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 겨울... 올 테면 와라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가늘게 비처럼 오다 말 것 같던 눈이 제법 굵게 내려앉는다. 세상이 하얀 이불을 덮었다. 지저분한 것들이 모두 가려진다. 여기저기 뒹굴어 다니고 군데군데 쌓여있는 낙엽들도 하얀 담요를 덮고 얌전히 누워있다. 이젠 바람도 낙엽을 어디로 보내지 못하고 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낙엽은 한겨울에 눈 밑에서 겨울잠을 자며 비료가 되어 꽃이 되어 새 봄을 만든다. 사람도 그러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겨울에 잠을 자고 봄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와 못다 한 삶을 살면 후회도 미련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쌓일 것 같지 않던 눈이 제법 쌓여 어제 보았던 가을은 흔적조차 없고 하루 사이에 겨울이 되었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지만 눈 조금 왔다고 다른 세상이다. 앞으로 봄이 올 때까지 하얀 눈과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겨울이 길은 이곳에 11월에 첫눈이 온 것에 너무 감사하다. 9월도 아니고 10월도 아닌 11월에 왔으니 엄청난 행운이다. 이제 12월이 지나면 해도 길어지고 봄이 가까워질 것을 생각하니 그리 나쁘진 않다. 어차피 겨울을 건너뛰지 못하는 것이라면 늦게 왔다 빨리 가기를 기다린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춥지 않고 눈이 오지 않는 겨울을 기다리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마음으로 원하는 것일 뿐 오는 눈을 맞아야 하고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한다. 인생살이 어디 그것뿐인가.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걱정 근심을 달고 살아가는 인간이다. 꽃피는 봄이라고 살기 쉽지 만은 않다. 꽃샘바람은 겨울보다 더 춥다. 봄이라 하지만 이름뿐이지 꽃이 필 때까지는 겨울의 연장선에서 살아야 한다.


4월이 되면 눈이 녹고 5월이 돼서야 잔디가 마르고 민들레가 피기 시작하면 조금씩 파릇파릇 땅을 들고 나오지만 5월에도 겨울이 가기 싫어하며 심술을 부려 시도 때도 없이 눈이 오고 영하로 내려간다. 이제 시작된 겨울에 봄타령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웃긴다. 겨울이 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겨울이 엄청 싫은가 보다. 옷을 든든하게 입고 살면 견딜 만 한데 괜히 엄살이다.


나이가 들수록 추운 것이 싫어지고 의자에 앉거나 누우면 담요를 덮는 것을 보면 뼈에 바람이 들어가는 나이인가 보다. 어른들이 무릎에 담요를 덮고 앉아 있는 이유를 몰랐는데 요즘엔 나도 그런다. 옛날에 모르던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고 부모님에게 더 해 드리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그때 알았으면 더 잘해 드렸을 텐데 세월이 야속하다. 철이 들을 때까지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지나간 사진을 보며 아버지 살아생전에 더 많이 해드리지 못한 것이 떠올라 죄송하다.


후회와 미련 속에 살다가는 인간들이지만 젊을 때는 왜 그리 철이 없었을까 원망스럽다. 오도 가도 못하는 코로나 시대에 엄마는 요양원에서 자식들을 기다리시지만 가보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눈이 오니 마음이 심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본다. 갈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어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애태우며 코로나 이전이 너무나 그립다. 아무 때나 보고 싶을 때 가서 보고 오면 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만날 수 없는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따로 사는 아이들이 보고 싶은데 만나지 못한 채 세월은 무심하게 흐른다.


오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 왔으니 겨울과 함께 지내야 하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만나고 산다. 부모형제 모두 모여 살던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아이들과도 함께 살 수도 없는 세상이 다. 찾아오는 계절처럼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봄이 오면 꽃을 보며 여름을 기다리고 여름에는 오지 않을 것 같은 가을을 맞아야 한다. 가을은 겨울을 초대하기 전에 아름답게 세상을 물들이고 떠난다.


삶이란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다.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맞고 보내며 뒤돌아보는 것이다. 가기 싫어도 떠나야 하고 오고 싶지 않아도 와야 한다. 자연을 따라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을 닮아가며 산다. 자연이 화가 났는지 이곳저곳에서 난리가 났다. 화산이 터지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전염병이 가지 않는다. 전쟁이 끊이지 않고 땅따먹기와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인간들이 있고 오도 가도 못하고 생사를 오가는 불법 이주자들은 죽어가는데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상이 아니 인간들이 무섭다. 어떤 일이 생길지 내일이 두렵고 어린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이다. 눈이 쌓여간다. 더 많이 쌓이면 치기 힘들으니 남편을 따라나가 삽으로 눈을 청소하고 나니 기분이 좋다. 이렇게 올해도 첫눈을 치우며 겨울을 만난다. 폭설주의보가 내렸고 20 샌티 미터 정도의 눈이 온다는 날씨예보다.


그까짓 겨울 오려면 와라.
추워봤자 얼마나 춥고 눈이 와봤자 얼마나 오겠나 하는 생각으로 겨울을 맞는다. 겨울이 와야지 봄도 오는 것이다. 반갑게 맞고 시원하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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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나무가 눈에 덮여서 겨울을 맞고 있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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