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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노래하고... 토끼가 잠자는 곳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앵두나무와 사과나무의 이파리가 꽁꽁 얼었다. 단풍도 들지 않은 채 겨울을 맞으며 봄을 기다려야 한다. 다른 나무들은 울긋불긋 예쁜 색으로 떠나는 데 새파란 잎으로 얼은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며칠 전 늦게나마 꽃을 피운 해바라기도 꽁꽁 얼어 서 있는 게 미안했지만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심한 요즘에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이른 아침부터 참새들이 수다를 떤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무슨 말이 그리 많은지 알 수 없다. 앞뜰에 있는 밥풀꽃 나무도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는데 날마다 참새들의 수다를 들어서 그런지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참새들이 모여들어 한바탕 난리를 치다가 어디론가 가버린다. 새들도 사람들처럼 일상이 있는지 참새 두 마리가 소나무 가지를 오르내리며 무언가를 쪼아 먹고 논다. 멀리서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전나무 꼭대기에 앉아 깍깍 대니까 멀리 있던 짝이 날아온다.


새도 사람처럼 끼리끼리 다니고 짝을 맞춰 논다. 새들도 나름대로 구역과 질서가 있어서 철저히 지키는 것을 본다. 우리 집에는 까치와 참새 그리고 블루 제이와 로빈 이 산다. 그들은 종류가 다르지만 오랫동안 같은 장소에서 서로 봐서 그런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한다. 그들도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난여름에 날이 너무 덥고 가물어서 새들이 마실 물을 뜰에 떠 놓았는데 까치들이 싸움이 났다. 그들도 서열이 있는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물그릇을 가운데 놓고 털을 세우며 싸우는데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대장이 마시고 나서 차례로 마시며 일단 싸움은 끝났는데 아마도 물속에 먹이 거리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각자 할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처럼 새들 역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산다. 나뭇가지에 올라가서 짝을 부르던지 먹이를 찾아 먹든지 항상 바쁘다. 텃밭의 채소를 정리하고 땅을 뒤집어 놓으면 새들은 더 바빠진다. 땅속에 살던 벌레들을 잡아먹느라 더 많은 새들이 우리 뜰을 찾는다. 까치가족이 다녀가고 참새 가족이 와서 열심히 먹을 것을 찾아먹고 가면 블루제이가 온다.


서로 부딪히지 않는 게 서로 편한지 어딘가에서 지켜보다가 아무도 없을 때 양껏 먹고 간다. 만나면 서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 참고 기다리며 각자의 배를 채운다. 까마귀도 많은 동네인데 우리 집 뒤뜰 안에 까마귀는 들어오지 않는다. 담 밖에 있는 전나무 꼭대기에서 앉아 있고 소나무 가지에 쉬기도 하고 가로등 꼭대기에서 가족을 부르며 세상을 내려다볼 뿐 까치와 싸우지도 않고 잘 논다. 작년 여름에 까마귀 새끼를 잘 돌보아 주어서 인지 까마귀는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신 노릇을 한다.


창밖에 보이는 참새가 무언가를 입에 물고 흔든다. 먹을 것은 아닌지 발로 찢고 부리로 흔들며 한참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간다. 까치가 오더니 그것을 보고 또 논다. 비닐 조각 같은데 먹지도 않고 쪼아보고 흔들어보더니 입에 물고 날아간다. 심심한 애들이 노는 것 같다.


아이들도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나무 조각이나 돌멩이를 주워 놀다가 소중한 것을 찾은 듯이 가져온다. 아이들이 어릴 때 청소한다고 어디선가 주워 온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버렸다가 한바탕 소동이 난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데 아이들 눈에는 특별했는지 물어보지 않고 엄마 마음대로 버렸다고 서러워했다.


새들이 놀다가 입에 물고 날아가는 것을 보니 애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날씨도 춥고 아침에 볼일을 보느라 산책을 나가지 못했는데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도 괜찮다. 새들 먹으라고 새 먹이 통을 나무에 걸어 놓으면 더 많은 새들이 오겠지만 이대로가 좋다. 사과나무에서 제일 잘 익고 맛있는 것을 골라먹고 빨갛게 익은 마가목 열매를 따먹는다.


낮에는 필요한 것을 찾아다니며 먹고 밤이 되면 우리 뜰로 들어와 잠을 자면 된다. 아침에 나갔던 참새들이 퇴근을 했는지 앞뜰에 있는 밥풀 꽃나무 안에 모두 모였다.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으며 시끌시끌하다. 동트는 시간에 모여서 놀고 해질 녘에 다시 만나서 논다. 그러다 어디론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9시쯤 다시 나무를 찾아와 잔다.


한 곳에 오래 살다 보니 새들도 가족이 되었다. 올 때 오지 않으면 기다려지고 수다 떨 시간에 조용하면 궁금하다. 하루종일 어딘가로 마살을 가는 토끼는 밤이 되면 우리집 앞뜰에 있는 등굽은 소나무 아래서 잠을 잔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 집에 살지 모르지만 새들이 나무에서 놀고 뜰에서 먹을 것을 찾아먹으며 우리를 보살펴준다. 새들과 토끼들이 사는 곳은 평화가 깃든 곳이다.

공기도 좋고 편하기에 우리가 사는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사는 것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땅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나무에 열린 것을 먹고 놀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새들이 사시사철 노래하고 토끼가 소나무 아래서 잠을 자는 이곳이 좋으니까 머물 것이다. 내가 사는 우리 집이 지상천국이다.

(사진:이종숙)

https://brunch.co.kr/@chonglucialee/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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