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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무엇인가

영화 리뷰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우연히 짧은 영화를 봤다.

제목은 "노인"이고 1시간 13분짜리다.




노인이 간신히 일어난다.

정년퇴직 전날 저녁에 정년퇴직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과음을 한 노인은 술병이 나서 잘 일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기에 아내가 끓여놓은 콩 나물국으로 해장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양말을 신으며 서랍에 있는 서류를 한참 본 후에 다시 집어넣고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35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하는 날, 상사가 무궁화 1개가 그려진 경위 배지를 어깨에 달아주며 정년퇴직을 축하한다. 마지막 날이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편히 쉬라는 상사의 말을 들으며 시간을 죽이는 노인의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토록 기다려온 정년퇴직인데 머릿속으로는 근심이 많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젊은 파트너가 퇴직 선물로 준 넥타이 핀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그날도 어김없이 다리가 불편한 학생을 업고 수십 개의 층계를 올라가면서 정년퇴직을 하기 때문에 내일부터는 다른 사람이 도와줄 거라고 이야기를 한다. 층계를 내려오다가 누군가 고충 빌딩 옥상에서 자살시도를 한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현장에 간다.


현장에 가서 보니 젊은 사람이 옥상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겁을 주고 있다. 옥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 놓고 뛰어내리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다가서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파트너는 남겨두고 옆 빌딩 옥상으로 가서 간신히 그 빌딩으로 넘어가 젊은이에게 접근한다.


그러지 말고 내려가라는 말에 젊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를 부린다. 노인은 조금씩 젊은이에게 접근하며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소리만 질러 대던 젊은이가 노인 경찰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다시 시작하라고 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죽는 길 밖에 없다고 한다. 아침에 선물로 받은 넥타이 핀을 주며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 노인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부인과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부인이 무리를 하며 비싼 계를 했는데 계주가 도망을 가서 집을 날렸고 35년 동안 일한 퇴직금을 딸이 어딘가에 투자를 했는데 사기를 당한 이야기를 한다. 부인은 식당에서 뒷일을 거들고 딸은 슈퍼에서 밤새 일하며 고생하지만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고 마음을 돌리라고 한다.


젊은이는 노인의 말을 듣는 듯 하지만 모든 것은 다 끝났다고 죽는 길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뛰어내리려고 일어선다. 노인은 그럼 서로 같은 처지에 식구들에게' 다시 시작하자며 사랑한다'. 는 메시지를 보내고 뛰어내려라".라고 한다.


노인은 먼저 부인에게 " 맨 아래 서랍 밑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식당에서 일하는 부인은 뜬금없는 메시지를 읽는다. 그리고 젊은이는 한 줄의 메시지를 쓰기 위해 고개를 숙일 때 노인은 빌딩 아래로 떨어진다. 노인이 떨어지는 것을 본 젊은이는 마음을 바꾼다.


젊은이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소방차와 경찰차는 노인이 떨어진 것을 본다. 더 이상 살길이 막막한 노인이 할 수 있는 길은 일하다가 현장에서 떨어져 죽으면 받을 수 있는 보험뿐이었다.


노인이 아침에 집을 나오며 서랍에서 본 보험 서류에 3억이라는 보험금이라도 타서 남은 모녀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노인은 그렇게 젊은이를 살리고 자신의 길을 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노인의 방법이 최선인지 최악인지 모른다.

퇴직을 앞두고 늙은 몸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노인은 앞이 깜깜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노인은 자신의 최선을 다 한 것이라 믿는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고 퇴직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고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가진 것을 다 잃고 맞아야 하는 정년퇴직은 암흑처럼 무섭고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곳에 노인이 가서 젊은이는 죽지 않았지만 노인이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젊은이는 죽고 노인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렇게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노인에게 죽음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아무도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둘 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지만 최후의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어쩌면 보험을 타기 위해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가장한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인 때문에 젊은이가 죽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계획된 자살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노인은 세상을 떠났고 젊은이는 세상에 남겨졌다. 노인의 식구들이 노인의 소망대로, 아니면 계획대로 보험금을 탔는지는 모른다. 영화는 여러 가지 의문을 던져주고 끝을 맺는다. 삶은 답이 없고 선택한 길을 가는 것이다.


다만, 노인의 죽음을 본 젊은이가 다시 시작하여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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