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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은 순두부찌개를 만든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5월 하순인데 서늘한 가을바람이 분다. 간단한 옷차림으로 텃밭에서 자라는 야채들이 얼마나 자랐다 보는데 춥다. 더워도 한창 더울 때인데 바람이 어찌나 불어대는지 이대로 서성이다가는 때아닌 감기라도 걸릴 것 같아 옷을 입고 다시 나왔다. 파는 쑥쑥 잘 자란다. 몇 년 전에 지인이 뿌리째 뽑아서 가져다준 대파를 심었는데 기특하게도 잘 자라서 가을까지 잘 먹는다. 지난번 내린 눈에도 죽지 않고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텃밭 채소들이 잘 자라려면 날씨가 따뜻해야 하는데 어영부영 5월도 이렇게 지나간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더니 햇볕이 구름을 헤치고 나와 잠깐 인사를 하고 다시 들어가 숨는다. 앵두나무는 꽃이 다 지고 그 자리에 파란 앵두를 다닥다닥 달려 있고 지난번 온 폭설 때문에 걱정을 했던 사과꽃은 얼어 죽지 않고 벌들을 기다리며 활짝 피어있다.


원추리는 얼마 안 있으면 꽃을 피울 것이고 장미는 아직 이파리 몇 개 만 달고 있다. 6월 하순경에나 꽃을 피울 텐데 올 해는 벌레들 때문에 수난을 겪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앞에 있는 라일락은 깨알 같은 꽃망울을 물고 서 있고 화단에는 여러해살이 꽃들이 하나 둘 피어 집 앞뜰이 환하다. 몇 년 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을 몇 개 사다 심었는데 번식력도 좋고 색도 고운 노란색이라 해마다 이맘때엔 지나는 사람들이 무슨 꽃이냐며 일부러 들려서 물어보곤 한다. 아까부터 까마귀 한 마리가 앞뜰에 앉아 있더니 전나무로 옮겨갔다가 다시 소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깍깍 대며 시끄럽게 짖고 있다. 나무가 많아서 사시사철 새소리를 들으며 산다. 바람은 여전히 불어댄다. 이대로 바람이 더 심하게 불면 눈도 올 기세처럼 춥다. 아무래도 바람이 심하게 부는 오늘은 무언가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다.



무엇을 해 먹을까 생각하면 제일 먼저 순두부찌개가 생각난다. 뚝배기에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송송 썰어 넣고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육수를 붓고 두부와 양파를 넣고 보글보글 끓여 먹는 순두부찌개가 먹고 싶다. 식당에 가면 아무 때나 부담 없이 시켜 먹었는데 코로나는 그것도 못하게 만들었으니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한다. 국민 찌개라고 할 정도로 순두부찌개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고 만들기도 간단해서 웬만한 사람들은 쉽게 만들어 먹는다. 특별한 재료도 필요 없이 돼지고기와 순두부 그리고 양파와 파만 있으면 순두부찌개를 후다닥 만들어 한 그릇 먹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다. 양식당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배달보다 내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한다. 귀찮은 생각도 간혹 들지만 몇 가지 재료 집어넣고 만들어 놓으면 식구들이 잘 먹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코로나로 식당에 간지 참으로 오래되었다. 집안에 있는 그릇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외식을 많이 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집밥을 선호하게 되었다. 요리하지 않고 식당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한 그릇씩 먹으면 대접하는 사람도 초대받는 사람도 부담 없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인사도 되고 사교도 하면서 돌아가면서 차례로 사면 부담도 없고 생색도 내며 좋았는데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앞으로 백신 접종 인구수에 따라 모든 것이 코로나 이전 생활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이전처럼 외식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일단은 코로나로 인하여 물건값도 음식값도 많이 올랐다. 그동안 생산도 저조했고 소비도 저조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모든 것들이 부족 상태에 빠질 것이다.


어쨌든 전염병과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인구가 감소했기 때문에 오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은 다시 외식문화로 돌아가겠지만 요즘 슈퍼에 가보면 사다가 끓이기만 하면 되고 오븐에 넣어 익히기만 하는 패키지 음식이 너무 잘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음식 코너에 가보면 정말 예쁘고 깔끔하고 맛있어 보이게 만들어 선을 보여 굳이 여러 가지 장을 봐서 해 먹지 않아도 좋게 보인다. 금방 없어질 것 같던 코로나 장기화로 세상은 무섭게 변해간다. 무엇이든지 쌓아놓고 살던 생활이 미니멀 라이프가 되어가며 시간을 벌어가며 산다. 필요한 것만 사고 양보다 질이 위주가 된 세상이 되어간다. 부모님 세대의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게 변했는데 아이들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지 궁금하다.


안 쓰고 모으기만 하면 부자가 되던 시대에서 돈을 풀고 필요할 때 쓰고, 안전한 방식보다 위험한 도전을 하며 사는 시대가 되었다. 어차피 돌고 도는 게 돈이라고 움켜쥐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어차피 세대차이로 아이들의 생각을 따라갈 수는 없어도 그들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시대가 아무리 백세시대 운운 하지만 발달하는 세상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우며 의지하는 세월이 되었다.


그래도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하며 사는 것도 삶의 지혜다. 음식코너에 가서 준비된 것을 사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나도 좋다. 이것저것 집어넣어 나만의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내가 좋고 내가 만들어 놓은 음식이 세상에서 최고 라며 맛있게 먹는 남편이 있어 좋다. 편하고, 쉽고, 맛있게 먹고사는 것도 좋은데 그냥 집에서 내 맘대로 해 먹는 것도 재밌다. 오늘처럼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순두부찌개를 해 먹고 날씨가 더운 날은 냉면을 삶아먹고 우중충 한 날에는 손 칼국수를 해 먹으면 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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