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공간이... 가져다준 행복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여기저기 쌓여있던 것들을 다 정리해서 버렸더니 시원하다. 오늘내일 미루던 정리를 하고 버릴까 말까 망설였던 것들을 없앴더니 기분이 좋다. 어차피 안쓸 물건들인데 가지고 있어 봤자 자리만 차지한다. 겨울 동안 틈틈이 모아둔 물건들은 봄청소를 하며 겸사겸사 없앴더니 공간이 보여 기분 좋다. 보는 대로 원하는 것을 사던 시절이 있었다. 필요 없는데 사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서 물건을 생각 없이 샀다. 사다 놓고 며칠은 들여다보고 만져보며 행복했다. 새 물건을 당장에 쓰거나 입지도 않고 그냥 모셔 놓는다. 물건을 살 때가 좋고 집으로 가져올 때가 좋을 뿐 옷은 걸어 놓고 그릇은 선반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세월이 가고 또 다른 옷을 사고 신발을 사다 놓고 쓰던 것을 쓴다. 막상 입고 다닐 곳도 없고 새 그릇을 쓸 이유가 없다. 쓰는 것도 아직 멀쩡한데 버릴 이유가 없어 그냥 사용하다 보면 사다 놓은 물건은 또 잊어버린다.


멋있어서 산 옷보다 편한 옷이 좋고 예뻐서 산 그릇보다 가벼운 게 좋다 보니 새로 산 것들을 안 쓰게 된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도 많고 몇 번밖에 안 쓴 것도 많다. 아이들에게 쓰지 않고 있던 물건을 선물로 준다고 했더니 싫다고 한다. 예뻐서 사고, 신형이라 사고, 기분 좋으려고 샀던 물건들이 짐이 되었다. 사람이 앞일을 알 수 없기에 정리를 하며 필요 없는 것이 많은데 멀쩡한 것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살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고 틈틈이 버리고 살았는데 세상이 변하며 삶의 모습도 변했다. 살림 잘하는 것은 구식이 되었다. 살림을 잘하는 것보다 머리를 잘 써야 하고 알뜰하게 사는 것보다 많이 벌어 잘 쓰는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 살림 많은 것이 자랑이던 시절이 가고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게 되었다. 없는 것 없는 집이 아니고 필요 없는 것이 없는 집을 좋아한다. 살림으로 꽉 찬 집보다 공간이 넓은 집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아무리 값비싸고 좋은 것도 필요 없으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옛날 물건들은 크고 무겁고 웅장한 게 멋이었다면 요즘엔 간단한 콤팩트 물건이 인기를 끈다. 여러 가지를 모아 물건 하나로 만들어 사용하면 자리도 차지하지 않고 무게도 가벼워 실용성이 좋다. 전화 텔레비전 오븐 할 것 없이 신형은 날렵하고 얇고 가벼워 사용하기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얼마 전 아들이 '에어 프라이어'를 하나 사줬다. 간단하고 빠르게 여러 가지를 해 먹을 수 있다 보니 그동안 쓰던 오븐이나 전기 프라이팬을 안 쓰게 된다. 그릇도 신발도 옷도 기능성으로 만들어 가볍고 따뜻하고 시원하며 편리하다. 이불도 솜이불이 몸에 좋다고는 하지만 무거운 이불도 싫어졌다. 덮었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워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너무 좋다. 옛날에 카시미론 이불이 처음 나왔을 때 집집마다 엄마들이 계를 들어 사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그보다 더 좋은 오리털 이불을 쓴다.


옛것이 다 나쁠 수도 없고 요즘 나오는 물건이 다 좋을 수는 없지만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이라 새로운 물건이 좋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별것도 아닌데 가지고 있는 것은 옛날 사고방식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멀쩡한 것을 왜 버리나 싶어 놔두다 보면 집안만 지저분하다. 웬만하면 버리고 살아야 하는데 몇 번 더 쓰고 버린다고 버리지 못하고 산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궁상맞아 보이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없던 시대를 살아온 세대라서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려면 미련이 생긴다. 많은 것을 사고, 많은 것을 버리고 사는 세상에 옛날 것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생각이다. 어제 치매에 걸린 부모님 집 정리를 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는 글을 읽고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치매에 걸린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이 울기도 하고 후회도 하며 자신은 절대로 아이들에게 똑같은 짐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옛날 어른들은 무엇이 되었든 버리면 큰일 나는 줄 알며 평생을 산다. 하다못해 걸레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살던 사람들이다. 물건이 흔해지면서 쓰레기 대란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새 물건들은 나오고 멀쩡한 물건들은 쓰레기가 되어가는 현상이다. 재활용 공장을 통해 다른 물건들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만 여전히 언젠가는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 사람이 태어나 늙고 죽으며 어딘가에 또 새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듯 물건들도 돌고 돈다. 안 산다고 해도 자꾸 필요한 게 생겨서 사게 되는데 요즘엔 웬만하면 백화점에 가지 않고 살아서 물건을 산지도 오래되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있는 것만 가지고도 앞으로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아이들과 살 때는 장을 보기가 무섭게 비든 냉장고였는데 지금은 며칠을 먹어도 비지 않는다. 먹는 것도 얼마 못 먹을뿐더러 옷도 역시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특별한 곳에 갈 때나 좋은 옷이 필요하지 보통 때는 편한 옷을 입는다. 옷장을 보면 좋은 옷은 그대로 걸려있는데 그나마도 만남이 없는 지금은 좋은 옷도 필요 없다. 하기야 언제부터인지 나갈 때도 편한 옷을 입기 시작한 지도 오래됐는데 걸려있는 옷들을 보면 언젠가 그 옷들도 쓰레기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옷이고 살림이고 우리가 쌓아 놓고 사는 모든 물건 중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몇 개 안된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을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건들은 사실 필요가 없다. 피아노와 전축도 먼지를 하얗게 쓰고 앉아 있는데 청소하기도 귀찮고 보물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좋은 것, 멋있는 것들은 하루가 다르게 다른 모양으로 세상에 나온다. 아무리 좋았던 물건도 세월 따라 늙어간다. 버리기 아까워도 쓰지 않는 것은 무용지물이다.


옛날처럼 부모가 물려주는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아니다. 물질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명품도 아닌 물건을 물려주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남에게 몇 푼 받고 팔기도 뭐하다. 버릴 것 골라서 버리고 재활용센터로 가져갈 것은 차고에 내놓았다. 봄청소 핑계로 밀렸던 숙제를 하여 기분 좋은 하루다. 몇 가지 버렸다고 공간이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아도 내 마음은 날아갈 듯 가볍다. 어느 날 날개가 생겨 날아가는 날이 오면 가볍게 창공을 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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