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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05. 2020

비에 젖은... 새끼 까마귀의 이야기


집앞의 나무가 일출의 힘으로 가을모습을 하고 있다.(사진:이종숙)





숲이 많고 나무가 많은 이곳은 까마귀나 까치가 많다. 어딜 가도 있으니 있나 보다 하며 신경도 안 쓴다. 까치가 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하도 많으니  귀하지도 않고 안 보여도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땅이 넓은 우리 집엔 까치들이 매일 드나들고, 뒤뜰에 와서 놀고, 담에 앉아서 우리 집 망을 봐준다. 먹는 것이 있으면 서로 싸우고 자기네 구역 지키기에 게을리하지 않는다. 며칠 전 텃밭에 채소를 뽑아내고 흙을 뒤집어 주었더니 벌레를 찾아 먹느라 까치들이 싸우고 난리를 쳤었다. 먹는 것 앞에는 양보가 없다. 그 사이 참새들도 한몫 껴서 몰래몰래 벌레를 잡아먹으며 도망치고 쫓아가는 진지한 모습에 한참을 구경을 했다.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에 제일 크고 맛있는 사과는 영락없이 까치가 쪼아 먹어 버리게 된다.


어찌 그리 맛있는 사과를 기가 막히게 알고 먹는지 약이 오르지만 그 애들하고 나눠 먹는다. 긴 겨울 그들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 놓지만 와서 먹는 같지는 않다. 대신 까치들은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 것을 꺼내먹는 나쁜 습성이 있다. 아무리 두꺼운 봉투도 부리로 찍어 쓰레기봉투를 파헤쳐서 먹고 싶은 것을 꺼내 먹기 때문에 쓰레기 수거일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까치들의 만행은 그것뿐이 아니지만 먹을 것이나 쓰레기를 감춰놓으면 별로 해칠 것은 없는 새이다. 까마귀도 역시 많아 여기저기 날아다녀 싫어하는 새다. 생김새가 커서 어쩌다 머리 위로 날아가면 섬찟하여 고개를 숙이고 피하게 된다. 그런데 새끼 까마귀 한 마리가 등 굽은 소나무 가지에 며칠째 쭈그리고 엎드려 있다. 어쩌다 일어나서 꼬물거리다 다시 주저앉아 자는 척 누워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만 3일 전 비가 오는 날에 유난히 까마귀가 시끄럽게 동네를 깨웠다.




그들은 목소리도, 생김새도 싫어서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는데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니 온몸이 비에 푹 젖은 채 가지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기분 나쁜 새끼 까마귀가 집 앞의 나무에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렸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불길한 곳에는 언제나 까마귀가 날고 까마귀 울음소리가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는 것을 여러 번 본다. 그래서인지 선입견이 발동하여 기분이 안 좋았지만 어린 새끼가 비를 맞고 꼼짝 못 하고 있는 게 애처로워 보였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날은 비가 하루 종일 왔는데 나무 가까이에 사람이 다가가면 어디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어미 까마귀가 잽싸게 날아와서 새끼의 안전을 확인하고 가까이 가서 무언가를 주고 나오는 듯했다. 어제는 다른 가지로 옮겨 앉아서 전혀 보이지 않아 어디론가 간 줄 알고 자세히 안쪽을 보니 다른 가지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부리는 하얗고, 입안은 빨갛고, 뒷날개를 펴면 하얀 줄이 있다. 눈은 까맣고 반짝이는 까마귀는 머리가 명석하여 한번 본 얼굴을 기억하고 은혜를 갚고 원수를 갚는다는 속설이 있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어디로 갔는지 안 보여서 나가보았더니 안쪽에 있는 가지에 숨어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집으로 들어가려 는데 어디선가 있던 어미 까마귀가 급히 날아와서 나무 위를 한 바퀴 돌더니 전봇대 위에 앉아 아비 까마귀를 깍깍하며 불러 댄다. 어딘가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날아와 건너편 전나무 꼭대기 가지에 앉아 새끼 까마귀를 쳐다본다. 새끼 까마귀는 가만히 앉아서 엄마 아빠 소리를 듣고 꼼지락 거리지만 그대로 있다. 멀리서 새끼 까마귀가 안전한 것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다. 나는 그냥 집으로 들어와서 못 본 척하고 있으니 그들은 멀리 날아간다.


