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사랑니야...

by Chong Sook Lee


(이미지출처:인터넷)


오래 썼더니 여기저기 고장이 난다. 배가 아파서 응급실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침을 심하게 해서 고생하는데 어금니까지 시큰시큰하다. 차가운 음식을 먹거나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면 싫어한다. 금방 괜찮아져서 먹는 데는 별 지장은 없지만 더운 여름에 시원한 물을 먹으려면 한 번에 시원하게 못 마시고 조금씩 치아를 달래야 한다.


치과에 가는 것을 워낙에 싫어하는데 어떨 수 없이 가야 한다. 치과에 가면 의례히 하는 엑스레이를 찍으며 설명을 듣는다. 왼쪽 맨 끝에 있는 사랑니에 충치가 생겼는데 빼야 한다는 것이다. 어금니라면 살려야겠지만 사랑니 이기 때문에 빼지 않으면 어금니를 상하게 할지 모른단다. 어금니인 줄 알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사랑니 라니 지금껏 내가 사랑니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니 정말 기가 막힌다.


어쨌든 사랑니를 빼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걱정이 시작되었다. 백해무익하다는 사랑니를 빼고 고생한 주위 사람 생각이 나서 겁난다. 더 늦기 전에 빼긴 빼야 하는데 망설여진다. 치과의사가 전문의를 소개하며 망설이는 이유를 물어보는데 무서워서 그런다고 하니 빼지 않으면 옆에 있는 어금니도 충치가 생길 거라며 빠를수록 좋다고 재촉한다.


몇십 년 가지고 살았는데 충치가 생겼다고 뺀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시큰거리긴 하지만 견딜 수 있고 신경 치료하고 크라운 하고 쓰면 안 될까 물었더니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사랑니에 미련두지 말고 빼라고 한다.


상담만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발걸음이 무겁다. 어금니와 사랑니 사이에 음식물이 자꾸 껴서 치실로 열심히 빼고 닦고 살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속이 상한다. 더 나빠지기 전에 미련두지 말고 빼야 하는데 신경이 쓰인다. 약속 날짜를 잡고 시간이 다가오니 마치도 애 낳으러 가는 심정이다.


괜히 이것저것 준비한다. 빼고 몸져누워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아픈데 무엇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아물기까지 고생할 생각 하니 걱정부터 앞선다. 그까짓 사랑니 하나 빼는데 무얼 그리 신경을 쓰냐고 하겠지만 사랑니 빼고 고생한 딸이 생각난다. 사랑니 네개를 한꺼번에 빼고 턱이 퉁퉁 부어 먹지도 못하고 누워서 쩔쩔매던 생각이 난다.


세월이 흘러 요즘엔 기술이 더 좋아졌겠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애들도 아니고 걱정하는 게 웃기지만 나는 겁난다. 김치도 담가놓고 국도 한솥 끓여 놓고 멸치 고추 조림하고 깻잎조림 등 밑반찬도 여러 개 해 놓긴 했지만 무섭다.


시간이 다가오니 불안하다. 어차피 빼야 하는 이라니까 속시원히 빼버리면 되는데 2시간 있으면 이미 내 몸에서 빠져나갈 사랑니 때문에 나는 벌써부터 무서운데 빼고 나면 분명히 시원하리라. 배 아픈 것도 나았고 기침도 이제 안 한다. 사랑니도 나를 떠나려 한다. 고통이든 통증이든 왔다가 간다. 그동안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맙고 빼고 나면 없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지리라.

*빼기전에 쓴 글



사랑니는 나를 떠났다.

나에게 통증을 주고 떠났다.

머지않아 잇몸이 아물면 고통이 없었던 듯 잊힐 것이다.

이제야 나는 철이 들 모양이다.

잘 가라 사랑니야....


*빼고나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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