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구름이 껴서 눈이라도 올 것 같다. 이런 날은 따끈따끈한 국밥이 생각난다. 코로나 4차 유행이 심각해지고 세상은 살벌하다. 가고 싶은데도 못 가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맛있는 식당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다니던 것은 옛날이야기다. 위험을 무릅쓰고 식당에 갈 수도 있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집에서 해 먹는 것이 마음 편하다.
식당에 간다고 다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괜히 께름칙하여 안 가게 된다. 재수 없으면 코로나로 고생하는 세상이라 맘 편하게 집에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프면 본인만 손해 보는 세상이다. 예전 같으면 동네에서 국밥을 맛있게 만드는 식당으로 달려가서 한 그릇 먹으며 행복해할 테지만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볼일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도매상에 잠깐 들렸다. 물건을 보면 사고, 사다 놓으면 집안이 복잡하여 꼭 필요한 물건만 사려고 노력하는데 일부러 다시 오기 싫어 몇 가지 사러 들어갔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싣고 정신없이 다닌다. 몇 년 전까지 식당을 했기 때문에 열심히 장을 보던 때가 생각난다.
한차 가득 사다 놓아도 며칠 지나면 하나둘 떨어져 다시 사러 가기 전에 없는 것을 손님이 시키면 급하게 옆 집 슈퍼로 달려가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다가 해 주어야 한다. 가격은 도매상보다 비싸지만 손님에게 물건이 없어 못해준다고 할 수가 없으니 임시 대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익은 별로 없지만 배가 고파서 온 사람인데 먹고 싶은 것을 해주는 게 도리다. 식당을 하다 보면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싫어도 좋아도 손님의 비위를 맞춰주어야 한다. 해달라 는 대로 다 해주어도 사람의 마음은 언제 변할지 모르지만 식당을 하는 한 그들이 왕이기에 참는다. 다 먹고 돈내기 싫어서 맛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먹고 조금 남긴 음식에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는 사람도 있다. 다음을 위해 미안하다고 하며 보냈지만 잊히지 않는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매상이라 모든 물건들이 크고 많고 채소와 과일은 싱싱해서 간혹 와서 산다. 우유와 야채를 사고 설거지 비누를 사고 돼지고기 목살 스테이크와 족발도 샀다.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마침 마땅한 것이 있어 샀다. 푹푹 끓여서 뽀얀 국물에 파 썰어 넣고 고춧가루 조금 넣고 밥을 말아먹고 고기는 양념 새우젓 얹어서 먹으면 없는 밥맛도 되살아 날것이다.
(사진:이종숙)
환절기에 기운이 없고 식욕이 떨어질 때 돼지족발을 삶아 먹으면 기운을 추스르는데 도움을 준다. 예부터 산모가 젖이 잘 돌지 않을 때 단백질이 풍부한 족발을 푹 고와서 산모가 먹으면 젖이 돈다 고 할 정도로 영양이 좋은 것이라고 들었다. 콜라겐이 많아 피부 탄력에 좋고 비타민 B 도 많아 피로 해소에도 좋고 불포화지방 이 풍부해서 콜레스테롤 축적을 막아주고 혈류를 왕성하게 한다는 인터넷 설명을 읽어보니 한시가 급하다.
집에 오자마자 냄비에 물을 붓고 족발을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30분 강한 불로 끓인 후에 중불에 놓고 은근히 끓여 주니 국물은 뽀얗게 우러나고 족발은 흐물흐물한다. 이제 뚝배기에 국물을 넣고 고기를 썰어놓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파 마늘을 넣고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서 먹으면 된다. 국밥에는 잘 익은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돼지족발을 깨끗이 씻어 냄비에 물을 넣고 한소끔 끓여낸다.
한번 끓인 물은 버리고 물을 붓고 강한 불로 30분간 끓인다.
끓일 때 주먹만 한 양파와 생강을 넣어 잡내를 잡는다.
끓으면 중 약불로 놓고 은근히 끓인다.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새우젓에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파와 마늘을 넣어 섞어양념한다.
1시간 정도 끓이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다.
고기가 잘 익었나 젓가락으로 찍어본다.
고기가 부드럽게 잘 익었으면 고기를 꺼내 놓는다.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식은 고기를 썰어 놓는다.
뚝배기에 국물을 먹을 만큼 덜어놓고 썰어 놓은 고기를 몇 점 집어넣는다.
보글보글 끓는 국물에 파와 마늘을 넣고 고춧가루를 뿌린다.
보글보글 끓는 돼지국밥이 완성되었다.
돼지국밥에는 별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적당히 익은 김치와 양념 새우젓만 있으면 된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바람은 심하게 분다.
가을이 시끄럽게 가는 건지 겨울이 요란하게 오는 건지
돌아다니는 낙엽들을 보고 있으면 심난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따끈따끈한 돼지국밥을 먹을 생각하면 날씨가 어떻든 상관없다.
고슬고슬한 밥에 돼지고기 한 점에 새우젓을 올려서 먹는다. 더 이상 맛있는 게 없다. 환절기에 잃었던 입맛이 살아난다. 김치에 돼지고기를 싸 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다. 입과 눈과 배가 너무 행복해한다. 쉽고 맛있는 돼지국밥 한 그릇에 세상은 아름답다. 국밥 안에서 평화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