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고 영원을 사는 우리네 인생

by Chong Sook Lee
(그림:이종숙)

지금 온도가 영하 16도라고 전화에 뜬다. 어제부터 심상치 않더니 정말 추워졌다. 겨울이라 당연히 춥지만 아직 11월인데 너무 춥다. 춥거나 말거나 일을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니 특별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온도가 낮으니 괜히 몸을 움츠리게 된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을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지만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사방에 눈이 쌓여 걸어 다니기도 위험한데 오히려 온도가 내려가서 잘됐다. 날씨가 따뜻하면 눈이 녹아 길이 미끄러워 사람들이 걷다가 넘어져서 다친다. 눈이 많이 오면 눈만 치우면 되는데 눈이 녹으면 더 골치 아프다. 낮에는 눈이 녹아 차가 더러워지고 밤에는 다시 얼어 빙판이 진다. 눈 아래 숨어있는 얼음을 보지 못해 해마다 이맘때면 다친 사람들로 병원이 만원이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손목이 접질리고 허리와 엉덩이를 다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몇 년 전 이맘때 날씨가 갑자기 풀려 온통 빙판이 져서 집 주위에 소금 뿌리러 나간 남편이 얼굴에 피투성이가 되어 들어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남편은 넘어지고 얼떨결에 일어나서 상처가 그토록 깊은 줄도 모르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이마가 새끼손가락만큼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그날 다친 사람이 병원 대기실에 꽉 차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망설였는데 몇 시간을 기다려도 차례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다리를 다쳐서 우는 사람, 팔이 부러져 엉거주춤하는 사람으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눈썹 위가 찢어져서 피는 계속 나오는데 이대로 기다리다가는 출혈이 너무 심해 위험할 것 같아 동네 진료소로 가 보았다.


응급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동네 병원은 아무도 없었다. 의사가 환자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기다리지 않고 몇 바늘 꿰매고 반창고를 붙인 남편이 웃으며 나와 일이 잘 마무리됐다. 겨울에 눈이 오다가 다시 온화해져서 그대로 봄이 온다면 좋은데 봄이 오지 않으면서 추웠다 더웠다 하면 큰일이다. 겨울이 이제 시작인데 어떤 겨울이 올 지 궁금하다.


어느새 11월도 며칠 안 남았다. 시월이 가고 11월이 오던 날 가버린 시월이 벌써 그립다 고 했는데 11월도 간다. 세월은 말없이 조용히 오고 가고 그 많던 시간들은 하루하루 줄어든다. 태어나면서 받은 시간이 있는데 준비 없이 살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며칠 전 '나의 사랑'이라는 다큐 영화를 보았다. 19살의 아름다운 아가씨와 24살의 멋진 청년이 만나 살아온 60년의 삶을 그린 이야기다.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 앞으로 그들이 해야 하는 것들을 보여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남편과 나는 43년의 결혼생활을 하며 노년의 시간을 맞고 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과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둘이 건강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을 살면서 아이 셋을 낳고 다 짝을 맞추어 네 명의 손주들이 있다.


이민 1세로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지만 좋았던 날과 힘들던 지나간 시간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진다. 지금에 와서 후회는 없다. 사람마다 정해진 운명을 걸어가며 사는 게 인생이기에 최선을 다해 지금껏 살아온 것에 미련도 없다. 11월이 되었을 때 시월로 돌아갈 수 없듯이 젊은 나이로 돌아갈 수 없다. 삶은 앞으로 가는 것이다. 가다가 힘들면 쉬었다 가고 아프면 잠시 눕기도 하면서 어느 날 만나야 하는 죽음을 만나는 날까지 가야 한다.


며칠 있으면 12월이 온다. 세상 만물이 성장을 멈추고 죽음의 모습을 하는 12월은 우울한 달이기에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와 산타 할아버지를 만들었다. 1년 동안 수고하고 애썼다고 희망의 선물을 주며 지난 한 해를 위로한다. 힘들었던 지난 한 해를 회개하고 용서하며 새로 시작하는 한 해가 새로운 희망으로 벅차게 한다. 작은 일에 근심하고 더 많은 것을 바라며 만족하지 못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잘살았다, 잘했다'라는 말로 위로받고 싶다.


세상이 각박해진다고 하지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늘 그러했다. 말세가 온다는 말은 내가 어릴 적부터 사람들이 해 오던 말이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런 말을 하며 살 것이다. 말세가 오면 또 다른 무엇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언제나 죽음과 삶은 연결되어 있고 좋고 나쁨 또한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 있기에 처음도 없고 끝도 없다. 눈으로 보기에는 끝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은 다시 시작하는 전환점이다.


나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완전히 죽으면 아주 작은 분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루가 되어 땅으로 흡수된다. 흙으로 돌아간 생명체는 그들만의 유전자를 찾아서 새로운 생명으로 진화한다. 삶은 죽음에서 비롯되고 죽음 또한 삶으로 연결되는 영원무궁한 굴레 속에 세상은 돌아간다. 각자의 삶으로 보이지만 세상 만물은 독립적이면서 복합적이어서 이거다 라고 한마디로 결론지을 수 없다.


봄이 오고 여름과 가을이 동행하면서 겨울을 맞으며 봄을 향하고 또 겨울을 향해 가는 것처럼 인간은 자자손손 이어진다. 한해의 처음인 1월은 겨울이고 겨울이 봄을 잉태하고 다시 겨울이 된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고 고통이 있으면 행복도 있다. 추운 날씨가 없다면 세상은 온갖 벌레 때문에 사람들은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겨울이 오면 봄을 기다리고 봄이 오면 겨울을 준비하고 산다. 12월 다음에 1월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루를 시작하고, 한 해를 시작하며 죽음은 삶을 낳고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처럼 돌고 돈다. 하루를 살고 영원을 살며 돌고도는 인생살이다.


(그림: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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