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이런 날은 뜨끈한 라면이 먹고 싶다. 물이 보글보글 끓으면 라면을 넣고 파를 넣고 계란 하나 넣어 먹으면 되는 라면은 가짓수도 많고 맛도 여러 가지이고 이름도 셀 수가 없다. 시대에 따라, 계절에 따라, 새로 나오는 라면은 보기만 해도 먹고 싶다. 밀가루를 싫어하는 내 뱃속은 라면 구경을 잘 못하지만 남들이 먹으면 참을 수 없어 끓여먹는다. 특히나 드라마에 나오는 라면은 어찌 그리 먹고 싶은지 유혹을 물리칠 수 없다. 하다못해 이곳에서 태어난 큰아들은 노란 냄비에 끓여먹는 라면이 먹고 싶어 냄비까지 살 정도다.
라면이 몸에 좋다 나쁘다 하는 여론이 많지만 라면만 먹고사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음식이다. 모든게 부족했던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음식에 대한 추억은 많다. 그때만 해도 인스턴트 음식은 시장에 갓 나온 원조 삼양라면 밖에 없었다. 무엇이든지 맛있던 때이지만 삼양라면 국물은 진하고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는 정말로 맛있는 라면이어서 유난히 맛있었던 그 옛날의 라면 맛은 절대 잊지 못한다.
60년대 후반에 엄마가 갑자기 몸져누워 오래도록 자리보존을 하셨다. 이유 없이 코피가 나기 시작했는데 멈추지 않아 고생을 하셨다. 시골에 사시던 할머니가 오셔서 우리 육 남매를 돌봐주시고 엄마는 여전히 코피가 멈추지 않아 사방으로 수소문을 해도 약도 없고 치료도 할 수 없어 돌아가신다 고 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코피를 쏟으신 엄마는 피골이 상접하여 깔아져서 꼼짝없이 손을 놓고 있을 즈음 코피가 멈추었다. 식구들은 엄마를 살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았지만 엄마는 기운을 차리지 못하셨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걱정을 하며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삼양라면 홍보를 듣게 되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엄마를 생각하며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당장에 라면을 사 오셨다. 할머니는 물을 끓여 신기한 즉석라면을 끓여 엄마를 드렸다.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해서 연탄 불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라면을 보고 있다가 침을 꼴깍 삼키며 엄마가 드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맛있는 냄새는 처음인 것 같았다. 엄마는 기운이 없어 손을 벌벌 떨며 라면 한 젓가락을 드시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드시더니 한 그릇을 순식간에 다 드시고 국물까지 마시며 그릇을 싹 비웠다. 엄마는 그 뒤로 한 달 동안 라면을 드시고 건강을 다시 되찾으셨다. 먹을수록 맛있다고 좋아하시며 기운을 차리신 엄마가 일상으로 돌아오시어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시고 아랫목에 오랫동안 깔려있던 이부자리는 이불장으로 치워졌다.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를 기운 차리게 한 라면이 너무나 고마웠다.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던 라면이고 엄마를 살린 라면이기에 라면을 보면 늘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 그 뒤로 세월이 흐르면서 라면도 발전을 거듭해서 세계 적으로 널리 퍼져서 명성을 날리며 한국의 라면은 어딜 가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라면이 진화하여 별별 라면이 많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다.
며칠 전 한국 장을 보러 갔는데 지인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녀의 장바구니를 보니 들깻가루 칼국수라는 것이 바구니에 들어있어 물어보니 맛있단다. 한 개당 2인분이니 2개를 사 가지고 와서 먹어보니 정말 맛있게 잘 만들었다. 라면의 진화는 어디까지 갈까 생각이 든다. 이제는 라면 종류가 짜장라면부터 비빔라면까지 없는 게 없고 다 맛있다. 라면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반찬이 시원찮을 때나 귀찮을 때 간단하게 먹는데 여러 가지라서 골라먹기도 바쁘다. 먹어봐야 무엇이 맛있는지 안다. 처음에 신라면 나왔을 때 짬뽕 이상으로 맛있었는데 요새는 밀가루 냄새가 나서 잘 안 먹는다. 차라리 라면보다 국수가 좋아졌다. 국수 삶아서 김치 송송 썰어 넣고 고추장 참기름으로 비벼 먹으면 더 이상 맛있는 게 없다.
옛날에는 싼 맛에 라면을 먹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라면도 국수도 가격이 많이 올라 차라리 밥 먹는 게 최고 싸다는 사람들 이야기다.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이 부담 없이 끼니를 해결하던 시대는 갔다. 무엇이든지 인기 있다 하면 가격을 올리는 세상이라 서민들은 늘 고달프다. 가격이 오른 것은 라면뿐이 아니다. 이곳에 와서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짜장면을 파는 중국집이 없어 집에서 만들어 먹곤 했는데 어느 날 짜장면과 짬뽕을 만드는 중국집이 생겼다. 특별 가격으로 사람들이 몰려가서 고국의 향수를 달래며 맛있게 먹었다. 시간이 가고 지금은 여러 곳에서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데 가격은 그때의 두배가 되었다. 재료도 별로 없이 받을 것 다 받는 식당에 가느니 지금은 재료를 풍부하게 넣고 집에서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다.
오랜만에 라면을 삶아 먹으며 이런저런 추억에 푹 빠졌다. 맛있어서 먹고 편리해서 먹고 남들이 먹으면 덩달아 먹는 라면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다. 입이 심심해서 먹고 배가 출출해서 먹는다. 고기를 먹던 라면을 먹던 주먹만 한 위장이 행복하면 된다. 찬바람이 불 때도 반찬이 없을 때도 라면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라면에 대한 부정적인 말도 있지만 나는 아무 때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이 있어 좋고 저녁에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라면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