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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에 취하여 님도 보고 뽕도 딴 날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화창하게 맑은 날이다. 이런 날은 바람이라도 쐬러 가고 싶어서 가까운 곳으로 산책도 하고 나물도 뜯으러 나갔다. 해마다 이맘때에 나오는 삼나물은 가파르지 않은 양지바른 언덕에 나뭇잎이 쌓여있는 조용한 곳에 홀로 자란다. 옆에 있는 것에 기대지도 않고 붙어서 자라지도 않고 혼자 꼿꼿하게 서서 자라다가 잎이 넓어지며 숲을 덮는다. 한 뼘쯤 자란 때가 제일 연하고 꽃은 없고 잎이 커가면서 억새 지는 나물로 이민 선배들이 찾아낸 보물 같은 산나물이다. 생긴 것은 고비와 비슷하고 볶아 놓으면 새파란 시금치 색을 띠며 고사리 맛을 낸다. 오래전 고국을 떠나온 이민 선배들은 그 옛날 한국에서 살 때 먹던 나물이 생각나 들판을 걸어 다니며 비슷한 것을 찾아 누군가 먹어보고 맛있기에 전해 내려온 것이다. 나 역시 산나물은 문외한이라 먹기는 잘 먹어도 나물을 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며 살았다.


어릴 때는 엄마가 볶아 주셔서 먹고 결혼 후에는 나물을 사서 먹었지만 나물을 뜯어서 먹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친구가 뜯어서 갖다 주어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뜯어먹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억새지기 때문에 뜯어먹을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2주밖에 안 되는 나물인데 따서 삶아서 하루 정도 물에 담갔다가 볶아먹고 무쳐먹으면 맛있다. 여유가 있으면 얼려 놓았다가 겨울에 녹여서 된장국도 끓여먹고 초장에 무쳐서 먹으면 입맛도 생기고 좋다. 작년에 삶아서 몇 봉투 얼려 놓았는데 겨우내 하나씩 꺼내서 먹으니까 좋았다. 눈이 쌓이고 추운 날에 고기 조금 넣고 푹 고아서 육개장처럼 별미로 만들었더니 온 식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보람도 있었다. 산천을 구경하며 걸어 다니는 것도 좋지만 무언가를 뜯으며 걸으니 더 재미가 있다. 하늘을 보러 나왔는데 하늘을 보기는커녕 땅만 쳐다보며 나물 뜯기에 바쁘다.


새싹들이 나오는 요즘에 여러 가지 식물들이 나와 있지만 이름도 모르거니와 잘못 먹으면 큰일 나니까 아는 것만 뜯으며 간다. 보이는 것을 뜯고 가다 돌아서 보면 또 보인다. 한 군데에 자라지 않고 여기저기 띄엄띄엄 나 있어 허리를 구부리고 뜯다 보니 허리가 아프다. 나뭇잎이 많이 쌓여있는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주위에 여러 가지 나뭇가지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 하나 둘 따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앞으로 계속 걸어간다.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예쁜 청둥오리도 헤엄을 치며 물을 따라간다. 언제 와서 있었는지 모를 봄이 숲을 점령하고 있다. 며칠 안 온 사이에 세상이 온갖 초록으로 물들어 너도 나도 예쁘고 멋있게 치장하고 서 있다. 새들도 바쁘게 날아다니고 벌과 나비들도 꿀을 모으기에 정신이 없다. 잔잔한 꽃들이 피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도 꽃을 피우며 제 할 일을 하느라 바쁘다.


(사진:이종숙)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그냥 오지 않고 소란스럽게 왔다. 눈과 비를 뿌리고 바람과 함께 왔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본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바람 한점 없는 숲에 는 오직 평화만 있다. 걷다가 나물이 보이면 뜯으며 천천히 걸어간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보면 숨어있는 것도 보이고 안보이던 것도 보인다. 많이 뜯으려고 하면 힘만 들고 재미가 없으니 그저 보이는 것만 뜯으며 간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로 일만 하면 재미없고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여행도 하며 살면 좋을 텐데 현실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정년에 퇴직을 하여 심심하지 않게 하루하루를 지내며 살게 되어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하는데 요즘엔 그것마저 한집 식구가 아니면 같이 칠 수 없는 형편이라 그것 또한 불편한데 나물 캐는 것은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하는 것이니 아무런 제재는 없다.


어쩌다 코로나가 세상에 퍼져서 이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한심하다. 꾸준한 연구를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잡히겠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 아직은 멀다. 구부렸다 폈다 하며 보이는 대로 하나씩 둘씩 뽑는 재미가 있지만 그것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약한 허리가 뭐라고 한다. 걷기만 했는데 오늘은 왜 이리 온몸을 다 쓰는지 모르겠다고 몸도 불평하는 것 같다. 이제 그만 뜯고 하늘을 보자고 남편에게 말을 하면서도 어느새 저 멀리 서있는 나물로 가서 뜯는다.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나물이 눈이 인식을 해서인지 멀리 있어도 보이고 나뭇잎에 덮여있어도 보인다. 풀 옆에 서 있어도 보이고 나무 옆에 기대 있어도 보인다. 어지간히 뜯었으니 집을 향해 걷는다. 집에 가서 깨끗이 다듬고 씻어 삶아서 물에 하루정도 담가 놓았다 볶아 먹거나 무쳐먹으면 더 이상 맛있는 나물이 없다.


노동의 대가로 얻어진 나물이지만 놀면서 얻어졌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 온몸을 움직이면 운동도 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함께하며 먹을 것까지 가지고 가는 발길은 가볍다. 자연이 주는 모든 것들이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다. 물 한 모금 주지 않는 인간에게 자연은 가진 것을 다 준다. 자연을 더럽히기만 하는 인간에게 한없이 너그럽기만 하는 자연이 있어 너무 행복한 하루다. 가는 길에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나물이 오는 길에 보이면 참 반갑다. 놓치고 간 물건을 찾은 것 같아 더 소중하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햇살이 눈부시게 숲을 비춘다. 며칠 사이로 숲은 완연한 봄이 되었고 들꽃들은 때를 놓칠세라 너도 나도 예쁘게 피느라 난리가 났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재미가 바로 이런 건가 보다. 남편과 함께 숲 속의 오솔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물이 보이면 뜯고 안 보이면 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논다.


몇십 년 전의 이야기부터 오늘 이야기까지 하고 추억을 더듬으며 숲을 나온다. 하루를 살듯이 수십 년을 살며 둘이 하나 되어 산 세월이 쌓인다. 눈빛 하나로도 서로를 알 수 있고 말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아는 남편과 나물을 뜯으며 숲 속의 향연을 즐긴다. 봄은 봄대로 아름답고 가을은 가을대로 예쁘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니 좋게 생각하며 좋은 것을 보면 좋은 일이 생기리라. 맛있게 먹을 나물 생각에 집으로 가는 발길이 가볍다. 산나물에 취하여 산책도 하고 먹을 것도 생긴 님도 보고 뽕도 딴 날이 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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