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꾸물꾸물 뭐라도 올 듯 잔뜩 흐려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또는 날씨가 꾸물거리면 아버지가 만들어 주시던 맛있는 손 칼국수가 생각난다. 밀가루 음식 중에 특히 칼국수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해 주시던 특별 음식이 다. 멸치 국물로 말끔하고 시원하게 만든 손 칼국수는 향수의 음식이 다. 조개라도 넣으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손 칼국수가 완성된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허약하셨다. 39세에 코피가 한 달 이상 나오는데 의사도 한의사도 고치지 못한 채 엄청난 돈을 탕진한 뒤에 코피가 스스로 멈췄다. 그때 사람들은 엄마가 돌아가신다고 했다. 어렸던 나는 그 뒤부터 엄마가 돌아가실까 봐 늘 불안했었다. 멀리 살아 자주 찾아뵙지 못하다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열일을 제치고 비행기표를 산다.
몸이 약한 엄마는 칼국수를 손수 밀 기운이 없으셨다. 요즘처럼 생칼국수를 팔지 않았던 그 시절에 아버지가 쉬시는 날은 우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다며 종종 칼국수를 해 주셨다. 아버지는 엄마가 해 놓은 반죽을 동그란 앉은뱅이 상에 곱게 밀어 놓으신다. 그 어느 한 곳도 두껍지 않게 매끈하게 밀으신다. 그 사이에 엄마는 멸치 국물을 만드시고 칼국수에 들어갈 채소를 썰어서 준비하신다. 아버지는 완벽하게 밀어놓은 반죽을 돌돌 말아서 가늘고 얇게 썰어 놓으신다. 예술이 따로 없다. 그 어느 국수도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했다. 그사이 커다란 솥에서 국물은 용솟음치며 팔팔 끓는다. 우리 육 남매는 상 주위에 앉아서 맛있는 칼국수를 기다 린다.
엄마는 썰어놓은 칼국수를 국물에 집어넣는다. 끓는 국물은 국수를 품에 안고 국수는 국물 안에서 풀어져 뒹군다. 칼국수가 끓기 시작하면 채 썰은 호박, 감자 그리고 양파를 집어넣는다. 채소와 국수는 한 몸이 되어 국물 안에서 춤을 춘다. 엄마는 엄마만의 특별한 양념으로 간을 하신다. 마늘과 생강 그리고 소금과 약간의 간장을 넣는다. 칼국수가 흐물거리며 서서히 익어가면 송송 썰어 놓은 파를 넣어 국자로 한번 휘 돌려서 섞은 뒤에 불을 끈다. 칼국수가 익어갈 때 엄마는 생강을 강판으로 갈고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넣어 다진 양념을 준비하신다. 김이 펄펄 나는 칼국수는 여덟 식구의 그릇에 하나 둘 담긴다. 아버지는 뜨겁다며 어린 우리들을 얼씬도 못하게 하시며 한 그릇 두 그릇 상위에 올려놓으신다.
우리 여덟 식구는 자리에 앉아 아버지표 칼국수를 먹는다.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난다. 너무나 맛이 있어 집안이 조용하다. 후룩후룩 칼국수 먹는 소리만 난다. 많은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오랜 전의 모습이다. 나는 옛날 아버지 엄마가 그랬듯이 나도 지금 아버지표 손칼국수를 만든다.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남편이 밀고 내가 끓였다.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며 맛있게 끓여 주었다. 이제는 모두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내가 반죽만 해 놓으면 아이들이 밀고 썰며 국물을 만든다. 오랜만에 집에 오면 칼국수가 먹고 싶단다. 옛날에 먹던 엄마 칼국수를 파는 곳이 없단다. 아이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상에 둘러서서 각자 맡은 일을 한다.
하나는 밀고 하나는 밀가루를 솔솔 뿌린다. 또 하나는 돌돌 말고 다른 하나는 도마에 놓고 예쁘게 썬다. 한쪽에서는 국물이 끓고 야채를 준비한다. 간을 맞추고 다진 양념을 만들어 식탁에 놓는다. 아이들 셋이 짝을 맞추니 여섯이 되었다. 여러 번 해 먹다 보니 모두가 전문가가 다 됐다. 상에 묻은 밀가루를 깨끗이 청소하고 열두 그릇의 칼국수가 상에 올려진다. 식구들의 생일날도, 크리스마스 때도 우리는 한 번씩 해 먹는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아버지표 칼국수가 너무 인기가 좋다. 큰며느리는 한국사람이니 당연히 좋아하고, 필리핀 며느리도 일본 사위도 잘 먹는다. 그 아이들이 연애할 때부터 집에 놀러 오면 해 주었으니 어떤 맛인지 다 안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맛있는 칼국수다. 모두 모여 칼국수 한 그릇씩 먹울 때마다 우리는 더욱 정다워진다.
오래전 시어머니 생전에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병원 근처에는 칼국수 집이 많았다. 남편이 2주간 한국에 가서 병간호를 할 때 틈틈이 가서 먹었는데 국물도 맛있고 꾸미도 푸짐하여 여러 번 가서 먹었단다. 어찌나 맛이 있었던지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그 칼국수집 이야기를 했다. 먹을 때마다 칼국수를 좋아하는 내 생각이 많이 난다며 언제고 한국에 오게 되면 꼭 한번 가자고 했다. 그 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하기 위해 한국에 가게 됐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오기 전에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그 집을 찾아갔다. 그렇게 맛있다던 칼국수는 주인은 같은데 맛은 전혀 달랐다. 실망을 하고 돌아선 우리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기대 없이 만난 행운의 날도 있었다.
몇 년 전 딸과 함께 부산에 갔을 때이다. 동네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데 하루는 동네 가까이에 있는 시장에 갔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 보니 점심때가 지나 배가 고팠다. 마땅한 음식점을 찾으며 시장 끝에 까지 가도록 맘에 드는 식당을 찾지 못했다. 그냥 갈까 하다가 우연히 바라본 골목 입구에 칼국수집 간판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작지만 조촐하고 깔끔해 보이는 식당이다. 식사 때가 지나서 인지 식당에 손님은 우리 둘 뿐이었다. 주인아주머니 혼자서 서빙도 하고 요리도 하신다. 우리에게 물과 김치 깍두기를 가져다주시고 반죽을 꺼내서 그 자리에서 밀대로 미신다. 얇게 밀은 칼국수를 팔팔 끓는 국물에 넣는다. 국수가 읽는 동안 준비한 채소를 넣고 한번 더 끓인다. 마지막으로 계란을 깨어 넣고 파를 넣어 직접 가져오신 칼국수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마치도 개인 요리사한테 특별요리를 대접받은 것 같았다. 가격은 한 그릇에 4000원! 이 얼마나 착한 가격인가? 지금도 그 칼국수의 환상적인 맛을잊지 못한다.
언젠가 가까운 친구가 심한 감기에 걸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따뜻한 국물을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약간은 번거롭지만 손칼국수를 해 주었더니 앉은자리에서 두 그릇을 맛있게 먹었다. 며칠 뒤 칼국수 덕분에 감기가 뚝 떨어졌다며 어찌나 고마워하던지 지금도 만나면 그때 맛있게 먹었던 그 칼국수 얘기를 한다. 한국 사람 치고 칼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남편의 도움을 받아 손칼국수를 해 먹어야겠다. 나는 반죽을 하고 남편은 밀고 나는 예쁘게 썰어 멸치국물에 호박도 넣고 감자도 넣고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어야겠다. 오늘은 유난히 아버지가 만들어 주시던 칼국수가 생각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