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다시 떠오르는 새해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손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을 뺐는데 너무 조용하다. 집으로 가서 없는데도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 괜히 두리번거린다. 내 영혼에 아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혼동을 한다. 온다고 하여 이것저것 준비를 하며 기다렸는데 왔다 갔는데 몸은 편하지만 벌써부터 그리움이 가슴에 쌓인다. 사람 사는 것 같이 요란하던 집안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이 적막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신나게 먹고 놀다 갔다. 갈 때도 이것저것 싸 주었는데 다시 보고 싶다. 아이들을 보면 우리가 좋은 기를 받는지 없던 기운도 생기고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은 데 아이들이 집으로 가니까 기운도 없고 의욕도 없다. 그렇다고 같이 살 수도 없고 젊은 애들과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잠깐 왔다 가는 것으로 만족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아이들이 늦잠 자는 동안 손주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일일이 쫓아다니지 않아도 될 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가서 조금씩 도와주면 된다. 의사소통이 되고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은 대로 혼자서 놀게 하고 오랜만에 집에 온 아이들에게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 된다.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을 따라 덩달아 몸과 마음이 바빴었는데 막상 가니까 피로가 몰려온다. 아이들이 한번 다녀가면 마음은 기쁨으로 행복한데 몸이 힘든 것을 실감한다. 괜히 여기저기 쑤시는 것 같고 생전 낮잠을 자지 않는 내가 낮잠이 쏟아져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개운하다. 아이들이 눈에 선하지만 하루 이틀 그러다 보면 다시 조용한 내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역시 우리 둘이 사는 게 가장 편하다. 아무런 일도 없이 심심하고 무료하지만 그게 좋다. 하고 싶은 거 하고 눕고 싶으면 누워서 쉰다. 아이들이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아도 우리 둘만의 시시한 일상이 좋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몸도 마음도 나이를 따라가는 게 신기하다. 나이 든 사람들을 보고 늙어도 저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월 따라 나도 그들을 닮아간다. 새파랗던 나뭇잎이 가을을 맞고 단풍이 들듯이 세월을 거부할 수는 없는가 보다. 지난여름에 곱게 피었던 꽃들은 열흘을 살다 가고 해마다 피는 다년생은 추운 겨울을 견디며 눈 밑에서 봄을 기다린다.


사람도 다년생이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서로 만나 사랑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싸우고 미워하고 후회하고 미련 때문에 괴로워하다 간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잘난 체하며 남을 깔보고 무시하고 잘못을 알지 못한 체 남 탓만 하다가 간다. 하얀 눈에 묻혀서 봄을 만드는 자연에게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때가 되면 피어나고 갈 때를 알고 떨어지고 고개 숙이며 세월을 받아들인다. 눈을 맞고 바람을 끌어안으며 혹독한 겨울을 살아나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 겨울 없는 봄이 없듯이 고통 없는 인생도 없을 것이다. 살만하면 아프고 고비를 넘기고 견디다 보면 떠나는 것을 알면서도 오만과 편견 속에 살아간다.


내로남불을 말하면서도 자신을 옹호하고 살고,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세월 따라 철들고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무심한 눈보라는 여전히 심하게 분다. 어제 온 눈을 치기가 무섭게 또 쌓인다. 한 가지 걱정을 해결하면 또 다른 걱정이 생겨나는 인생길이다. 눈이 오면 오나보다 바람이 불면 부나 보다 하며 살아야 하는데 눈이 오고 바람까지 분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내일도 더 춥다는데 오미크론은 세상모르고 퍼져간다. 무엇이 지구를 화나게 했을까? 여전히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사는 인간들에게 지구는 말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인간들의 삶을 망가뜨려도 여전히 모른 체하는 인간을 일 깨우려고 여러 모양으로 표현을 한다.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이 편해지고 쉽게 돈을 벌며 사람들은 행복한 줄 알았는데 우울증 환자는 늘어가고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르는 전염병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간다. 사다리를 타고 위로만 가면 지상천국을 만나는 줄 알았는데 사다리가 거꾸러져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다. 앞으로 가다가 산을 만나고 강을 건너 평지에 이르렀다 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막막한 현실을 만나지만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보고 다시 일어나 걸어간다. 그곳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가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를 떠나서 가야만 한다. 가다 보면 해도 만나고 달도 만나며 힘들면 누워서 별을 세며 삶을 끌어안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이해하며 앞으로 가야 한다. 가는 길이 험하고 고달파도 삶은 이어진다. 내리는 눈이 멈추는 시간이 있듯이 우리의 고달픔 또한 멈출 것이다. 오래 산 사람도 내일을 모른다. 무엇이 발목을 잡을지 모르고 무엇이 우리를 이끌고 갈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도 가다 보면 길을 찾을 것이다. 어둠은 물러가고 밝은 새해의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고 있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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