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만나러 가야겠다. 눈 쌓인 뜰은 한겨울인데 그냥 이렇게 앉아 봄을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아무도 모르게 오는 맑고 고운 봄은 이렇게 찾아 나서야 만난다. 게으름을 떨쳐내고 가까운 숲으로 산책을 나왔다. 나무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숲 속에 쏟아지는 늦은 아침이다. 산책 나온 사람들과 눈인사를 건넨다. 며칠 만에 날씨가 풀려 오랜만에 숲을 찾으니 숲 향기가 참 좋다. 차 소리도 들리지 않은 숲 속은 눈 위를 걷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고 조용하고 한적하다. 심심한 참새들이 다람쥐 들과 숨바꼭질하며 따스한 날을 즐긴다. 나무에 쌓여있던 눈이 햇볕에 녹아내린다. 맑은 하늘에 마치도 소나기라도 오는 듯이 비처럼 내려 숲을 적신다. 떨어지는 물이 햇빛을 반사하여 보석처럼 반짝 인다.
계곡에 흐르는 물은 아직 얼어 있지만 양지쪽에는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른다. 녹아 흐르는 계곡물을 보니 어느새 마음은 봄 입구에 서 있는 느낌이다. 남은 겨울을 포옹하다 보면 싱그러운 봄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 좋은 숲을 가까이 두고 그동안 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시간도 없고 피곤하여 아예 올 생각을 못하고 살았는데 막상 와 보니 정말 좋다. 마치 오랫동안 찾지 못하던 보물을 찾은 듯이 올 때마다 설렌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고 알지 못하는 열매들도 여기저기 매달려 있다.산책을 하는 자매를 만났다. 오미자 같은 빨간 열매를 따서 연신 봉투에 넣는다. 무슨 열매냐고 물었더니 이름은 모르지만 말려서 차를 끓여 먹는단다. 나도 덩달아 몇 알을 따서 먹어보니 역시나 오미자 열매였다.
앞으로 난 두 개의 산책길이 보인다. 가보지 않았던 길을 따라 걸어 가본다.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봄이 우리를 기다릴 것 같다. 숲이 깊어 여러 가지 동물들도 많이 있다. 긴 막대기로 길가의 나무를 툭툭 치며 걷는다. 혹시라도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엉이, 수달, 토끼, 늑대, 이리 와 다람쥐 그리고 여러 가지 새들이 숲 속에서 산다. 가운데 계곡을 옆에 끼고 넓은 산책길이 있고 중간중간에 작은 오솔길이 있어 계곡으로 통한다. 큰 산책길보다 작은 오솔길을 좋아하는 우리는 틈틈이 숲 속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구경을 한다. 여름에는 수달이 계곡에서 수영을 하며 겨울을 위해 여기저기 굴을 파 놓는다. 다람쥐들은 바쁘게 나무를 오르내리며 사람들이 가져다준 해바라기씨를 어딘가로 물어 나르기 바쁘다. 하루를 살기 위해 애쓰는 인간들과 별 다르지 않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 다.
오색딱따구리 새 한 마리가 높은 나무를 찍어대고 있다. 딱딱딱,, ,,, 아마도 먹을 것을 찾나 보다. 나무 찍는 소리가 숲의 정적을 깬다. 부리가 아플 것 같은데 부리의 구조가 특별한가 보다. 몸통은 검고 목과 가슴은 희며 머리는 빨간색이다. 날카로운 부리로 열심히 나무를 구멍이 생길 때까지 찍어 댄다. 올 때마다 만나는 사진사가 사진을 찍고 있다. 멀리 나무에 있는 새들을 망원렌즈로 보며 사진을 찍는다며 카메라에 담긴 새 두 마리를 보여준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먼 거리의 것을 아주 가깝게 보니 정말 예쁜 새 한쌍이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한창 재미있는 연애 중이다. 몇 번 걸어본 산책길이라 나무들이 낯이 익다.
찌그러진 나무, 넘어진 나무, 그리고 하늘바라기 마냥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들이 마냥 정겹다. 사철나무 네 그루가 계곡 끝에서 우리를 반긴다. 작년에도 그곳에 서 있던 나무들이겠지만 보지 못한 겨울 동안 부쩍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활엽수는 아직 옷을 입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지난가을에 왔을 때는 나뭇잎이 예쁘게 단풍이 들었는데 몇 달 사이에 나무들은 나목이 되어 겨울을 살아가고 있다. 계절에 순종하며 사는 나무들은 우리네처럼 욕심도 후회도 없고 질투나 시기는 없으리라. 먹을 만큼 먹고 클 만큼 크다가 열매나 꽃으로 사랑을 주고 갈 때가 되면 조용히 간다.
숲 속은 아직 눈이 덮여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멀리 보이는 소나무는 어느새 연녹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다가오는 봄을 맞이 할 준비에 한창인 가 보다. 어쩌면 봄은 벌써 우리들 몰래 가까이 왔나 보다. 잠자는 듯하는 자연은 아무도 모르게 저들 나름대로의 일을 열심히 한다. 오라 하지 않아도 오고 가라 하지 않아도 간다. 자연을 보면 인간의 부족함이 드러난다. 나부터도 나름대로 잘 살아간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보람보다는 후회가 더 많은 시간들을 보낸다. 나이가 들어가면 마음도 넓어져야 하는데 소소한 일에 신경 쓰며 살아온 나날들이다.
봄을 만나러 나와 보니 겨울 속에도 봄이 있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귀여운 손주들의 모습 안에 인생의 봄이 피어나고 나의 인생에는 가을이 왔다. 겨울이 오기 전에 하나 둘 정리를 하며 준비를 해야겠다. 저 추운 숲 속에 찾아 올봄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서 있는 나무들처럼 말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이 춥다고 집안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면 오늘 이 숲 속의 살며시 오고 있는 봄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소중한 순간들이 한순간의 선택으로 만나고 헤어진다. 가을에 보았던 나무들이 어느새 부쩍 큰 나무가 되어 있음에 감탄하며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숲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