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뜨지 않았는데 밖이 환하다. 어젯밤 폭설주의보가 내렸는데 밤새 눈이 내렸나 하고 커튼을 열어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있다. 폭설경보가 딱 들어맞았다. 눈이 보통 많이 온 게 아니다. 나뭇가지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창문으로 보이는 설경은 예술이다. 이 많은 눈이 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세상을 하얗게 덮었는지 모르겠다. 폭설로 인하여 세상이 완벽하게 묻혀버렸다.
밤새 내린 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니 겨울을 실감한다. 영하 15도가 최저 온도라더니 눈보라가 장난이 아니다. 아침 일찍 둘째 아들이 퇴근하고 기계로 치워 준다는 톡이 왔다. 직장 다니며 애들하고 바쁜 아들을 기다리는 것보다 남편과 둘이 살살 치우려고 완전 무장을 하고 나갔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층계와 길이 보이지 않아 살살 기듯이 걸어가서 차고 문을 열었다. 20센티미터가 온다던 눈인데 바람이 불어 더 많이 쌓여있다. 일단 삽으로 치워 보려는데 눈이 꼼짝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기계를 써야 할 것 같다. 웬만한 눈은 삽으로 밀어주면 간단하게 치울 수 있는데 이번은 아니다.
어제 오후에 온 것은 삽으로 청소가 되었는데 밤새 눈이 쌓여 눈이 엄청 무겁다. 남편이 차고에서 기계와 씨름을 한다. 아들이 사다준 기계인데 한 번도 써 보지 않아 어리둥절하는지 기름을 넣고 이것저것 만지고 있다. 기계로 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만일을 대비해서 한쪽 구석부터 살살 치고 있는데 하루 종일 치워도 못 치울 것 같다.
같이 늙어가는데 남편 혼자 하게 놓아둘 수 없어 나름 돕고 있는데 기계가 웅^^^하고 발동이 걸린다. 기계를 대고 밀고 나가는 순간 쌓였던 눈이 백설기 잘라지듯 반듯하게 잘라지고 연통을 통해 사방으로 눈이 날아간다. 그냥 앞으로 가는 것은 수월한데 코너나 좁은 길은 힘에 부치는지 힘들어한다. 방향도 잘 안 맞아서 눈 벼락을 맞으며 얼굴이고 옷이고 눈을 뒤집어쓰고 쩔쩔맨다.
(사진:이종숙)
처음 몇 번 기능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어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 익었는지 거침없이 눈을 치운다. 남편이 없었으면 아들을 기다리던지 아니면 사람을 고용해야 할 판인데 씩씩하게 하는 모습이 믿음직해 보인다. 알게 모르게 세월이 가고 결혼한 지 43년이 지나다 보니 남편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무거운 기계를 밀고 다니며 눈을 치우니 다행이다.
자동으로 가는 기계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방향을 잡아주고 기능을 이용해야 효율적으로 되기 때문에 어렵다. 차고 앞을 깨끗이 치우고 집 앞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사이드 워크와 뜰에 있는 사이드워크를 청소한다. 등 굽은 소나무가 눈이 무거워서 축 늘어진 채 힘들어하여 남편이 몇몇 가지를 털어주고 있는 사이 나는 빗자루로 여기저기 덜 치워진 곳을 쓸어주며 청소를 끝냈다.
힘든 기계를 밀고 당기며 애쓴 남편은 땀으로 푹 젖어 얼굴에 김이 날정도다. 해마다 한두 차례 이렇게 폭설 세례를 맞고 보면 겨울도 지나간다. 겨울이 정신 차리라고 초겨울에 눈을 뿌리면 겨우내 녹지 않고 봄까지 간다.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봄이 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한꺼번에 오는 눈은 싫다. 싫다고 해도 오는 눈을 원망할 수도 없으니 기쁘게 반갑게 맞아야 한다.
멕시코와 축구 시합이 있어 선수와 팬들이 어제 왔는데 이곳의 날씨를 보고 기가 막혀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춥다는 말을 들었지만 11월 중순에 이렇게 많은 눈이 올 줄 몰랐다며 근처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두꺼운 겨울 코트와 여러 가지 겨울용품을 사느라 바빴다며 인터뷰를 한다.
겨울에 눈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B.C. 주에서는 자연재난으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고 있다. 홍수로 산이 무너져 내려 고속도로가 무너지고 차와 사람들이 떠내려가는 사고가 났다. 몇 백 명이 산간벽지 도로 중간에 발이 묶이고 재난시설로 옮겨져 고통스러워하는 뉴스를 보니 안타깝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피를 말리며 기다리지만 지원은 잘 되지 않으니 정말 자연의 신이 하는 일을 잘 모르겠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피를 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지 막연하다. 코로나로 물가가 오르고 직업을 잃어 힘든 시기에 이런 자연재해까지 와서 걱정이다.
워낙에 큰 나라이다 보니 각주마다 생필품을 서로 수입수출을 하며 도움을 주고 사는데 길이 막힌 재난 시에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없고 들여올 수도 없으니 물가폭등은 당연하고 도움을 기다리는 이재민 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산불로 대피했는데 이번에는 홍수로 대피를 하는 주민들의 고충이 너무 깊다. 폭설과 홍수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사람들은 어쩔 줄 모른다.
폭설로 이른 아침에 난 사고가 많아 정부에서는 꼭 필요하지 않으면 집에 있기를 당부한다. 이런저런 사고와 재해로 인한 고통 속에 견뎌야 하는 시기다. 겨울이 있기에 봄이 있는 것이지만 올해는 따뜻한 겨울이기를 바라며 눈이 오더라도 조금씩 오기를 바란다. 수해로 고통받는 이웃 주의 재난이 하루빨리 해결되어 이재민들이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계속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