하릴없는 나는 까마귀가 그 자리에 있어도, 안 보여도  괜히 신경을 쓰며  틈틈이 안 보는척하며 기웃거려 본다. 아침에 둘째 아들손주들을 데리고 잠깐 들려서 놀다 갈 때  까마귀 얘기를 했다. 아들도 깜짝 놀라며 어쩌면 음식이 필요한지 모른다며 먹을 것을 줘야 한다고 먹던 수박 한 조각을 땅에다 놓아주며 "까마귀는 기억력이 좋아 저한테 잘해주는 사람을 지켜준대요." 라고 하여 한바탕 다. 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동물도 나름대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날씨가 아주 더날에 다리를 다친 까치가 절뚝거리며 뒤뜰에서 쩔쩔 맨 적이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간호원이던 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물을 가져다주고 동물 보호 센터에 전화를 하라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혀 기겁을 했던 생각이 난다. "흔해 빠진 까치가 절뚝거린다고 무슨 전화까지 하느냐?" 하고 무시했는데 이번에는 까마귀가 저러고 있어 걱정하는 내가 되었다.


오래 살다 보니 심성이 바뀌나 보다. 아까 준 수박은 그대로 놓아두고  까마귀가 안심을 했는지 화단에서 서성대며 한발 두발 걸어 다닌다. 먹을 것도 없는 바닥을 꼭꼭 꼭 찍어대며 이리저리 다닌다.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에 걱정할 것도 없지만 가까이에서 보게 되니 궁금하고 재밌다. 아까 놓아둔 수박은 건드리지도 않았는지 그대로 있는데 까마귀는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어딘가 보이지 않는 구석에 머리를 박고 누워 있을게 분명하다. 이따 저녁때쯤 서서히 나올 것이다. 아니면 부부 까마귀가 새끼 까마귀를 데리고 산보를 나갔는지도 모르고, 소리치고 나는 법을 가르쳐 주는지도 모른다. 오전 내내 조용한 것을 보니 어쩌면 새끼 까마귀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동물의 세계도 우리처럼 나름대로 삶의 원칙이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혼자 비 맞고 앉아 있는 까마귀가 불쌍했는데 맑은 날 어딘가 좋은 곳으로 가서 훨훨 날아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는다.  




까마귀 얘기를 하며 얼굴색으로 차별받는 세상이 생각난다. 특히 한국 사람은 까마귀 소리만 해도 재수 없다고 하는데  검게 태어난 까마귀가 무슨 죄가 있는가? 따지고 보면 다 먹고살기 위해 죽음의 장소에 가야 할 뿐이다. 우리가 물불 안 가리고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과 다름없다. 괜히 검고 커서 징그럽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어찌 보면 까마귀보다 까치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은 피해를 고 있는데 하얀 털이 조금 있어 예쁘게 생겼다고 까치는 사랑받고, 색이 검은 까마귀를 저주의 눈으로 보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예부터 까마귀에 대한 말이 많다. "백로야,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말라."  "까마귀가 겉이 검다고 속까지 검을쏘냐?"라는 말이 있다. 패를 가르고, 다름으로 차별하고,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인간의 나쁜 버릇을 꼬집는 말이다.  백로도, 까마귀도, 좋고 나쁜 점이 있거늘 생긴 것으로 끼리끼리 하는 인간의 못된 습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사고방식 때문에 세상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나와 다르다 해서 차별하는 인간의 잔인추악함으로 많은 사람이 가슴에 피를 흘리며 산다. 얼굴색으로 차별하며 아무 죄 없이 차별당하는 세상이다. 검다고 차별하고, 노랗다고 차별하고, 이민자라고 차별하는 세상 속에 섞이지 않고 고향에서 살고 죽는 사람은 인류 역사상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까마귀, 까치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한 여름에 아침햇살로 단풍이 들었네요.(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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