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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단풍이 춤을 춘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하얗게 서리 내린 지붕을 보니 너무 추울 것 같다. 집 앞에 서 있는 백양나무가 곱게 물들어 간다. 낮에는 온도가 올라간다 하니 잠깐 참으면 될 텐데 마음으로 갈등한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라는 노래 가사를 흥얼대며 나왔다. 차들이 뿜어내는 연기가 짙어지고 바람이 불어서 노랗던 가로수는 많이 떨어져 길거리를 방황한다. 떨어진 낙엽은 어디로 갈지 몰라 이리저리 뒹굴어 다닌다. 바람이 부는 대로 바람 따라 굴러다니다 구석에 처박혀 웅크리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람은 여전히 불어댄다. 성질 급한 나무는 이미 나목이 되었고 느긋한 나무는 아직도 청춘이다. 몇몇 개는 군데군데 나온 새치처럼 물이 들었고 어느 것은 예쁘게 물이 들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먼저 와서 나중에 가는 사람이 있고 나중에 와서 먼저 가는 사람이 있듯 나무들도 앞서고 뒤서며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잠깐 쉬었다 가라고 신호등이 바뀐다. 길 건너편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삶을 끝내고 땅속에 누워 있다. 예전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요즘엔 땅에 박혀 있어서 눈이 온 겨울에는 찾기 힘들다고 한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라 생각하니 비석 하나하나의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태어나서 사랑을 받고 그리움과 추억을 남기고 간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세상 모든 만물의 끝은 흙이 된다. 세상에 나온 나무와 사람 그리고 모든 동식물이 피었다 지면 흙이 되고 다시 무언가로 세상에 나온다. 떨어진 낙엽은 무덤에도 있고 지붕 위에도 있다. 요즘에는 길거리에도 누워 있어 나와 함께 산책도 한다. 한 그루의 나무가 생기는 것도 몇 년이 걸리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너무 오래 사는 것도 겁나는 일이다. 부모가 백 살이면 자식도 일흔 살이 넘을 텐데 같이 늙어가야 할 것 같다.


새들이 바쁘게 날아다닌다.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간 다. 시옷자를 그리며 따뜻한 곳으로 가는 것을 보니 겨울도 머지않았다. 올해 여름은 너무 더워서 모기가 없었고 유난히 벌과 나비가 많던 한해였는데 날씨가 추워지니 보이지 않는다. 여름에는 뒤뜰에서 바비큐를 자주 하는데 벌들이 달려들어 합석을 원하여 곤란할 때가 많다. 어린 손주들은 소리를 지르며 울고 어른들도 손사래를 친다. 앉아 있으면 주위를 빙빙 돌면서 신경 쓰게 만들어 귀찮았는데 없으니 심심하다. 꽃이 없는 텃밭이나 화단에도 나비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나비를 보면 아버지 산소에서 보았던 노랑나비가 생각나서 유심히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보던 여름이 가고 나비도 갔다. 모든 것이 떠나가는 가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단풍으로 위안을 받는다. 잠깐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이에 오만 가지의 생각이 오고 간다.


산책로 입구에는 다리 수리를 하기 위한 중장비들이 버티고 있다. 엄청 많은 돈을 들여 재정비를 하는데 새로 놓은 다리와 층계들이 멋지게 들어섰다. 시간도 경비도 많이 들었지만 앞으로 몇백 년은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이곳 사람들은 일을 빨리 하지 않는다. 대신 한번 하면 정확하고 확실하게 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매일 걷던 다리인데 새로 놓으니 새삼스레 좋다. 다리 하나로 예쁘게 단장한 산책로로 멋있게 변신을 했다. 마침 때가 가을이라서 더 좋다. 양쪽으로 단풍이 곱게 들어가고 계곡물이 소리 없이 흐르는 낭만적인 숲이다. 오랫동안 가까이 있어도 찾지 않던 숲인데 코로나로 모든 것이 여의롭지 않게 되면서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들 집 옆이라 주차하기도 좋고 집만 봐도 아들 얼굴을 본 것처럼 좋다. 예쁘게 꾸며놓은 산책로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서 걷는다.


꼬불꼬불 한 오솔길이라 더 운치가 있다. 지난밤 심하게 불은 바람으로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서 낙엽이 길을 덮어 어지럽다. 노란 낙엽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어디가 길인지 잘 구분이 안 간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워낙에 겁이 많은 나 혼자서는 걸을 수 없는 길인데 남편과 함께 걸으니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계곡에도 낙엽이 덮었다. 가을비가 오면 저 많은 낙엽들이 강으로 흘러가리라. 햇살이 너무나 곱다. 단풍나무에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아침에 올까 말까 망설였는데 나오길 잘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에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행복하다. 아직 많이 걸어야 하지만 힘들어도 '끝까지 간다'를 외치며 걷는다. 가다 힘들면 쉬었다 천천히 가면 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오솔길은 오래 걸어도 그 자리인 경우도 있다.


가는 길에 커다란 나무가 누워있어서 길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한참을 돌고 오니 그 자리로 다시 왔다.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더 많이 운동해서 좋다. 행복을 찾으려면 한참 걸리고 힘들어야 가질 수 있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몸은 힘들었어도 손주들 재롱에 행복했는데 아이들이 가고 나니 몸은 편해도 심심하고 적적하다. 단풍이 빨갛게 들은 나무에 빨간 열매가 많이 열려서 몇 개 따서 먹어보니 오미자 맛이 난다. 몇 개 따먹었더니 갈증이 없어졌다. 사진을 찍으며 구석구석 구경하며 걷다 보니 끝까지 왔다. 만보 넘게 걸었다고 전화로 알려준다. 이만하면 잘 걸었다. 오늘 하루도 하늘 보고 단풍 보며 자연과 함께 잘 놀았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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