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서로 만난다

by Chong Sook Lee
민들레의 홀씨가 되어 가는가 ( 사진 :이종숙 )


우리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행복할 때 아니면 무료할 때 나는 간혹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다. 물론 답도 없는 물음이지 만 그렇게라도 해보지 않으면 삶이 너무 무미할 것 같다. 궁극적으로 이런 것은 정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생각을 가지고 사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물어 온 질문이다. 이민 온지도 엄청난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카카오톡이 생겨 전화 도 메시지도 생각만 하면 어디든 공짜로 할 수 있는데 그 시절에는 국제 전화 통화료가 너무 비싸서 한국에 전화는 엄두도 못 냈고, 편지도 국제우편만 가능했다. 고국에 가고 싶어도 갈 수는 없는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죽으면 한 마리의 새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훨훨 날아서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러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뒤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식당을 운영할 때 새벽 일찍 출근을 하며 어두운 새벽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볼 때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우리가 죽으면 어쩌면 별이 될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고 나는 긍정반 부정반으로 그냥 웃고 말았지만 요즘엔 생각이 달라졌다. 만약 내가 죽은 후에 별이 된다 면 한국 밤하늘에 뜨는 별이 되고 싶다. 죽은 후에는 고국의 하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가 언제 인지 모르지만 나를 아는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할지라도 그저 그렇게 함으로 내가 행복할 것 같다. 타국에서 사는 동안 고국의 하늘 쪽을 바라보며 부모 형제 그리고 친척 친구를 그리워했기에 죽어서 라도 고국의 하늘 안에 있고 싶음일 것이다.


과연 사람들은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몸은 땅에 묻혀 어느 날 흙이 되고 영혼은 자유 로히 가고 싶은 곳에 아무 때나 오고 가고 할 것이다. 이승과 저승의 여러 가지 종교설이 많지만 천국과 지옥 이야 기가 아닌 우리가 알 수 없는 4차원의 공간으로 가지 않을까? 잡히지 않는 바람이나 손으로 잡으면 이내 물로 변하는 이슬방울, 아니 면 흘러가는 구름에 합류되어 비가 되고 눈이 되는 것은 아닐까?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는 상상이지만 세상이 변하여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갈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는 성서의 말씀처럼 우리는 먼지로 돌아갈 것을 알아도 때로는 엉뚱한 상상의 날개를 편다.


오래전 아픔에 시달리며 생사를 오가던 동생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나에게 누군가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죽음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요.” 하며 위로하던 말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몸은 비록 늙고 병들어 세상을 하직하여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 보이지 않게 되어도 영혼은 살아있는 식구들과 이웃들의 가슴에 남아 기억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머무를 것이다. 때로는 날아다니는 새의 모습으로, 때로는 바람과 구름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머무는 것 같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새록새록 커져가고 있을 즈음 형제들과 함께 성묘를 가게 되었다. 산소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자리를 펴서 상을 차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디선가 노랑나비 하나가 날아왔다. 우리가 조상님들께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 있는데 그 노랑나비는 우리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예쁘게 춤을 추며 날아다녔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이 반가워 이 사람 저 사람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는 것처럼 그곳을 맴도는 모습에 놀라워할 때 그 노랑나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제야 그곳에 있던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아버지가 노랑나비가 되어 우리를 보러 오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비는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아 성묘를 하는 도중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혹시라도 사진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노랑나비를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생존에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이렇게 자손들이 찾아온 모습에 정말 행복하여서 나비가 되어 우리를 찾아오신 게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니 그 노랑나비를 한번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성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형제들과 그 나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마치 아버지를 만나고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특히나 멀리서 살며 아버지 생전에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나로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많다.


인자하시고 자상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온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가 더욱더 그리워진다. 이제는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아버지이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나비의 모습을 생각하며 우리를 찾아오신 아버지 마음을 가슴 깊이 담아 간다. 언제 또다시 성묘를 와서 만나 뵐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될까 하는 의문이 없어졌다. 생존에 사랑하던 자손들이 함께하는 자리에 조상님도 함께 하신다는 마음이 든다. 그것이 어떤 모양이 되었든 관계하지 않는다. 때로는 들에 핀 들꽃으로, 때로는 날아다니는 새로, 때로는 예쁜 노란 나비로 우리를 찾아오실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를 앞에서 끌어주시고 뒤에서 밀어주시며 옆에서 손 잡아주시며 우리 곁에 계시리라 믿으니 저절로 힘이 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만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 봄을 만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