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이 될 거야. 멋진 날이 찾아올 거야. 아침에 일어나면 나 혼자 마음속으로 외친다. 어떤 날이 될지 모르지만 새로운 날에게 무언의 주문을 걸어본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여전히 먹고 자고 걸어 다니며 살아가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아무나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변함없는 시시하고 평범한 날이 얼마나 소중한 날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산다. 온갖 사고가 넘쳐나는 세상에 아무 일 없이 무사한 날을 맞이 한다는 것은 천운의 행운을 누리는 것이다. 열세 살 아이가 코로나로 죽고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이 폭행을 당하고 총으로 쏘고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 산소가 모자라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이유 없는 살인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무수한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상살이에 조용하고 편안하게 아무런 일없이 사는 삶은 최고의 삶이다.
수많은 나무들과 풀들이 어울려 사는 숲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건이 있겠지만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며 서있는 나무들을 보면 한없이 평화롭다. 어느새 두껍게 얼었던 계곡물이 겨울을 벗고 콸콸 흐르고 숲은 겨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도 지나고 나면 역시 보이지 않게 된다. 찾을 수 없이 지나가 버리는 날들이 허무한 것 같아 무언가 추억을 만들고 기억을 되살리며 산다. 그러나 아무리 좋았던 순간도 지나면 잊히고 흩어져 버려 똑같은 순간을 찾을 수도 만들 수도 없다. 새들이 지나간 자국이 없듯이 왔다간 시간은 없어져버린다. 밤새 꿈속을 헤매다가 꿈을 깨면 희미한 기억만 남는 것과 같다. 더 좋은 날을 위하여 더 멋진 날을 위하여 열심히 살지만 평범한 오늘보다 더 좋은 날도 더 멋진 날도 없다. 태어났기 에 살기 위해 살아야 하는데 죽기를 무릅쓰고 살아야 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잃어버린 시간들이 너무 많다. 꿈을 좇고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향한 삶은 오늘을 희생하지 않으면 맞을 수 없다. 오늘 없는 내일을 살며 하루를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삶을 위해 오늘은 못살아도 좋고 오늘을 잊고 무시하고 살아간다. 내일만 생각하고 살기에 오늘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꿈같은 인생이다.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다 아름다운 이유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겨놓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야 아름다운 봄을 맞이할 수 있듯이 힘들었던 어제가 있어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약한다. 오늘 나에게 온 하루가 화려하지 않고 무심한 듯 왔다 가는 듯 하지만 더 이상 좋은 하루는 없다.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고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을 보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 된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프지 않고 사는 것도 하루가 주는 선물이다. 살아 있기에 가능하고 소망할 수 있는 것이다. 굵고 짧게를 외치며 위험과 싸우고 최고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살아보니 가늘고 긴 삶이 더 좋다. 폭풍우 같은 삶이 어떤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모르지만 가랑비 오는 날도 좋고 구름 낀 날도 좋다. 한방 크게 터뜨리기가 쉽지 않다. 오랜 세월 역경을 견디고 살아온 사람들은 인생이 그리 쉽지 않음을 안다. 보이지 않는 행복을 좇으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게 온 시시한 하루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 다. 반짝이는 하루가 아니더라도 나와 함께하는 하루이기에 더 소중하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생활하던 날들보다 남편과 둘이 오손도손 사는 날이 많아졌다. 심심하기도 하고 어떤 변화가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이대로가 좋다. 할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가만히 있어도 된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고 내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평생을 살면서 원하던 삶이 바로 이거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면 된다. 돈을 벌 필요도 없고 먹여 살릴 가족도 없다. 그저 연봉을 받으며 먹고 싶은 것 먹고 심심풀이로 이것저것 하면 된다. 걱정할 일도 앞장설 일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기쁘게 마음 편히 살면 된다. 날씨가 좋으면 남편과 함께 숲 속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날씨가 나쁘면 집에서 뒹굴거린다. 봄이 오면 텃밭에다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이것저것 자라나는 것들을 따서 먹으며 산다.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고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며 예쁘구나, 많이 폈구나 하며 칭찬해주면 내년에도 잊지 않고 필 것이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산다. 나가야 할 직장도 없고 해야 할 숙제도 없다. 한평생 열심히 살았더니 이제 쉬라고 한다.
급할 것도 없고 바쁠 것도 없다. 기다릴 것도 없고, 바랄 것도 없다. 없는 것 없이 다 있고,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었으니 더 이상 욕심도 없다. 하루하루 아무 일 없이 살아가면 된다. 아무 일 없는 날이 좋은 날이고 아프지 않은 날이 멋진 날이다. 심심해도 좋고 시시해도 좋다. 시간 나는 대로 산책이나 다니며 살면 된다. 봄이면 꽃이 피듯이, 가을이면 단풍 지듯이 오는 날들을 고맙고 소중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좋다. 그것조차 없으면 재미가 없다. 구름이 하늘을 덮어 하루 종일 해를 볼 수 없지만 분명 해는 여전히 하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듯이 심심함 속에도 재미가 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찍어대고 있다. 심심해서도 시시해서도 아닌 하루를 살기 위해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
시시한 날에도 보이지 않는 의미가 있다. 풀포기 하나도, 들꽃 하나도 앉을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린다. 인간에게 주어진 하루가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우리는 그 안에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