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국수에서 봄을 만난다

by Chong Sook Lee




완벽한 봄날이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뜰을 걸어본다.
원추리는 하루가 다르게 파랗게 자라고
부추와 파도 앞을 다투며 땅을 헤집고 나온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얼었던 튤립도 자리를 잡고

봉우리를 만드느라 바쁘다
봄은 이렇게 다시 나를 찾아온다
아직은 죽은 듯이 서 있는 나무들이지만
자세히 보면 겨울을 살아남고 봄을 만들고 있다
크고 작은 움들이 트고 꽃을 피울 준비 중에
하루하루 속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엊그제 손톱만 하던 움들은 어느새 이파리처럼

바람에 날린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추웠던 겨울은

어느새 잊히고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점심때가 다가온다.
무엇을 해 먹을까
시원한 오이냉국에 국수나 말아먹을까
아니면 신김치 송송 썰어 넣고
상추 잘게 썰어 넣고 오이 얇게 채 썰어서
고추장 한 숟갈 넣고 비빔국수를 해 먹을까
날씨가 좋아 무엇을 해도 맛있지만
아무래도 한여름이 아니니 비빔국수가 좋을 것 같다.




물이 팔팔 끓는다.
국수를 넣어 휘리릭 저어준다
프라이 팬에 계란 프라이를 한다
도마에 오이를 채 썰고
상추도 가늘게 썰어 놓고
신김치도 잘게 썰어놓는다
국수가 익어간다
익은 국수를 씻어서 사리를 그릇에 담는다
고명으로 썰어놓은 오이와 상추와 신 김치를 얹어 놓고
계란 프라이를 예쁘게 올려놓은 다음
깨소금을 뿌리고 참기름을 넣는다

너무 이뻐서 먹기가 아까워 사진을 찍는다
젓가락으로 예쁘게 올려놓은 고명을
훌떡 뒤집어 섞는다
예쁘던 고명이 국수 밑에 깔리고
옆구리를 뒤집으면 빨간 얼굴로
인사를 한다.
국수 사이사이로 들어간 고명이
파랗게 노랗게 빨갛게 먹어달라고 한다
국수를 돌돌 말아먹으면
입안에는 새콤 달콤 매콤이가 만나서
신나게 논다
더위를 식히고 마음도 삭히며
국수를 베어 물은 입술은 빨갛게 물이 들고
화장지에는 입술 모양이 찍힌다




맛있는 것을 찾으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국수 몇 가닥에 고명 몇 가지로 행복할 수 있다.
여행을 멀리 가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멋진 호텔에서 잠을 자며 대접을 받으면 좋겠지만

날씨 좋은 날 조촐한 비빔국수 한 그릇에도 행복은 피어나고 사랑은 자란다.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며 꿈을 키워가지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며 꿈을 찾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찾을 수 있는 행복이라면 어쩌면 보이는 곳에서 더 쉽게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 말라는 것이 많고 가지 말라는 곳이 많은 요즘에 자유를 빼앗겼다 생각하면 억울하다.
우리가 살았던 시대는 어른들이 살았던 시대와는 다른 것처럼 시대가 변하고 있을 뿐이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고 눈보라가 불어도 계절이 오고 가듯이 시대도 변한다.
오늘 먹은 비빔국수로 행복하듯이 추운 겨울에는 따끈한 김치찌개나 칼국수를 먹으며 행복을 찾을 것이다.
뜰을 걸으며 새로 나온 새싹들을 보는 것도 좋고
봄이 왔는데 죽은척하고 싹을 피지 않는 게으른 나무를 보는 것도 좋다.
며칠 전에 내린 눈으로 목말라하던 앵두꽃이 따스한 담벼락에 기대어 예쁘게 피어난다. 자세히 보니 수백 개의 깨알 같은 앵두 꽃송이가 다닥다닥 붙어서 준비 중이다.
오늘내일 사이에 피어날 연분홍색 앵두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싹이 나오던 꽃이 피던 모르고 보낸 세월이다.
이젠 그들을 사랑하며 내 마음도 전하고 싶다.
새들이 창가에서 울어대면 시끄럽던 시절도 있었고 단풍이 떨어지면 귀찮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나온 모든 것들은 이유가 있어 나온 것이고 가는 것도 까닭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월 따라 시대 따라 변하며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좋아하던 것을 할 수 없게 되고 기억이 희미해져 지나간 것들은 잊히지만 세상은 아직도 사랑할게 많다.

옛날이 좋았다고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옛날이다.
오늘이 온 이유를 생각하며
오늘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옛날에 하지 못했던 사랑을 해야 하고
보지 못했던 것을 만나야 한다.
만나고 스쳐 지나간 날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지금부터 만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 꽃잎 하나도, 나뭇잎 하나도, 스쳐 지나가는 바람까지도 소중하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이 순간에 내 눈을 찾아오고 내 귀를 찾아온 모든 것들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한 사랑을 전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감사해야 한다.

여름 같은 봄날이다.

겨울은 틈새를 노리며 앞으로 몇 번 더 다녀 가겠지만

오늘은 오늘의 봄 속에서 행복을 찾으면 된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맛있는 비빔국수 한 그릇에 행복한 봄날이 온다. 봄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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