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수명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고 골골하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경우를 보면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가 있다. 명언 중에 명언이다. 영원히 살 줄 알고 살다가 갑자기 떠나는 게 인생이다.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때를 모른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도 준비 없이 산다. 준비해야지 하는 생각은 있지만 하루하루 사탕 까먹듯이 시간을 까먹고 산다.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냥 보낸다.
시간을 보내면서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타령만 하고 산다. 시속 70km는 빠르게 가는 속도다. 나이가 들수록 더 빨리 간다. 어릴 적 에는 나이 먹는 게 부러워 세월이 느리다고 투정했는데 이제는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투덜댄다. 그래도 시속 80km 보다는 천천히 가는 세월이라 붙잡을 수는 없어도 같이 놀 수는 있다. 숨 쉴 때마다 가버리는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숨이 차겠지만 같이 놀다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은 시간이 보인다. 하루가 천천히 가는데 한 달 두 달이 그냥 가서 벌써 가을이다.
내일이 오면 좋겠다고 보낸 하루들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라 해도 앞으로 오는 것은 잘 기억해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된다. 약속을 해놓고 적어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이야기하다가 할 말이 있었는데 잊어버린다. 어제저녁 때 쌀을 씻어 물에 담가 놓고 텔레비전과 놀았다. 밥을 먹으려 하는데 밥을 안 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제야 부리나케 짜장면을 만들어 저녁을 먹었다. 한심한 노릇이다.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 정신 놓고 사는 사람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짜장면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지만 밥하는 것을 잊은걸 생각하면 기가 막히다. 앞으로는 더할 텐데 걱정이다. 사는 동안 몸과 마음이 늙어가는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시간은 제 마음대로 제 갈 길을 신나게 간다. 잡을 수도 없고 잡아서도 안 되는 시간인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시간은 어디까지 왔는지 모른 채 산다. 한 치 앞을 모르기에 살고 내일을 희망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어제는 어제의 모습으로 왔다 갔듯이 오늘은 오늘의 모습으로 내게 올 것이다.
급할 것도 없고 미련 둘 것도 없는데 마음은 따로 논다. 괜히 걱정하고 괜히 바쁘다. 내 인생은 이미 계획되어 완성되어 가는데 나만 모르고 안달한다. 안달해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더 잘하기 위해 더 많이 인정받기 위해 앞으로 달린다. 나의 목적지는 정해져 있는데 나만 모른 채 자꾸만 멀리, 높이, 빨리, 내 맘대로 가려고 한다.
오늘 내게 온 하루 하고만 놀자. 어제가 갔듯이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는 것은 내일이 알아서 한다. 내일을 생각하다가 오늘은 놓치지 말고 나를 찾아온 오늘이라는 하루와 놀면 된다. 오늘은 이미 내게 왔으니 내일과 놀고 싶다고 오늘을 푸대접하다가는 내일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만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잘 대접하고 살다 보면 내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도 대접을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듯이 내게 온 시간도 잘 대접하고 살아야겠다.
봄에는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봄을 보내고 여름에는 덥고 해가 길어 힘들다고 짜증 내며 여름을 보낸다. 가을이 오면 여름이 벌써 가고 가을이 온다고속상해한다. 예쁜 색으로 울긋불긋 물든 가을을 만나면 봄과 여름은 잊고 가을이 최고 좋다고 한다. 가을은 익어가고 세상은 물들어 아름다운 틈을 타서 겨울이 온다. 겨울이 조금씩 오는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갑자기 겨울이 와서 너무 춥다고 한다. 겨울이 왔다가야 봄이 온다.
우리네 인생이 길어야 백 년이고 백 년도 못살고 가는데 70km, 80k m 따지지 말고 오늘 만나는 하루와 잘 살면 된다. 집으로 가는 길인데 서두를 것도, 늑장 필 것도 아니다. 가라는 대로 가다 보면 어느 날 집으로 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 만나는 날들을 기쁘게 맞고 보내다 보면 100km로 달려가는 지점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온 오늘과 사이좋게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