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봄봄... 이곳에도 봄이 왔어요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봄봄봄봄 봄이 왔어요'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갑자기 온 봄이라 어리둥절 한데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온 봄이 반갑다. 수십 년을 봐 온 봄인데 왜 이렇게 새삼스럽게 아름다운지 처음 본 것처럼 설렌다. 봄이 이처럼 아름다웠는가 하는 생각에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 신비롭기까지 하다. 세상을 다 찍고 싶다. 아름다운 세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찍어서 간직하고 싶다. 봄이란 생명이고 그리움이다. 기다림이고 희망이다. 아무런 꿈이 없다가도 봄이 오면 꿈이 생기고 무언가 소망하고 싶어 진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의 마음이다. 눈으로 보고 감탄하며 사랑을 속삭이게 하는 요술을 가진 마음이다. 아름다움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이고 약속이다. 그냥 가지 않고 찾아온 사랑에 대한 기대이다.


초록으로 물든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고 또 보며 확인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숨어있던 봄이 세상을 바꾸는 모습은 환희고 희열이다. 그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봄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한 어떠한 고난과 환난도 이겨낼 수 있다. 세상을 꽃으로 단장하고 온갖 여러 가지 식물로 옷을 입히는 봄이 있어 겨울을 잊는다. 암흑에서 광명을 찾은 듯 세상은 생명을 되찾고 밝아져 자신의 모습을 샅샅이 드러낸다. 삶은 계절이다. 겨울처럼 아픔과 괴로움이 있고 봄처럼 기쁨과 웃음이 있어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준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도 지나고 나면 아름답고 아무리 아름다운 봄도 영원하지 않다. 새 한 마리가 숲의 정적을 깨뜨리며 짝을 부른다. 오래도록 애절하게 부르는데도 오지 않는지 쉬지 않고 불러댄다. 어떤 새 일까? 소리가 곱고 가늘며 애절하여 왠지 슬프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끊임없이 짝을 찾기에 세상은 돌아간다. 다람쥐가 오르내리며 재주를 부리며 사람이 지나가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할 일을 하며 살아가듯이 숲 속에 사는 모든 생물들도 저마다의 삶에 바쁘다. 계곡물은 어딘가를 향해 힘차게 흐르고 오리들은 한가롭게 헤엄을 치며 무언가를 잡아먹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송사리보다 작은 물고기들이 물속에서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인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을 게 있으면 모여들듯이 오리도 먹이가 있으니 물가를 떠나지 않는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날것들도 많이 돌아다니며 활개를 치며 산책길에 만나서 함께 가자고 한다. 그들의 구역에 들어온 손님이 궁금한가 보다. 보이지 않던 새싹들이 자라서 바람에 날린다. 새로 나온 나뭇잎은 연두색 이더니 점점 진하게 변해가고 숲이 나뭇잎으로 꽉 차기 시작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이종숙)


며칠 전 만해도 외롭게 피어있던 샛노란 민들레가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앉아 피어있다. 봄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지 눈 밑에서 봄을 기다린다. 참고 기다리며 예쁜 봄을 맞이하는 민들레는 이곳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미움받는 꽃이다. 꽃이지만 꽃 대접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꽃이다. 잔디 기계로 밀어 버리고 약을 뿌려 죽이고 칼로 파내고 뽑아낸다. 그래도 죽지 않고 세상천지에 퍼져 살아가는 것을 보니 코로나와 똑같다. 그래도 코로나는 백신이 나와 언젠가는 없어지는 날이 올 거라 믿고 싶다. 아기들 피부처럼 예쁜 나뭇잎들이 여기저기 새로나와 인사를 한다. 참 예쁘다. 들여다보고 만져본다. 사람도 이렇게 세상에 나와 살다가는 것이리라. 한때 잠깐 피는 하찮은 들꽃도 지은이를 찬양하며 최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피고 진다.


뒤뜰에 서있는 앵두나무가 꽃을 피기 위해 수천 봉우리를 안고 있다가 꽃을 피우더니 지금은 꽃이 다 지고 잎이 무성하다. 머지않아 수많은 앵두를 달고 빨갛게 익어갈 것이다. 세월에 순종하고 날씨와 계절에 순종하는 자연은 그래서 멸하지 않고 영원히 지구를 지킨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며 창조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에 희망하며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푸르고 땅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앞을 다투며 살고 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태어나 살다가 사라지는 모든 생물들이 순환하는 가운데 세상도 세월도 돌고 돈다. 기쁨에도 슬픔이 있고 아픔에도 희망이 있어 살아갈 힘이 생긴다. 겨울이 온다 해도 봄이 올 것을 알기에 쓰러지지 않고 산다. 겨울이 있던 자리에 봄이 와서 겨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 늘 봄이 있었던 것처럼 겨울을 잊고 산다.


눈보라가 휘날리며 무릎까지 눈이 덮여 긴 부츠를 신고 걸어가던 숲 속의 오솔길에 노란 민들레도 피고 들꽃도 피어나서 아무것도 없던 세상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봄이 와서 좋고 봄과 함께 있어 좋다. 언젠가는 이 봄도 가겠지만 또다시 올 것을 생각하며 기다리고 다른 계절을 맞아 봄은 잊힐 것이다. 예전의 봄은 기억에도 없이 사라졌기에 새봄은 언제나 새롭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세상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봄봄봄봄 봄이 왔다. 산과 들에도 봄이 오고 우리들 마음속에도 봄이 왔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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