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먹어도 맛있는 김칫국

by Chong Sook Lee
시원한 김칫국의 치유(사진: 이종숙)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해 먹을까 생각을 한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온다. 특별히 만들 재료도 없고 만들어 놓은 반찬도 별로인데 식구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해서 먹나? 그저 냉장고에 있는 것 집어넣어 찌개나 하나 끓여야겠다. 몇십 년을 해온 식사 준비지만 끼니때마다 갈등이 많다. 한식이 좋을까? 양식이 좋을까? 아니면 중국음식이 좋을까? 아니면 이탈리아 음식을 할까? 이렇게 말하면 요리의 대가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살아가다 보니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식당을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식당에는 여러 가지 재료가 항상 준비되어 있고 도구도 편리하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어떤 요리도 해 먹을 수 있다. 식당을 했을 때는 집에서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어서 식구들이 모이는 날은 당연히 식당에서 만들어 먹고 놀았다.

식당을 그만둔 뒤부터는 집에서 해 먹는 것이 귀찮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사 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이 났다. 일을 할 때는 먹는 대로 소화도 잘되고 식욕도 좋았는데 활동량이 줄으니 소화능력이 떨어지게 되다 보니 외식을 하고 나면 소화가 안되어 며칠씩 고생을 하곤 하였다. 특히 기름진 서양 음식을 먹고 나면 그런 증상이 더 심해지자 중국음식을 주로 먹으러 다녔다. 중식은 나름대로 입맛에 맞았지만 먹고 나면 배에 가스가 생겨 속이 더부룩한 증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탈리안 음식을 좋아해서 스파게티나 피자 그리고 라자이아를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일식을 먹으러 다니기도 하였지만 먹는 그 순간에는 맛있게 먹어도 그냥 그랬다. 그러다 조금씩 집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뱃속은 나름대로 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한동안 남편이 속이 안 좋아 고생을 많이 했다. 속에 이상이 생겨 응급실도 몇 번 가고 며칠씩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까지 했다. 여러 가지 검사로 치료가 되었지만 몇 번 심하게 앓고 난 남편은 한식만을 고집하게 되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곳에 입원한 박식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에게 입원하게 된 사유를 이야기했다. 한국인의 장은 외국인의 장보다 길기 때문에 기름기 많은 음식이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소화를 못 시키는 성향이 있다는 연구 발표가 있었다고 그가 말 한 뒤부터는 웬만하면 한식을 원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일리도 있고 서양식당을 오래 한 우리가 양식을 많이 먹긴 했다.

아침에는 베이컨이나 소시지와 계란 그리고 감자볶음을 먹거나 여러 가지 야채와 햄을 넣은 오믈 렛을 먹었다. 그리고 점심은 스테이크나 돼지고기 구이를 먹거나 햄버거 스테이크와 으깬 감자 그리고 삶은 야채를 곁들여서 먹었다. 저녁으로 한식을 먹긴 했지만 저녁마저 식당에서 만들어서 집에 가져와서 먹을 때도 대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음식을 요리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결혼한 2년 뒤에 이민을 왔으니 특별히 한국음식을 배우지 못했다. 밥 한번 안 하다가 결혼식 한 달 전까지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했다. 그 뒤 시어머니와 큰 동서의 보살핌으로 김장도 내손으로 담지 않고 살다가 이곳에 오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았다.

요즘이야 세계 각국 음식재료를 손쉽게 구하지만 그 옛날에는 동양 음식은 아주 귀했다. 이민 올 때 가지고 온 고추장 한 병과 멸치 한 봉지 그리고 미역 한 봉지 가 전부였다. 샐러드에 넣어 먹는 빨간 총각무를 총각김치 마냥 담아서 먹고 배추 대신 양배추로 김치를 담아 먹었다. 그리고 상추를 고추장에 무쳐서 먹고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고향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지금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살았는지 지나고 보니 꿈만 같다. 수만리 떨어진 외국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나를 만들었다. 어깨너머로 보았던 음식을 연구하며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이것저것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둘째를 임신하여 입덧을 하는데 구할 수 없는 한국 음식만 먹고 싶었다. 꿈을 꾸면 시장에 쌓여있던 푸짐한 음식만 꾸었다. 그러니 나는 나대로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단무지 없는 김밥을 만들었고 시금치 없는 잡채와 파가 없는 김치도 만들었다. 평생을 먹고살았던 음식보다는 맛이 없었지만 그 나름대로 먹을만했다. 요즘같이 만들어져 나온 고추장, 된장도 없으니 나이 드신 어른들한테 배우며 만들었다. 구할 수가 없고 있어도 귀하고 비쌌기 때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세월은 그렇게 가고 세상은 엄청 변했다. 자유무역으로 세상이 뒤집혀 어느 날부터는 동양 음식을 손쉽게 구하게 되었다.

저녁때가 되어 무엇을 해 먹을까 생각하다가 나의 생각이 그 옛날까지 갔다. 모든 게 흔한 세상에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어릴 적 싫어하던 음식들이 먹고 싶다. 그때 어른들이 맛있게 먹던 음식들이 그리워진다. 깻잎 장아찌, 고추 장아찌, 마늘장아찌 같은 밑반찬이 좋다. 나물이 좋고 푹 고운 국물이 좋다. 신선한 생선으로 끓인 매운탕도 좋고 마늘만 넣고 볶은 새우도 좋다. 이제는 무엇이든 해 먹을 수 있고 사 먹을 수 있다. 식품점에 가면 없는 게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하다못해 끓여놓은 찌개도 있으니 세상은 너무도 편해졌다. 그래도 나는 그런 음식을 사게 되지 않는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내가 굳이 해 놓은 음식을 살 필요가 없다. 오늘은 냉장고에 있는 반찬하고 신 김치에 멸치 몇 마리와 다시마 한 조각 넣어서 김칫국이나 끓여 먹어야겠다. 두부도 가늘게 썰어 넣으면 더 맛있을 것 같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김칫국이다.

아! 나를 치유해주는 김칫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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