가 시킨 것이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것이다. 매일 부모형제 그리움에 가슴 조이며 살아가는 것도 역시 내가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럴 운명을 타고나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지만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다. 비록 슬픈 운명을 타고났어도 기쁘고 활기차게 사는 것을 내가 선택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사지가 멀쩡 하니 건강하여 일하는 것이고 그리움도 언제인가 만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가? 운명은 어찌 보면 또 다른 운명을 낳는 건 아닐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내가 만든 운명인가 아니면 운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간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그것을 선택했기에 걱정 속에 살아가는 것이고, 걱정이 있어도 다른 방향으로 걱정을 이끌고 가면 감사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길을 가다가 앞으로 넘어져 코가 깨졌다면 다행이라 생각하자. 만약 뒤로 넘어져 머리를 다쳤으면 아찔한 일 아닌가? 운명은 어찌 보면 거꾸로 받아들임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일 것이다. 모든 후회와 미련은 과거를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데 어차피 다시 돌아 올 과거가 아니면 생각을 접어야 한다. 흘러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의 나를 보며 운명을 받아들여야 내일 또한 나에게 올 것이다.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 인지 내가 운명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나의 최선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약 오르고 화나는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당한 그 순간을 참을 수 없어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린다. 하지만 결국 그 화나 신경질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화가 나면 기분이 나빠지고 더 나아가서는 좋게 해결될 일도 나쁜 방향으로 흘러간다. 주위 사람들이나 지나치는 사람들과도 그 나쁜 기분으로 하여금 말이나 행동이 거칠어져 또 다른 다툼을 잉태하게 되고 생각지 못한 엉뚱한 일이 생긴다. 화는 다른 화를 만들어 다시 나를 덮친다.
계산대에서 기다리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그러나 언제나 기다리는 줄이 짧을 수는 없다. 그래도 몇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기다려본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항상 반대다. 길고 짧고를 막론하고 내 차례가 되면 꼭 이변이 생긴다. 앞사람의 물건에 가격표가 없거나 캐시어가 바뀌어 돈통을 바꾸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다 보면 옆줄에 나보다 훨씬 뒤에 서있던 사람은 이미 계산을 끝내고 간 시간이다. 앞일을 모르는 것이 세상살이 이라지만 약이 오른다. 그렇다고 내가 빨리 가서 해야 할 그 무엇도 없는데도 줄을 서서 보내는 시간이 싫을 뿐이다.
매번 물건을 살 때마다 생기는 이변에 대해 연구를 해 보았다. 어찌하여 내 줄에만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일까? 다른 줄은 문제도 없고 캐시어도 바뀌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자꾸 생기니까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를 이끄는 것 이 아닐까? 내가 기다리지 않았으면 아니면 내가 빨리 나갔으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급하게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을지도 모르고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어쩌면 계산대 앞에서 일어난 일들 덕분에 이렇게 안전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앞사람이 고마워졌다.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음에 고맙고 돈통을 바꾼 캐시어가 감사했다. 모든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빨리빨리의 세상이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기다리기 싫어하여 카드로 돈을 내고 셀프 체크 아웃 계산대를 이용한다. 캐시어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기계를 몇 개 진열하면 여러 명이 각자 계산을 할 수 있으니 효율적이다. 하지만 기계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기계만 사용하다 보면 기계가 하라는 대로 하며 사람도 기계화되어간다. 카드를 넣고 물건을 올려놓고 백에다 집어넣고 카드를 빼서 지갑에 넣고 나간다. 그 누구의 간섭도 방해도 받지 않지만 왠지 우리 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든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 같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기계 앞에서 기다리지 않으니 화가 날 일도 없고 신경질도 안 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어찌 기계와만 살 수가 있는가?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일이 생겨 약간의 시간이 지체되어도 이제 나는 일어날 문제를 감안하며 긴 줄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린다. 앞사람과 뒷사람과 이야기하고 캐시어와 안부를 묻는다. 빨리 나가야 할 이유도 없고 나가서 급히 만날 사람도 없다. 기다리며 나의 운명은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 기다리기 싫어 짜증을 내기보다 기다리며 즐기자. 옆사람과 인사하고 살아가는 얘기도 해보자. 이런 즐거움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어떤 날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말도 몇 마디 안 하고 사는데 일부러라도 나와서 앞뒤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며 살아야겠다.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본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아간다. 운명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겨울 없이 오는 봄도 없고 아프지 않고 피는 꽃도 없다. 세상에 필수는 없다. 오직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선택한 길을 힘차게 걸어갈 때 행운이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