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지 아끼면 결국 ㅇ 이 되는데 좋은 것은 아낀다. 좋은 옷도, 좋은 신발도 아끼다 보면 몸에 안 맞고 유행도 지나가 못 쓰게 된다. 더구나 아무리 맛있는 음식은 빨리 먹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 지난번 딸이 오랜만에 집에 다니러 오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 하기에 명단을 써서 보내라고 했다. 겨우 열흘 다녀 가는데 먹고 싶은 것을 해 주지 못하고 그냥 보낼 것 같아 한 말인데 정말 긴 명단을 보내왔다.
오던 날부터 차례로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내 마음이 너무나 행복했다. 맛있다고 잘 먹는 딸과 사위의 모습을 보며 어쩌다 잊을만하면 부모님을 찾아가던 내 모습과 있는 것 없는 것 아까운 줄 모르고 차려주시던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게 아쉬웠지만 갈 때까지 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주었다. 코로나가 아니면 몇 번을 왔다 갔을 텐데 요즘엔 그것도 쉽지 않아 속이 상한다. 가는 날은 이런저런 일로 바쁜 것 같아서 공항에 가서 먹으라고 김밥을 싸주었는데 엄청 맛있었다고 전화 통화를 하는데 엄마 음식이 뭐길래 저리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한국음식이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원하는 대로 사 먹을 수 있지만 아이들 어릴 적 에는 한국 음식이 귀해서 잘 못해 먹었다. 양배추 김치를 담고 샐러드에 넣는 빨간 무로 총각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상추를 고추장에 무쳐서 겉절이를 해 먹고 시리얼 대신에 미역죽을 만들어 먹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극적인 한국 음식 대신 양식을 먹고 자랐는데 커갈수록 한식을 좋아하더니 이젠 아예 한식만 고집한다. 한식을 좋아하고 한국 영화를 좋아하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엄청 좋아한다. 부모가 나서 자란 나라라서 그런지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관심이 많은 것을 보면 아무리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라도 한국인이다.
딸이 오는 날에 이것저것 만들어서 먹이고 틈틈이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갈 때는 갈비와 깻잎무침과 김치를 해서 보냈다. 더 많이 해주고 싶었지만 가방에 여유가 없어 그것만 가져갔다. 집에 와서 엄마 음식 실컷 먹는 게 소원이지만 막상 오면 이곳에 사는 친구들이 초대해서 밖에서 먹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오지 못하다가 21개월 만에 왔다 가는데 더 많이 해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 하지만 너무 많이 가져가도 못 먹고 버리게 되니 다음으로 미루고 해 달라는 만큼만 해서 보냈다. 내 생각으로는 가자마자 갈비를 해서 먹고 맛있다고 바로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내가 만들어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며칠이 지나도록 전혀 하지 않는다.
맛이 없었나 왜 아무 말이 없지?
벌써 다 먹었나?
너무 쪼금 해 주어서 금방 없어졌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렸는데 아무 이야기가 없어서 하루는 물어봤다.
"딸, 갈비 맛있게 먹었니?"
음음.. 아니, 안 먹었어.
왜?
아까워서.
뭐가 아까워.
아까워서 못 먹겠어.
그까짓 갈비가 뭐가 그리 아까워서 아직도 안 먹었어?
응.. 너무 아까워.
나참 기가 막혀서... 빨리 먹어 하며 통화를 끝냈다.
엄마가 해준 게 너무 아까워 못 먹는 그 마음이 생각나 가슴이 아프다. 가까이 살면 먹고 싶은 것 아무 때나 와서 해달라고 하며 맛있게 먹을 텐데 갈비를 냉동고에 얼려놓고 못 먹고 있으니 안타깝다. 그까짓 갈비 사다가 만들어 먹으면 되는데 엄마의 사랑이 아까운 것이다. 홀딱 먹어 버리면 엄마 음식 먹고 싶을 때 못 먹을 것 생각하며 못 먹는 것이다.
집 떠나 멀리 살면서 엄마 음식이 생각나던 옛날이 생각난다.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곰국부터 콩나물국까지 다 맛있다. 국뿐이 아니고 엄마가 조몰락거리며 만든 나물과 부침개 그리고 동치미와 김치 깍두기는 지금도 눈에 삼삼하게 떠올라 침이 고인다.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두부 가늘게 썰어 멸치 몇 마리 집어넣고 끓인 시원한 김칫국은 잊지 못한다. 두부부침에 파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을 뿌린 것 하며 지긋지긋하던 입덧을 멈추게 한 조기찜이 생각난다.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가 만든 음식은 왜 그렇게 맛이 있는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결혼식 피로연에 만들어 가지고 오신 맛있는 엄마 김치를 지금도 이야기할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으셨던 친정 엄마다.
이제는 아이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그리워하는 세월이 되었다. 갈비 몇 판 사다가 만들어 먹어도 될 나이에 엄마 음식이 아까워서 못 먹는다는 말을 들으니 당장이라도 가서 만들어주고 싶다.통화한 며칠 뒤에 그렇게 아까워 못 먹는 엄마 갈비를 먹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아직 몇 번은 더 먹을 수 있는 양이지만 빨리 먹으라고 다구 칠 수 없다.
엄마 음식은 사랑이고 그리움이라 아끼고 싶을 것이다. 먹을 때마다 생각하고 그리움을 달래며 추억할 것이기에 다 먹어 버리면 허전한 마음을 안다. 김치를 아껴 먹으며, 깻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먹으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이 보고 싶다.
마냥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딸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마음으로 기대는 내가 되었다. 무슨 일이 있거나 마음이 힘들 때 딸에게 이야기하며 위로받는 내가 되었다. 다녀간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는 먹고 싶은 엄마 음식을 마음껏 해 주어야겠다. 갈비와 김치 그리고 깻잎무침을 꼼꼼히 싸서 가지고 가던 딸이 다시 보고 싶어 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