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있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시끌벅적하던 집안이 조용하다. 웃고 울고 싸우며 쫓아다니던 손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크리스마스와 크리스마스 다음날 내 생일이 있어 해마다 큰 잔치를 한다. 두 아들과 두 며느리가 웃고 담소하며 편하게 먹고 며칠 뒤에 다시 오겠다며 친구들과 놀러 갔다. 집에 왔으니 편하게 쉬고 가게 하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즐겁다. 어느 날 내가 더 이상 해주지 못하는 날이 올 때까지는 해주고 싶다. 외식을 좋아하는 아이들이지만 날씨도 춥고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 집에서 먹고 놀고 하니 집안이 살아난 것 같이 생기가 돈다. 여기저기 장난감이 뒹굴어 다니고 담요가 바닥에 떨어져서 정신이 없지만 사람 사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크리스마스 점심에 갈비탕에 갈비와 잡채 그리고 여러 가지 반찬을 해 주니 맛있게 먹는다. 식당에 가서 먹으면 몸은 편하겠지만 재료 몇 가지 사다가 집에서 해 먹으면 더 많이 더 맛있게 먹고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어 좋다. 요즘엔 재료 값이 올라 비싸기만 하고 먹을 게 없어 매번 실망을 하는데 집에서 만들어 먹고 놀아서 편하다. 힘들게 버는 돈인데 열 식구가 나가서 한 끼 먹고 나면 몇백 불이 나간다. 먹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시켜서 먹어 보면 별 맛도 없고 양도 적은데 비해 값은 너무 비싸다. 그래도 기분 전환하러 간혹 외식을 하고 늘 실망을 하지만 먹는 게 중요하고 음식을 나누며 정을 주고받는 것을 삶에서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장난감 선물을 많이 받은 손주들은 기뻐하며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놀고 어른들은 각자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저녁으로 먹을 칠면조를 굽고 으깬 감자와 그레비 소스를 만들어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오랫동안 약한 불로 오븐에서 구워낸 칠면조는 연하게 익어서 입에서 살살 녹고 감자와 익힌 야채들이 간이 잘 맞아서 두 접시씩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했다. 이곳에서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 때에는 보통 칠면조를 구워 먹는데 해마다 몇 번씩 하다 보니 칠면조 굽는 선수가 되었다.


(사진:이종숙)

모든 요리를 오븐에서 하기 때문에 한번 준비하면 특별히 부엌에서 서성거릴 필요 없이 몇 시간 뒤에 꺼내서 각자 접시에 덜어 먹기 때문에 간단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한국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특별한 날은 양식을 하지 않으면 서운해한다. 아무래도 여기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이곳 풍습이 익숙한 것 같다. 저녁 먹고 나서 한데 모여 앉아 벽난로를 피며 영화를 보고 시간을 함께 하며 손주들의 재롱을 보니 더 바랄게 없이 행복하다. 이역만리 이국땅에 와서 자손 번창하고 건강하면 최고다. 이민 초기에 너무 힘들어서 고국을 많이 그리워했지만 이제는 이곳이 고향이 되었다. 어쩌다 한국에 가보면 같은 말과 글을 쓰는데 세월 따라 한국말도 달라지고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져서 낯설어지고 이곳에 돌아오면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보면 이곳 사람이 다 됐다.


처음 이곳에 이민 왔을 때는 말도 안 통하고 생김새도 달라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세월이 약이라고 오래 살다 보니 이곳이 좋다. 부모형제가 그립고 친구들이 그리웠던 세월은 가고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살며 가족이 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적응한 지 42년이 가까워지다 보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형제와 자매처럼 가까워졌다. 나이 든 어른들은 부모처럼 우리를 챙겨주고 우리는 그들을 부모처럼 대하며 살아가고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어디를 가던 어디에 살던 한국을 잊을 수 없고 자주 갈 수 없기에 그리워하면서도 이곳에서 적응하며 재미있게 살아간다.


어릴 적 추억은 한국에 있지만 젊은 날의 추억과 아이들의 추억은 이곳에 있다.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은 내 인생에 3 분의 2가 되어가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모르지만 내 시간이 끝나면 뼈를 묻을 곳도 이곳이다. 크리스마스 하루는 그렇게 가고 다음날은 아침부터 내 생일이라고 들썩들썩한다. 손주들이 할머니 생일 축하한다고 노래를 부르며 뽀뽀를 하고 포옹을 하고 아들들은 생일 선물로 대형 텔레비전을 사다가 설치하느라 바쁘다. 생일날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왕비같이 있으라는 아이들 말을 들으며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먹고 놀았다.


케이크와 포도주와 배달해온 음식과 이런저런 간식을 먹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 아이들은 가고 우리 둘만이 남은 집안에서 난롯불을 피고 영화를 본다. 아이들이 오는 것도 좋지만 우리끼리의 한가한 시간도 좋다. 밖의 온도는 영하 33도에 체감온도는 영하 42도로 살인적인 추위다. 밖에는 춥지만 따뜻한 벽난로를 피고 앉아서 아이들이 사다 준 70인치 대형 텔레비전을 보며 추위를 잊는다. 행복은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있고 각자가 찾아낸 행복을 즐기며 사는 게 인생이다. 아이들이 오면 또 다른 행복을 만나고 아이들이 가면 우리 둘만의 행복을 찾으면 된다.

(이미지 출처:인터넷)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밤중에 외출한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