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인데 내가 아닌 나로 산다. 펄펄 뛰며 정신없이 살았는데 요즘은 조용히 산다 특별히 피곤하지도 않은데 기운이 없어 앉아있는 것도 힘든지 자꾸 눕게 된다.
그렇다고 어디가 뚜렷이 아픈 것도 아니다. 겨울에 이유 없는 배앓이로 금식을 몇 번 했더니 후유증이 이제 나타나는지 식욕도 없고 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다. 백신 2차 접종 후에 약간의 몸살기로 며칠 힘들어서 그런지 기운은 여전히 없어 무언가로 영양보충이라도 해 볼까 장을 보러 갔다.
야채를 좋아해서 몇 가지 야채를 사고 고기 있는 데로 걸어갔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우족과 도가니가 눈에 띄어서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우족과 도가니에 무를 넣고 푹 고아서 파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 한 숟갈 넣고 푸짐하게 한 그릇 먹고 나면 기운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집에 와서 곧바로 커다란 냄비에 다 집어넣고 깨끗이 씻어서 2시간 동안 핏물을 빼고 끓이기 시작했다.
멀겋던 국물이 오랜 시간이 지나니 뽀얗게 우러나기 시작했다. 일단은 불을 끄고 아침에 다시 끓이기로 했다.
아침에 기름을 걷어내고 무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고 무가 푹 익을 때까지 고았다.
진국이 뽀얗게 우러나고 무는 물렁물렁하다.
뚝배기에 국물과 썰어놓은 도가니를 넣고 푹 익은 무를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국물이 뽀얗고 도가니도 물렁물렁하게 잘 익었다.
우족에 붙어 있던 고기도 푹 익어서 입에서 살살 녹는다.
텃밭에 자라고 있는 파를 뜯어다가 송성 썰어 넣고 고춧가루 한 숟가락 넣어 밥을 말아먹으니 얼굴에 땀이 난다. 오랜만에 입맛이 돌아온 것 같이 아주 맛있게 먹었더니 기운이 생기는 것 같다.
나이 들수록 단백질을 먹으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언제부터인지 고기가 싫어졌다.
야채 조금 먹고 국 하고 밥을 먹다 보니 육식을 멀리하게 되었다. 기껏해야 삼겹살 몇 개 집어먹고 말게 된다.
뭐든지 맛있게 먹던 시절이 좋았다.
이제는 금방 배가 부르고 몇 번 먹으면 싫증이 난다.
질긴 것은 싫고 부드러운 것만 좋아진다.
언제 세월이 흘러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엄마 아버지를 자꾸만 닮아간다. 나는 안 닮았다고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놀려대셨는데 정말 닮았다.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보면 엄마의 모습이 보이고 움직임이 느린 모습이 아버지가 보인다.
소화가 안돼서 '노루모 산'이라는 소화제를 달고 사신 엄마처럼 나도 잘 체한다.물건 둔 곳을 잊어버려 보이는 곳에 놓아두는 것도 엄마 아버지를 닮았다. 나이를 먹으면 다 그런가 보다. 집안을 치웠더니 그냥 놔두라고 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옮겨놓으면 찾지 못하니까 있던 자리에 그냥 놔둬야 한다는 것을.
조금만 시끄러워도 정신없고 빨리 하지 않고 조용조용 차근차근하시던 모습처럼 나도 닮아 간다.
번잡한 것도, 소란스러운 것도, 복잡한 것도 싫다. 단순하고 간단하고 조용한 삶이 익숙해진다.
코로나로 더없이 조용한 삶에 길들여진다.
구식이 싫다고 했는데 나도 구식이 되어가고 신식은 따라가기 힘들고 구식이 좋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좋은 것 같은데 무섭고 두렵다.
잘 살아왔는데 앞으로 사는 게 겁난다. 세상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지 궁금하다.
따라가려면 숨이 차고 가만히 있으면 점점 바보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게 속은 편하다. 모르는 게 병이고 아는 게 힘이라 해도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인생이다. 최신형이 구형이 되는 시간은 하루도 안 걸린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맞다.
좋은 것,새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새것이나 좋은 것들이 매 시간 나오고 세상에 선을 보인다. 좋은 것은 좋지만 옛것도 좋다. 추억은 다 지나간 옛 것에서만 찾을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옛 추억을 돌아보는 재미가 있다.
별 볼 일 없다고 자랑할 게 없다고 하던 자신이 대견하다. 열심히 잘 살아온 내가 좋다. 곰탕을 먹으며 단순한 인생의 참맛을 배운다.
화려하고 예쁘고 갖은양념을 넣은 음식보다 단순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곰탕 같은 인생이 좋다.
뼈를 푹푹 고으면 뽀얀 국물이 나오고 고기가 물렁물렁 해지면 소금으로 간을 맞춰 송송 썰은 파를 넣고 고춧가루 한 숟갈 넣어 밥 한 공기 말아먹으면 잃었던 기운도 생기고 내일을 살아갈 땀도 흘린다. 어제가 너무 힘들어서 오늘을 즐기지 못하고 내일을 맞지 못하면 더 허망하다.
시원한 곰국 한 그릇에 기운이 난다. 내일을 살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간단하고 단순하고 맛있는 삶이 곰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