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손주들이 급하게 뛰어다니다가 걸려 넘어져 운다.피가 나거나 피부가 벗겨진 것이 눈이 보이면 더 크게 울고 무슨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무서워 운다. 그럴 때 최고의 약은 반창고다. 아무리 소리소리 지르며 울고 불고 하다가도 반창고 하나만 있으면 울음을 멈춘다. 다친 데가 아파서도 울지만 놀라서 더 운다. 안 다치고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장애물로 몸도 다치고 마음도 다쳐서 운다. 한번 다치고 나면 두 번 다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지만 또 다른 것으로 다치며 성장한다. 반창고를 가까운 곳에 놓아두고 아기들이 넘어지고 다칠 때마다 붙여주면 아이들은 위로가 되어 울음을 그치며 다시 재미있는 놀이를 하게 된다. 한 번은 넘어져 무릎을 다친 손자가 울고불고하더니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어딘가로 뛰어가서 쫓아가 보았더니 반창고를 가지러 가는 것이었다.
따라가서 하는 대로 놔두고 옆에 있었더니 다친 곳에 반창고를 붙이고 언제 다쳐서 울었느냐며 의젓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반창고 하나가 몸과 마음을 다 낫게 한 것이다. 그 뒤 작은 손녀가 안 보여서 여기저기 찾아다녔더니 서랍에서 반창고 박스를 꺼내어 놓고 하나하나 뜯어가며 팔이고 다리고 할 것 없이 온몸에다 반창고를 붙여놓고 앉아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작은 멍이나 긁힌 자국이 보이면 반창고를 붙여주면 다시 돌아다니며 노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플 때도 반창고를 붙이면 나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몸의 상처를 반창고로 낫게 하듯이 마음의 상처도 반창고로 낫게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추억은 세월 속에 희미해지는데 마음의 상처는 세월이 흐를수록 없어지지 않고 깊어간다. 아무도 마음의 상처를 대신할 수 없고 치료해줄 수 없다. 요즘엔 여러 가지 기술로 상처를 치유받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치료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다 지나간 지난날의 상처가 가슴에 박혀서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고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잘못 건드리면 다시 상처가 커지고 곪아 터져 더 큰 상처가 되는 경우도 많다. 친한 사이라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한 이야기가 그 상처를 건드려 싸움이 되고 거리가 생기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처가 자라는지도 모른 채 세월이 지나 어떤 계기로 들여다본 마음에는 큰 상처를 안고 살아온 경우도 있다. 잊기 위해 다시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인데 그 상처는 없어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성격과 아픔을 알아차릴 수 있다. 현재의 행복한 모습이 불행했던 과거를 감추고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대화를 통해 다가온다. 칭찬이라고 생각했던 말로 상처를 건드렸다며 대들던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는 친절하고 다정하며 인정 있는 사람이라 얘기 끝에 칭찬을 해 주었는데 그 칭찬이 화로 돌아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같이 있던 다른 사람들도 갑자기 화를 내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쳐다보며 오해한 것이라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하도 기가 막혀서 한참을 이해시키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좋은 말로 얘기한 나의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데 칭찬한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다는 말인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 뒤 서로 마음을 풀고 화해를 했지만 한번 당한 내 마음의 상처는 그리 쉽게 아물지 않고 그를 만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난다. 뒤끝이 없는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은 나의 순수한 마음을 몰라주고 자신의 상처만 가지고 따지던 생각이 잊히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에 가시를 기르면 그 가시는 마음을 찌르고 꽃을 심으면 향기를 품는다. 나에게 독을 품고 달려들던 그녀의 모습이 평소와 너무도 다름에 놀랐다. 이해심이 많고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인데 어찌해서 나에게 그 무서운 가시로 나를 찔렀는지 아직도 모른다.
유난스러운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진심을 담은 칭찬을 했는데 그게 엉뚱하게 화살로 돌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칭찬도 함부로 할 것이 아니라는 말이 맞다. 어쨌든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때의 일이 찜찜한 건 사실이다. 아이들처럼 다치고 한번 울고 반창고 하나로 모든 상처가 낫는다면 참 좋겠다. 상처를 가슴속에 숨겨두었다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을 찌른다면 당한 사람은 너무 억울하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흐르고 웬만하면 상처를 들추고 싶지 않다. 홍수가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가 자리를 잡을 뿐 도움이 안 된다. 세월은 지나가고 기억도 사라지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산다면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어제는 갔고 오늘도 간다. 내일은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왔다가 어제가 된다. 오늘 내게 온 화살이 내일 또 오지 않기 위해 한마디 말도 무심히 하지 말아야 하고 한번 뱉은 말로 누군가의 깊은 상처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감추어놓은 그리움이 있듯이 상처도 가지고 있다. 나의 상처가 아픈 것처럼 남의 상처도 건드리면 아프기에 좋은 말도 가려서 해야 한다. 마음에 붙이는 반창고가 있으면 좋겠다. 서로의 상처를 달래주는 반창고 한 장 구해서 아픈 마음속에 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