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겨울 걱정은 나중에 하자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글로 쓴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해서 열심히 써 내려가는데 생각이 멈춰 글 쓰는 도중에 써야 할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한참을 생각해도 머릿속은 백지같이 하얗다. 거기서 더 이상 머물다가는 생각이 도망가기에 자리를 남겨놓고 써 내려간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생각이 난다. 급하게 무언가를 가지러 지하실로 내려갔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무엇을 가지러 갔는데 생각이 안 나서 그냥 올라오면 그때 생각이 나서 다시 내려간다. 이러다 치매가 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누구나 해본 경험 일 것이다. 큰 병도 아니고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생각이 나고 다시 기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한데 기억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주위에 치매를 앓는 사람을 본다. 할 말은 많은데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하지 않아도 되는데 같은 일을 자꾸만 반복한다. 회사에서 회장으로 있던 사람이 치매가 오고 개인 간호원을 채용하며 살고 있는데 그토록 명석하던 사람이 같은 말만 하게 되었다. 무엇을 물어보면 '잘될 거야'라고 한다. 하루가 어땠느냐고 물어봐도 '잘 될 거야'라는 대답만 한다. 그는 그렇게 평생 동안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온 것을 나중이야 알게 되었다. 어느 사람은 살림을 잘하고 꽃을 잘 키우며 집을 예쁘게 꾸미고 살던 사람이었다. 수돗물을 한없이 틀어놓고 같은 그릇을 수십 번 닦고 또 닦으며 화분에 물을 계속 준다. 화분에 물을 너무 자주 많이 주어 꽃이 다 죽어서 가짜 꽃을 사다 놓았다.


가짜 꽃인 줄도 모르고 물을 계속 주어 물을 잠겄다. 이제는 물도 없고 그릇도 없고 꽃도 없는데 빈 수도꼭지를 틀고 그릇 닦고 물도 없는 빈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메마른 가짜 꽃 화분에 물을 줘야 한다며 안타까워한다. 결국 얼마 뒤에 요양원에서 살다가 떠났지만 간혹 생각이 난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을 배우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기고 앉고 서서 걸어 다니고 뛰고 달리고 말하고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산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둘 알던 것을 잊어버리게 되어 나중에는 자신조차도 모르게 된다. 생전에 잘하던 것, 좋아한 것들과 싫어하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어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며칠 전에 글을 쓰는데 방역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엄청 많이 듣고 사용하던 단어인데 전혀 생각이 안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어떤 때는 하려던 말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기억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까짓 단어 하나 생각이 안 난다고 요란 떠는 것 같지만 생각하면 두려운 일이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한다면 정말 비극이다. 까막눈으로 평생을 읽고 쓰지 못하고 사셨던 80세가 넘는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고 편지를 쓰고 시를 쓰시는 프로그램을 보며 울었다. 배움의 힘은 정말 위대하여 그 높은 연세에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치매는 알던 것을 백지화시킨다.


누구의 힘으로도 막지 못하고 지금은 의학으로도 치료를 할 수 없다. 끊임없는 연구로 어떤 변화가 있겠지만 무서운 일이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은 기억이 없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 살아간다. 아니 어쩌면 고통조차 모르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식도 타인이 되어 살아가는 슬픈 삶이다.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모르는 것은 잊혀도 좋겠지만 적어도 평생을 함께한 가족은 잊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는 것을 잊어버리고 할 줄 알던 것을 모르게 되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조차 모르는 것을 보면 가족은 가슴이 찢어진다.


가까운 지인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최후가 치매로 이어진다면 안락사를 원한다는 말을 할 때 할 말이 없었다. 치매라는 것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각하게 된다. 핸드폰을 사용하며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이러다가는 글씨 쓰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말과 글처럼 냉정한 것은 없다고 한다. 쓰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생각이 나지 않은 낱말 때문에 괜한 생각이 들었다. 오직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 남은 날들 동안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살고 싶다. 손으로 필사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해야겠다.


괜한 걱정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걱정도 팔자'라는 핀잔만 돌아온다. 하릴없이 살다 보니 걱정거리를 만들고 산다. 봄은 떠날 생각 없어도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사라져 간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해도 봄이 오기에 희망하며 산다. 오지 않은 겨울은 겨울에 만나도 늦지 않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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