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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처럼...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글도 써지지 않는다.

책을 읽고 싶지도 않고 유튜브도 재미없다.

할 말도 없고 할 일은 많지만 하기 싫다.

이런 날은 산책을 나가는 게 최고다.

어제 내린 우박 때문에 온도가 많이 내려가서 아침에 나가려고 하니 너무 춥다.

겨울 코트를 입으려 했는데 혼자 겨울을 만난 것 같아 춥더라도 조금 참고 가을 재킷을 입고 걷는다.

나뭇잎들이 조용히 내려앉아 차곡히 쌓여있다.

내 마음도 내려놓고 살아야 할 텐데 여전히 고집도 세고 욕심도 많다.

아직 떨어질 준비가 안되었나 보다.

엊그제만 해도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는데 이제는 하나둘 떨어진다.

나뭇잎으로 꽉 찼던 숲에 서있는 나무들이 가지만 남아 휑하여 저 건너편이 훤히 보인다.

숲 속의 오솔길이 많이 넓어졌다.

그 많던 풀들이 누운 지 오래고 계곡물은 군데군데 살얼음이 얼어 나뭇잎이 갇힌 채 잠이 들었다.

살얼음이 얼은 게 믿기지 않아 작은 돌멩이를 던져본다. 두껍지 않아 동그랗게 포말을 그린다.

영하의 날씨지만 한참을 걸으니 덥다.

파란 하늘에 몇 마리의 기러기들이 남쪽을 향해 날아간다. 봄에 떼를 지어 날아오는 것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 되어 그들이 가는 것을 보니 정말 세월이 빠르다.


날씨가 따뜻하던 봄날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수백 마리의 기러기가 하늘을 가르며 오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몇십 마리씩 날아가는 것은 여러 번 보았지만 그렇게 많은 기러기들이 이동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앞서고 뒷 서며 하늘을 까맣게 덮으며 가는 모습이 민족 대이동의 명절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곳의 여름은 짧지만 너무 덥지도 않고 습하지 않기 때문에 살기 좋다. 끈적이지 않고 신선한 공기로 휴가 겸 이곳에서 여름을 나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물이 많아 많은 새들의 서식지가 된다.

호수와 강이 크고 맑으며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여름을 보내고 간다.

사람들도 아름다운 것을 찾아다니듯이 짐승들도 자연이 깨끗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짐승들은 자연이 더럽고 병이 들면 기가 막히게 알고 그곳을 떠난다. 폐수가 흘러들어 오염이 되면 짐승들이 먼저 떼죽음을 당하고 자취를 감춘다.

그런데 사람들은 떠나지 못하고 살다 보면 병을 얻고 고생을 한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해치고 사는 현실이 무섭다.

식수가 오염되어 시름시름 앓다 죽는 이유를 모르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나만 살면 된다는 의식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된다.


숲이라 그리 바람이 불지 않아 햇볕이 비추는 곳은 따뜻하다. 산짐승들은 어딘가에 있는지 조용하다. 토끼가 많이 있었는데 요즘에 토끼를 본지 오래되었다.

지나가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니 늑대가 토끼를 다 잡아먹어 토끼가 없단다. 사람들이 동물들에게 음식을 주는 것을 금지해도 몰래 먹이를 주기 때문에 동네 주택가를 어슬렁거리며 쓰레기통을 뒤진다. 사람들을 통해 얻은 음식을 먹으며 번식을 하고 산속에 사는 토끼수는 줄어드는 것이다.



걷다 보니 새집들이 나무에 걸려있다.

겨울에 먹을 게 없는 새들을 위해 사람들이 새 먹이를 가져다주는데 점점 새들의 먹이를 찾는 본능이 없어지는 이유다.

올해는 뒤뜰에 해바라기 모종을 몇 개 심었는데 한 개가 크게 자라더니 예쁜 꽃을 피어 씨를 물고 서 있었다.

가을이 되니 씨가 까맣게 익어 하나를 꺼내서 먹어보았더니 너무 맛있어서 며칠 뒤에 씨를 빼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오후에 여기저기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씨를 빼려고 보니 새들이 다 빼먹고 빈 머리만 바람에 흔들렸다.

고개 숙인 해바라기 씨를 새들이 어찌 알았는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버려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 약이 오르기도 하고 씨가 얼기 전에 새들이 잘 먹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들은 새들대로 자연 속에서 음식을 찾아먹고 짐승들도 각자 먹이를 찾아다녀야 하는데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맛을 들여서 도시로 내려와 번번이 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어 걱정이다.

정부에서 금지하는데도 음식을 주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은 파괴되고 피해는 인간이 입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이제 늑대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짐승의 포악한 본능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데 은근히 걱정이다.


떨어진 낙엽이 숲 속에 있는 오솔길을 덮어 길이 보이지 않고 수북하게 쌓여있는 낙엽은 좋은 거름이 되어 새봄에 예쁜 싹들로 돋아날 것이다. 추운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렵기는 하지만 봄으로 가는 길이기에 참고 기다린다. 조용히 내려앉아 겨울을 맞이하는 낙엽처럼 나도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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