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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는 사랑이고 그리움이다
by
Chong Sook Lee
Jul 14. 2021
(사진:이종숙)
5월에 내린 폭설로 얼어 죽다 살아난 열무가 효자 노릇을 단단히 한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니 연해서 입에서 살살 녹는다.
손톱만 한 싹이
눈에 덮여 다 얼어
올해 농사는 다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다음날 아침에 파랗게 살아나
건재한 모습으로 텃밭에서 방긋 웃던 열무
언제 눈을 맞았냐는 듯이
내색도 없이 잘 자라준 열무를
어느 해보다 맛있게 먹는다
.
새파랗고 연해서 혼자 먹기 너무 아까워
오고 가며 찾아오는 지인들과 나눠먹고 여기저기 넣어 먹으며
뜨거운 여름을 이기며 산다
.
아무것도 없는 땅에
작은 씨를 뿌리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니
세상에 없던 열무가
세상 밖으로 나와 자라고 그 모습이 하도 예뻐
요리조리 사진 찍으며 예쁘다 예쁘다 했더니
여름 내내 효자노릇을 한다
여러 번 김치를 담았는데
어찌 그리 간도 잘 맞는지 먹을 때마다
엄마가 담가주시던 맛있는 열무김치 생각이 난다. 너무 맛있어서 마지막 국물까지
쪽 짜서 마시던 그 열무김치의 맛
이제는 내가 엄마의 맛을 내며 열무김치를 해마다 담가먹는다
.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이 그 안에 있다
.
어릴 적 본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
아이들 다 먹고
남은 밥 한 덩어리에
고추장과 열무김치 몇 가닥 넣어 맛있게 비벼 드시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
맛있는 것
,
좋은 것은 우리에게 다 주시고
우리만 바라보던
그 따뜻한 사랑의 눈길이 그립다
.
지금은 코로나로 생이별한 채 양로원에서
자식들 오기만을 기다리시는 엄마
생각에 열무김치를 먹으며 목이 멘다
사랑은 추억으로
,
추억은 또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삶
이제는 가슴속에 예쁘게 꽃이 핀다
쏙쏙 뽑아서 깨끗이 씻어 살짝 저려 놓고 미리 끓여놓은 찹쌀풀이 식으면 고춧가루 마늘 생강 새우젓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잘 절여진 열무에서 나온 소금물을 버리고 한번 더 씻어 그릇에 담고 양념한 찹쌀풀을 한번 저어 열무에 부어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는다.
너무 만지면 풋내가 나니까 되도록 빨리 옮겨 놓고 뚜껑을 느슨하게 닫아 놓는다. 한 이틀 실온에서 맛이 들 때까지 익혀서 냉장고에 넣는다.
알맞게 익은 열무김치는 우리 집 감초다.
안 끼는데 없는
우리 집
열무김치다.
스테이크 먹을 때도 갈비
먹을 때도
열무김치를 먹고
열무 비빔밥에도 들어가고 냉면에도, 국수에도 들어간다
찬밥을 끓여서 먹을 때도,
양식에도 좋고 감자를 쪄서
먹을 때도
같이 먹는다.
찬밥에 다른 반찬 필요 없이 열무김치에 고추장 한 숟가락 넣고
쓱쓱 비벼먹어도 맛있다.
오늘은 너무 더워 냉면이
먹고 싶어
냉면을 삶고 달걀을 삶아
오이 조
금 채 썰어 고명으로 얹고
열무김치를 조금 넣어 먹었더니 완전 대박이다.
냉면집에서 먹는 맛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너무 맛있다.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냉면 국물이 가슴을 타고
짜르르하며 내려간다
.
더위는 멀찍이 물러가고
땀은 어디론가 숨어 버린다
냉면과 열무김치가 어우러져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입안에 녹아내린다
열무김치를 먹으며 생각나는
그리운 엄마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지금
언젠가라는 말로 또다시 위로하며 산다
인연은 그렇게 가슴과 가슴에서
이어지며 영원히 하나 되어
오늘도 어제처럼 살아진다
해마다 여름에 담가먹는 열무김치는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추억이며 감사함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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