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들랑거렸던 흔적이 넘치는 곳이다. 뜨겁다 못해 살이 탈것 같은 태양열이 머리와 팔에 덥석 앉는다. 여기저기에서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 아우성치는 소리가 귀가 따갑다. 아비규환 이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안내가 아닌 협박 같은 말투에 내장을 뽑아서 팔았다는 말이 언뜻 생각이 난다. 공항은 수많은 인파로 짓이겨진다. 행복을 찾으러 온 사람들인지 행복하려고 온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뒤로하고 숙소로 향한다.
야자수가 널려있는 도심을 20분 정도 빠져나와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2시 15분이었다. 하늘은 더 파랄수 없이 바다색을 닮았다. 무심한 파도는 넘실대며 춤을 춘다. 호텔에 들어와 수속을 다 마쳤다. 오래된 호텔이지만 멋진 야자수에 가려져 제법 낭만 있어 보인다.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위해 어제저녁 9시에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12시에 잠이 깨고는 다시 잠을 청하였지만 꼬박 새우고 말았다. 피곤한 몸으로 비행기를 타고 5시간 걸려서 이곳에 왔기에 무척 피곤하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으니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실감이 간다. 오늘 오후 5시에 식당을 가기로 예약했는데 여행사의 착오로 캔슬되었다 는 것을 늦게야 알게 되었다. 다행히 대대적인 멕시코 파티로 낭만스러운 저녁 한때를 보내게 되었다. 멕시코와 테킬라.. 많은 음식과 춤과 음악이 세상 시름을 잠시나마 잊고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며 손뼉을 치는 20대가 되었던 신나는 시간이었다.
멕시칸 파티는 밤이 될수록 익어갔지만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밀려와서 숙소로 돌아왔다. 음악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지만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내일 아침에 일찍 아침을 먹고 골프를 해야 하기에 은근히 마음이 쓰인다. 이번이 두 번 째 골프여행이다. 평소에 골프를 치지 않는 나는 작년 쿠바 여행 때 가기 전에 많은 걱정을 했다. 골프도 치지 못하는데 혹시라도 같이 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나름대로 걱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날짜가 다가오고 골프를 함께 치며 잘 모르던 사람들과 친할 수 있어서 참 좋았던 생각이 나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약간은 신경이 쓰이지만 모든 게 잘 되리라 생각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에 알람이 깨워주어 준비를 대충하고 식당으로 내려가서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계획했다. 골프를 치고 저녁때 와서 샤워하고 저녁 먹고 쇼를 구경하러 가면 오늘 스케줄은 끝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골프 예약을 안 했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골프를 별로 안 하는 나야 그런가 보다 하는데 골프를 치러온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이다. 거기다 골프여행에 3번의 공짜 골프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는데 공짜도 안되고 다시 예약을 해야 하는데 한번 치는데 일인당 미화로 75불을 내야 한단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거금을 내고 내일 골프는 예약을 했다. 여행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골프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오늘 하루를 즐겨야 한다. 일단 가벼운 옷차림으로 하고 해변가를 걷기로 했다. 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세계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휴가를 즐기고 있다. 날씨는 섭씨 27도의 온도로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기 딱 알맞은 온도다. 비치체어에 누워서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수영을 하기도 한다. 모래사장을 걸으며 밀려오는 파도를 밟아본다. 조개껍질이 파도에 밀려오고 모래밭에서 성을 쌓고 허물고 웃어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내가 사는 에드먼턴에는 영하 20도의 혹한의 날씨에 눈까지 엄청 왔다는 뉴스를 들으며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항에 데려다준 친구가 눈 쌓인 사진과 눈을 치운 사진을 보내왔다. 추운 날씨에 눈까지 왔으니 할 말이 없다.
파도따라 그리움도 함께 옵니다.(그림:이종숙)
한없이 펼쳐진 해변가에서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많은 날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앞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던 이민생활이 조금씩 자리를 잡았고 젊은 나이에 이민을 온 우리들의 머리에도 하얀 서리가 내려 노인이 되었다. 젊었을 때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고 하지만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이민 선배들이 이곳 사람이 되려면 꿈에서도 영어로 말하는 꿈을 꾸면 이곳 사람이 된 거라 하셨다. 이제는 꿈에 영어도 하고 오랜만에 한국에 가면 무언지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도 없는 것을 보니 이곳 사람이 되었나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갔다. 뷔페로 여러 가지 음식이 준비되어 있어 각자 식성에 맞게 먹을 수 있다. 간단하게 생선 종류와 피클 그리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피곤이 몰려와 눈을 잠깐 붙이고 수영장에 갔다. 여러 사람과 수영을 즐기다가 우연히 멕시칸 가족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부부가 의사인데 멕시코가 여러 가지로 불안정해서 캐나다로 오고 싶다 한다. 멕시코인들은 스페인어로 말을 하는데 그들은 영어도 잘하는 편이라서 대화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공부를 영어반, 스페니시반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영어실력이 좋았다. 사람이 사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이다. 평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멕시코는 늘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민이 자꾸 어려워지는 세상이지만 그들이 길을 찾아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밤바다는 해를 삼키고 파도는 여전히 바다를 뒤집으며 춤을 춘다. 밤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렬은 여전히 계속된다. 먹고 마시고 음악과 쇼와 춤이 있는 낭만의 이곳은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뒤로하고 오늘을 즐기는 사람들의 집합소이다. 저녁 식사 후 해적단과 금괴와 노예에 관한 쇼를 보았다. 해적들이 금괴를 발견하고 노예들을 풀어주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하지만 자유와 평등을 위해 욕심을 버리고 다시금 본심을 찾으며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밤늦은 시간에 춤과 음악과 괴성으로 정신이 홀딱 빠졌지만 이곳의 역사를 쇼 하나로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싸움과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서로를 속이고 죽이며 탈취하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보름달이 하얀 얼굴로 밤 인사를 한다.
보름달이 멕시코까지 날 따라왔어요 (사진:이종숙)
일주일 예정으로 온 여행이니 아직 닷새가 남았다. 앞으로 남은 날들이 멋진 날들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보면 되리라. 밤은 이렇게 우리를 찾아오듯이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우리를 찾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