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폭탄 맞은 듯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누워있으면 내가 질 것 같아서 신발을 신고 남편을 따라나선다. 대문을 열고 나오니 가을이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고 모른척하고 서 있다. 아직 나도 청춘인가 보다. 노란 세상을 보고 있으니 빙그르르 어지럼증이 밀려온다. 세상이 이토록 아니 이 지경이 되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린 가로수는 노란 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알고 하늘을 쳐다보며 오만을 떤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숲으로 향한다. 숲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황금 덩어리가 여기저기서 반짝인다. 노랗다 못해 눈이 부신다. 여름은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을 남겨놓고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은 노란 물감이 들었다. 세상은 다 노랗다. 내 마음도 덩달아 노랗게 물이 들었다. 숲에서 나는 길을 잃고 하늘을 보고 흐르는 계곡물에서 하늘을 찾았다. 파란 하늘이 물속에서 수영을 한다.
낙엽이 길을 막고 누워있다. 노랗고 빨간 크고 작은 단풍잎은 기력을 다해 떨어져도 곱다. 밟고 지나가기가 미안해 빙 돌아서 간다. 먼저 떨어진 것이 무슨 잘못이라고 밟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나무들이 나뭇잎들이 떨어지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고 더러는 군데군데 단풍이 지기도 했다. 단풍이 너무 고와 사진을 마구 찍는다. 찍어도 찍어도 더 찍고 싶도록 아름답다.
사람도 늙어갈수록 단풍처럼 아름다웠으면 좋을 텐데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주름살이 얼굴을 덮는다. 인생 계급장이라 생각하기로 했지만 날 피해 가지 않는 주름살이 얄미워 죽겠다. 멀리서 바라보는 숲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예쁘지만 가까이 가보면 그들도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다. 주근깨와 주름살이 나뭇잎을 수놓고 조금씩 말라간다.
수명을 다해 떨어지는 나뭇잎이 비틀거리며 앉을자리를 찾아다닌다. 오솔길에 떨어진 나뭇잎은 산책하는 나와 함께 가자고 하고 숲 속에 떨어진 낙엽들은 차곡히 쌓여 나무뿌리를 덮어준다. 더러는 계곡물과 함께 먼길을 떠나기도 하고 바람 따라 먼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떨어진 낙엽이 썩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가루가 되어 다시 고운 흙으로 태어나 숲을 덮는다. 조상 대대로 자자손손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닮았다. 태어나서 살다 늙고 병들어 죽고 이어지는 모든 생명의 진리다. 엊그제 내린 비로 오솔길이 젖어있어 잘못하다간 순식간에 미끄러진다. 조심조심 오르고 내려가다 보니 이마에 땀이 맺힌다.
파란 물감을 닮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아프다고 누워있지 않고 나오길 잘했다. 매일 새로 태어나는 하루처럼 나도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새로 찾아오는 하루를 외면하면 하루라는 시간도 나를 외면하고 갈 것이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산책로 입구에 서 있는 마가목 나무 가지가 허리를 굽힌 채 우리를 맞는다. 빨간 열매가 너무 무거운 가 보다. 사느라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육 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생하시던 부모님이 보인다. 지치고 피곤해도 자식사랑에 잠을 줄이고 배를 줄여가며 사시던 모습이 보인다.
이제 나이가 들어 그들의 사랑을 알아도 이젠 어쩔 수 없다. 누구든지 받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짧고 가늘고 굵고 길게 살아간다. 후회와 미련과 동행하며 감사하며 속죄하며 산다. 가을은 가슴을 설레게 하고 사람을 철들게 하나보다. 나무 꼭대기에서 다람쥐가 재주를 넘는다. 가을이 가기 전에, 겨울이 오기 전에 웃으며 살라고 한다.
하늘을 보고 계곡물을 따라가며 가을을 만난다. 아프다는 핑계 대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남편과 나와서 가을을 만나며 낭만의 데이트를 하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