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석양이... 하늘을 빨갛게 물들인다

by Chong Sook Lee


춥다.

아침 온도가 영하 5도인데 체감온도는 영하 9도란다.

10월 중순 날씨치고는 추운 온도다.

춥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하늘은 높고 푸르다.

자작나무가 떨어뜨린 낙엽이 앞뜰에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어 다닌다. 화단에도 소나무 아래도 쌓여있는 낙엽들은 흙을 덮어주며 겨울을 준비한다. 흩어져있는 낙엽을 긁어모아 버려야 할 텐데 날씨가 너무 추우니 게을러진다. 바람은 차지만 햇살이 따스하여 오후가 되면 가을 날씨로 돌아와서 다시금 가을을 느끼게 한다.




몇 년 전 10월 어느 날 함박눈이 와서 뜰을 하얗게 덮고 빨간 마가목 열매에 눈으로 하얀 모자를 씌웠던 날이 생각난다.

구름이 하늘을 덮고 하나둘 내리던 눈이 순식간에 함박눈으로 변해 세상을 온통 하얗게 했던 날이다.

낙엽도 긁지 못하고 겨울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겨울이 왔구나 생각했는데 한 시간여를 내리던 눈이 그쳤다. 봄이나 되면 눈이 녹을 것 같이 쌓였던 눈이 다 녹고 날씨는 다시 가을로 돌아갔다. 겨울이 잠깐 들려서 사람들을 겁주고 가버리고 크리스마스까지 눈이 오지 않았다. 거리에 눈이 없으니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은 겨울인 줄도 모르고 거리를 질주하기도 했다. 그렇게 12월까지 올 것 같지 않던 겨울이 1월에 와서 눈폭탄을 내리고 혹한이 계속되었다. 집집마다 눈을 쌓아놓고 거리는 그야말로 눈으로 전쟁터로 바뀌었다. 사고 한번 나면 구조차를 몇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고 어디를 가려면 모자 목도리로 몸을 감싸야했는데 올해는 어떤 겨울이 올지 궁금하다. 사람들 말로는 춥고 비싸고 힘든 겨울이 올 거라는데 겨울이 오는 게 겁난다.


며칠 전 어떤 영화 장면에 눈 쌓인 곳에서 고생하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직접 당한 일도 아닌데도 겨울이 싫어 영화를 보다 말았다. 조금씩 추워지는데 아직까지는 좋은 가을이 계속된다. 그까짓 겨울 추우면 옷을 껴입고 왔다 갔다 하고 더 추우면 집안에 있으면 되지만 점점 겨울이 싫어진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같이 좋은 나라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 봄이 일찍 오고 온갖 꽃들이 피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어디든 달려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산들이 많아 숲이 그리우면 가고 강으로 가고 아름다운 가을 단풍맞이를 하며 산다. 겨울이라고 하지만 그리 춥지 않고 길지 않은 한국의 날씨가 새삼 부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는 '인디언 썸머'가 있어 늦가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올 때 갑자기 따뜻해서 다시 여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날씨가 되어 추수를 미처 하지 못한 사람들도 마저 하며 겨울준비를 한다. 오는 겨울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이 가기 전에 인디언 썸머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희망을 갖게 된다.

그렇게 며칠 동안 빌미를 주어 겨울을 맞이하는 신비한 자연이다. 삼한사온이라는 겨울 날씨 역시 사람이 살게 끔 자연이 도와주는 섭리 이리라.




추워지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본다. 바람에 굴러다니는 낙엽들이 방황하며 여기저기 쌓이는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길 건너 타운하우스는 겨울 청소를 하느라 하루 종일 바쁘다. 청소업체가 와서 잔디 위에 떨어진 낙엽을 불어 모아 백에 집어넣고 있다. 낙엽이 없으니 새파란 잔디가 얼굴을 내밀며 햇살을 받는다. 다시 여름이 온 것처럼 새파랗다.

긴 가뭄에 누런 잔디로 한여름을 보냈는데 가을비를 맞으며 예쁘게 자랐다. 얼마 있으면 하얀 눈이 덮겠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잘난 체하며 힘들었던 지난여름을 회상하리라.


계절이 오고 가며 남겨놓은 추억들이 희미해지면 새로운 계절이 오듯 아이들이 크고 손주들의 모습을 보며 기뻐하며 산다. 잊지 않을 것 같은 일들도 하나씩 잊혀 가기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도 언젠가 그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희미해져 잊힐 것은 서운하지만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아름다웠던 여름의 푸르름도 노랗고 빨간색으로 눈을 물들이던 단풍도 이제는 다가오는 겨울 속에 묻혀서 사라져 간다.


오늘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내일이 되면 퇴색하고 새로운 날들과 만난다. 삶은 앞으로 가기에 이어지는 것이다. 돌아갈 수도, 돌아볼 수도 없는 날들이 있기에 내일을 향해 간다. 추수가 끝난 황폐한 들판에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다 녹으면 또 다른 새싹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미련이 있어도 머물 수는 없는 것이기에 자리를 양보하며 세월을 따라간다. 석양이 빨갛게 하늘을 물들이며 안녕을 고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낙엽처럼...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