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바람이 통하는 밖이 좋다. 나무 그늘 아래에 간이침대를 펴놓고 하늘을 본다. 맑고 푸르고 구름 하나 없는 넓은 하늘에 새들은 신나게 날아다닌다. 아무것도 거칠 것 없는 허공에서 날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보기 좋다.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가로등 꼭대기에 앉아서 놀기도 하며 세상을 내려다본다. 눈이 부시도록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는데 스르르 잠이 들어 몇 분 동안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여전히 햇볕은 쨍쨍하고 더워서 밀린 빨래나 해서 빨랫줄에 널고 싶은 생각이 든다. 햇볕이 너무 아깝다. 옛날에 한창 빵을 재미있게 굽던 시절에 쿠키를 굽고 나면 따뜻한 오븐이 아까워서 식빵 반죽을 해서 넣어 식빵을 만들던 생각이 난다. 햇볕이 아깝고 좋은 날씨가 아깝다. 매일이 덥다고 짜증을 내다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문다. 이 얼마나 소중한 햇빛이고 바람이며 비와 눈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가 오면 햇빛이 그립고 겨울에는 봄이 그립지만 서로가 없으면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겨울이 있기에 봄이 오고 아름다운 봄이 있기에 겨울을 견딜 수 있다.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하는 일마다 잘되는 사람이 없듯이 치열하게 살아온 것을 보면 하나를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 없이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고통은 따라다닌다. 보기에는 쉽게 성공한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무엇도 거저 되지 않는다. 멀쩡하던 하늘에 구름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하얀 뭉게구름으로 시작하여 여기저기 덮기 시작하더니 먹구름이 어디선가 와서 자리를 잡는다. 파란 하늘을 다 덮고 회색 하늘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본다. 호령하는 얼굴처럼 성난 모습이다. 구름이 바람도 초대해서 둘이 쑥덕거리더니 햇볕을 가려버린다.
얼마 전까지의 평화롭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이 세상이 깜깜해지고 바람이 들썩대며 이리저리 쑤시고 다닌다. 비가 오려나 보다. 비설거지를 해야 한다. 간이 의자와 침대 그리고 그네에 넣는 쿠션과 해먹도 접어서 치우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비가 올 것 같으니 햇볕이 아까워서 남편이 만들어준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 말리겠다는 야무진 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천둥 번개를 동반하고 소나기가 쏟아질 듯이 무척 요란하다. 바람은 여전히 심하게 불어 집안으로 들어와 앉아 있는데 벽난로에서도 바람소리가 들린다. 이제 비가 올 일만 남았다. 깜깜한데 아직 비가 안 온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토네이도 경보가 있다는 뉴스를 보는데 난데없이 서쪽이 조금씩 맑아진다. 바람은 서서히 잠들고 먹구름이 벗겨지며 파란 하늘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하더니 파란 하늘과 햇볕이 얼굴을 내민다.
참 희한하다. 그토록 무섭게 불던 바람이 자취를 감추고 올 것 같던 비는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토네이도 움직임이 보인다는 정보가 맞긴 했는데 이곳은 피해 가서 비가 오지 않았다. 비도 오지 않으며 괜히 소란만 떨다가 가버렸다. 다시 하늘은 맑아졌는데 구름이 잠깐 하늘을 덮어서인지 훨씬 시원해졌다. 비도 오지 않으며 엄청 많이 올 것처럼 구름과 바람을 동반하고 세상을 뒤집더니 다음을 기약하며 사라진 비다. 괜찮다. 비도 오고 싶어야 오고 바람도 불고 싶어야 분다. 내 마음대로 안된다. 비가 올 때가 되면 오고 바람도 불 때가 되면 불 것이다. 아까부터 떠들어 대던 까치들은 어디로 갔는지 조용하고 참새들만 짹짹대며 뒤뜰에서 논다. 평화롭다. 동네는 조용하고 바람은 잔잔하고 세상은 각자의 일에 열중이다. 피어난 꽃들은 바람 따라 흔들리고 텃밭에 야채들은 여전히 푸르름을 보여준다.
조금 전에 다녀간 요란한 날씨는 기억 조차 없이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천국이 따로 없다. 급하고 바쁘게 살아온 날들이 그 비바람처럼 어디론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버렸다. 숨 쉴 사이도 없이 살았던 날들이 오늘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수시로 바뀌는 인간의 마음처럼 하늘도 변덕이 심하다. 비가 올듯하다가 맑고 맑을 것 같다가도 비가 오듯 사람의 마음 또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뀐다. 갑자기 오는 소나기를 대비해서 비설거지를 하듯 날마다 우리를 찾아오는 변수를 막기 위해 고심하며 산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산다. 정신을 차리고 조심을 하며 살아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찾아와 행복과 기쁨을 주기도 하고 아픔과 고통을 주기도 하기에 마음은 언제나 바쁘다. 세월이 지나고 이렇게 평화를 누리며 살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삶은 요지경이라는 말이 맞다.
언제 아이들이 자라나 했는데 손주들을 보면 지난 세월이 보인다. 아이들도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지금의 내가 되어 편하게 살아갈 것이다. 직장 다니며 아이들 키우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았는데 하는 기억이 떠오른다. 돌아서면 할 일이 보이고 잠자고 나면 할 일이 쌓여서 언제 이런 생활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했는데 세월이 나를 오늘이라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 바쁠 것도 급할 것도 없이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는 삶을 가져다주었으니 나그네 생활 끝나는 날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뒤뜰에 앉아서 편하게 쉬다가 비가 올 것같이 천지가 요동치는 바람에 집으로 들어가 비를 기다리다 보니 다시 날씨가 밝아졌다. 우리네 인생도 이처럼 오락가락 속에 갈팡질팡하며 살다가는 것을 본다. 자연 속에 인생이 있고 인생 속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다.
어찌 보면 세상에 태어나 떠날 때까지 나그네가 되어 날마다 소풍을 다니며 사는 게 인생이 아닌가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하고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을 피하며 살다 보면 좋은 날도 힘든 날도 다 지나간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기적이 따로 없다. 인생 폭풍 속에 만났던 날들과 사람들이 그저 고맙기만 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