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맛있는 갈비탕에 사랑이 넘친다

by Chong Sook Lee



여름 날씨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영상 34도까지 올라가서 너무 더워 밤에 잠도 설쳤는데 갑자기 12도가 떨어져 영상 22도가 되니 추워 못살겠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가며 해는 구름 뒤로 숨어서 하루 종일 어두컴컴하다. 아무리 입추가 지났다 해도 이렇게 추워질 수가 있다니 긴 옷을 입고 있다. 8월 초면 아직은 한 여름인데 춥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뒤뜰에서 물장난을 하던 손주들인데 오늘은 집안에서 오르락 거리며 논다. 어린것들도 썰렁한 기온을 느끼나 보다. 더울 때는 시원했으면 했는데 막상 온도가 내려가니 뜨겁던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제는 일찍 잠을 자더니 일찍 일어난 손주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기저귀를 떼려는 3살짜리 손녀딸은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가자고 하고 5살짜리 손자는 층계를 오르내리며 운동을 한다고 부산을 떤다. 아침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점심때가 돌아오는데 무엇을 해 먹어야 하나 고민이다.


때가 되면 며느리가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데 내 살림이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가 하는 게 편하다. 뭐라도 하려면 어떻게 하느냐, 어디 있느냐, 무얼 넣느냐, 하며 이것저것 물어본다. 아이들과 정신없는데 남편더러 아이들 봐 달라고 하던지 며느리가 애들을 보게 하고 후다닥 내가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아들도 며느리도 손님이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있는 반찬 몇 개 꺼내놓고 찌개나 국을 끓여 먹으면 되는데 오랜만에 온 애들에게 뭔가 맛있는 것을 해 먹이고 싶다. 알아서 하면 모를까 며느리도 어쩌다 오는 시댁생활이 불편할 텐데 이래라저래라 시키기도 뭐하고 해서 내가 하는데 때가 되면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우리끼리는 전날 먹던 밥이 남으면 아침에 삶아서 먹어도 되고, 하기 싫으면 라면으로 때우기도 하는데 자식도 손님인 세상에 색다른 것을 해주려고 하다 보면 때로는 난감하다.


더구나 남편과 나는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기름진 음식보다 옛날에 한국에서 먹던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야채를 주로 먹는다. 큰아들이 결혼 한지도 10년이 넘는다. 그 애들 나름대로 생활 패턴이 있을 텐데 내 방식대로 하다 보면 서로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저희들하고 싶은 대로 놔둔다. 자고 싶으면 자고 쉬고 싶으면 쉬며 집안을 늘어놓거나 밤에 늦게 들어오거나 그냥 놔둔다. 자식이지만 다 큰 성인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해서 변하지 않는다. 알아도 하지 않을 수 있고 몰라서 못할 수도 있지만 살면서 배우게 된다. 이제 살 날이 짧아져가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자손들이 금실 좋게 행복하게 잘 살아가길 원하는 것뿐이다. 같이 있어야 며칠인데 네일 내일 따지며 살고 싶지 않다. 내가 힘들면 아이들도 힘들고 그 화살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그저 좋게 좋게 넘어가면 된다.


대인관계나 부모 자식 관계나 자꾸 따지면 서로 힘들다. 쌍둥이도 성격이 다른데 부모 자식 형제들은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싫다고 자를 수도 없고 좋다고 영원히 같이 살수 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순간순간 참고 기다리다 보면 좋은 날들이 올 것이다. 날씨는 다시 우중충하게 어두워지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손주들과 동네길을 걷는다. 손자는 스쿠터를 타고 보란 듯이 앞으로 빠르게 질주한다. 새로 배운 스쿠터가 재미있는지 이것저것 연구하며 탄다. 손녀는 들판에 있는 민들레꽃을 하나하나 따며 걸어간다. 엄마 것 아빠 것... 식구수대로 따서 앙증맞은 작은 손으로 꼭 쥐고 걷는다.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다. 마냥 행복한 웃음으로 걸어가다 앉아서 민들레 뽑다가 개미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무섭다고 뛰어온다.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가르친 것도 아닌데 하는 짓이 예쁘다.


사랑스러운 손주들과 있는 시간은 나도 덩달아 천진한 그들을 닮아간다. 그 시간이 좋다. 내가 아이들이 될 수 있는 시간은 손주들과 함께 놀고 대화할 때이다. 때로는 몸이 힘들어하지만 예쁜 손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어른들과의 대회에서는 절대로 이런 순수한 행복감이 생겨날 수 없다. 뛰어가고 달려가서 잡았다며 웃는 웃음소리가 허공에 퍼진다. 웃음소리는 바로 행복의 소리다. 하루가 어찌 지나는지 모르게 간다. 손주들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고 때가 되면 되도록이면 쉽고 간단하고 맛있는 메뉴로 한다.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어른들이고 손주들이고 다 귀찮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씨도 춥고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지는 날이다.


엊그제 사다 놓은 갈비가 있다. 오늘 메뉴는 갈비탕이다. 특별한 재료 없어도 푹 고운 갈빗살에 당면이나 두부를 넣어 맛있는 갈비탕을 만든다.


냄비에 넣어 30분간 핏물을 빼고 센 불로 30분 끓인 후 중불로 1시간 정도 끓이니 고기가 흐물흐물하게 익었다.

위에 뜨는 기름을 제거하고 양파와 마늘 생강을 넣는다.

무를 넣으면 시원하고 좋은데 무는 없으니 있는 재료로 대충 끓인다. 한 시간 반을 끓였더니 갈빗살이 뼈에서 술술 빠져나온다. 갈빗살은 먹기 좋게 대충 자르고 당면을 넣고 두부를 네모나게 썰어 넣어 한소끔 끓인다. 간장과 소금 그리고 후춧가루로 간을 하니 기가 막히게 맛있다. 끓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밖에는 특별히 한 게 없는데 그럴싸한 갈비탕이 되었다. 알맞게 익은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그리고 깻잎을 꺼내놓고 텃밭에서 자란 상추와 쑥갓을 씻어 놓으니 제법 먹음직스러운 밥상이다. 겨울에는 김장김치에 따끈한 찌개만 있으면 되듯이 갈비탕에는 김치 하나만 있어도 된다. 할머니 갈비탕이 최고 맛있다고 엄지 척을 올린다. 맛있게 퍼먹는 손주들 입안에서 갈비탕도 웃는다.


오늘 하루 손주들과 많이 웃고 행복했다.

갈비탕이 맛있게 만들어져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참 좋다. 행복이 별거냐 이런 게 행복이지. 내가 희생하고 내가 배려하면 평화가 온다. 손주들과 함께한 즐거운 하루가 간다. 식구들과 지지고 볶으며 싫으니 좋으니 하며 웃고 울며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는 게 행복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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