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그립고... 일상도 그립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세상이 멈춘 듯 조용한 아침이다. 밤새 비가 와서 세상을 적셨다. 길은 젖어있고 나무에서 물 방울이 땅으로 데구루루 굴러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원추리도 데이지도 생기가 나서 더없이 예쁘게 피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왔는데 반토막난 온도는 긴 옷을 입게 한다. 영상 14도 에 비가 오고 구름이 덮은 하늘은 참으로 을씨년스럽다. 기다림이란 정녕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별것도 아닌데 평생을 기다림 속에 살아가는 인생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원하고 더 높이 올라가기를 희망하고 소망하며 살아간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며 살고 싶은 것도 어찌 보면 욕심이다.


흐르는 물처럼 그냥 흐르면 되는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산다. 남들이 사는 것을 보고 남의 행동을 살피며 사느라고 자신은 잊고 산다. 그토록 더워도, 밤새 비가 와서 썰렁해도 자연은 가만히 서서 할 일을 한다. 사람들만 불평하고 짜증내고 안달을 한다. 어차피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다 해결되는데 그것을 못 참고 난리다. 아무리 더워도 꽃들은 질 때까지 견디다 떨어지고 시든다. 있는 동안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며 꿀을 만드는 벌을 맞으며 있는 것을 내어준다. 힘들어도 체념하지 않고 기다린다. 꽃샘바람에 발발 떨며 예쁜 분홍꽃을 피우던 앵두나무가 새빨간 앵두를 수없이 달고 잘 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서 있다.


너무 더워서 더러는 쓰러지고 타 죽을지 언정 지은이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내릴 비를 만날 때까지 기다린다. 설령 오지 않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떨어져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조금 더우면 덥다고 옷을 벗고 선풍기를 돌리며 수선을 떨고 조금 추우면 춥다고 옷을 껴입고 난로를 피며 난리를 치는데 자연은 다 받아들인다. 추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꽃샘추위도 삼복더위도 다 견디며 바람을 맞으며 살다가 간다. 견디다 못해 떨어져도 원망도 후회도 없이 미련 없이 간다.


더위가 시작될 때 원추리 꽃이 봉우리를 내놓더니 그 무서운 더위를 다 이겨내고 피고 지고 한다. 날씨가 쌀쌀해도 그냥 하늘거리며 바람 따라 춤을 추며 꽃을 피어낸다. 장미는 벌레들이 이파리를 다 파먹어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는데도 여전히 꽃은 핀다. 저러다 벌레들이 먹을 게 없으면 장미를 떠난다. 그때 다시 기운을 차리고 못다 한 날들을 살아내며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며 한 해를 살다가는 장미를 본다. 견딜 만큼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유독 사람들만 못 견뎌하는 것 같다.


(사진:이종숙)

사람들은 어느새 뜨거웠던 여름을 잊고 산다. 짧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볼 수 없다. 쇼핑을 잠깐 다녀왔는데 사람들의 옷차림은 완전 가을 모습이다. 하기야 오늘 온도가 영상 14도 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렇게 여름이 가지는 않겠지만 괜히 마음이 쓸쓸해진다. 홀로 구석에 서 있는 선풍기도 추워 보이고 선반에 올려놓은 여름 샌들도 썰렁해 보인다. 누렇게 말라서 푸석 거리던 잔디도 조금씩 푸르름이 되살아난다. 이대로 며칠 더 비가 오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 모습처럼 자연도 이렇게 한해를 견디며 산다.


뜨거웠던 며칠 덕분에 고추가 자라 꽃을 피더니 어느 날부터 새파란 고추를 매달고 여기저기 심어놓은 호박과 깻잎 그리고 상추가 부쩍 자랐다. 타 죽을까 봐 열심히 물을 주며 정성을 쏟아 올여름엔 텃밭 야채로 식탁이 풍성하다. 이제 조금씩 날도 추워지고 하니 성장이 더디겠지만 달팽이 없이 잘 넘어가 다행이다. 작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텃밭을 덮으며 자라는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를 본다. 삶이 있기에 죽음도 있고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다시 소생하는 자연 속에 인생을 본다.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며 비가 내린다. 어제도 오늘도 해를 볼 수 없다. 뜨거운 해를 피해서 응달을 찾고 커튼으로 가리며 지하실을 오르내렸는데 며칠 안보이니 보고 싶고 궁금하다.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안 보이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것과 같다. 코로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마스크를 쓰는 것도 벗는 것도 강제가 아닌 선택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쓰고 다니지만 안 쓴 사람들도 많다. 변이 바이러스가 두렵기는 하지만 백신을 두 번 맞아서 안심이 된다. 성당도 많은 사람들이 미사참례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아직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앉아야 하지만 머지않아 모든 것들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보고 싶던 사람도 소원했던 사람도 다 보고 싶고 궁금하다. 만나는 날에는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활짝 웃고 싶다. 가슴을 활짝 펴고 포옹을 하며 팔짱을 끼고 깔깔대고 밀렸던 수다도 떨어야겠다. 가까이 있어 몰랐던 태양의 소중함이 비 오는 날에 다가온다. 이틀 못 본 태양이 그립고 잃었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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