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태어날 때 세상을 다 안다면 힘든 세상을 아무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태어나서 배냇짓을 하며 사랑받고 칭찬받으며 박수받으며 웃고 뒤집고 앉기와 걷는 것을 배운다. 수없이 넘어지며 안 되는 것을 연습하며 하나 둘 배우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며 성인이 되어 사회를 배운다. 살다 보면 좋은 것만 할 수 없고 싫어도 해야 하고 남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함을 알게 된다. 싫다고 끝낼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절망 속에서도 희망하고 아픔 속에서도 기쁨을 찾으며 산다. 살면서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죽음이 삶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주위에서 병마와 싸우다 죽은 사람도 있고 고통에 시달리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도 보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위기와 유혹을 물리치고 살아남아서 힘든 삶을 살아간다. 아무리 죽고 사는 것을 본인의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죽을 사람이 따로 있고 살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죽고 살기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길로 결정된다.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은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창조주는 우리가 견딜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한다. 서산 넘어 간 석양이 다음날 아침에 다시 떠오르기는 어려워도 끊임없이 매일매일 떠오른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고 하지 못할 것 같은 일도 하다 보면 하게 된다.
하루하루 사는 게 바빠서 장부정리를 미루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키우며 장사까지 해야 하는 나로서는 장부정리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미루다 보면 1년이 되어 장부정리를 해서 회계사에게 갖다 주는 날이 다가온다. 마감일에서 두 달 간의 시간을 주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하루일을 끝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밥을 해 먹으면 몸은 나른하여 눈이 감긴다. 그래도 정리를 해야 하는 장부를 꺼내놓고 일 년 치를 조금씩 한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도 조금씩 하나하나 하면 된다 생각하고 시작하면 어느 날 한 달 것을 끝내게 되고 6개월 것을 끝내며 머지않아 끝이 날것을 희망하게 된다. 피곤하고 엄두가 나지 않아 시작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게으름 때문이었다.
하루하루 했으면 이렇게 많이 밀리지 않고 제시간에 모든 것을 끝냈을 텐데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로 미루며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의 잘못이다. 세상에 후회 없고 미련 없이 살다가 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어제의 일도 후회를 하고 미련이 있는데 지나간 한평생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살아온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때 당시에는 최선을 다하고 이해하고 살아온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월이 흘러서 뒤돌아 보면 오만이 었던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찾아가 뵙는 부모님을 내가 제일 사랑하고 가장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한국에 가서 보면 여러 가지가 답답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속이 상할 때가 많았다. 노인이 된 부모님이 불쌍하면서도 답답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속이 상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로 다투고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기도 했다.
물론 금방 풀어져서 부모님께 정성을 다하며 잘 있다가 오긴 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나고 나니 부모님과 나는 28년의 나이 차이가 있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대차이가 난다. 단지 부모 자식 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받아들이며 순종하고 살았던 것이다. 아무리 알려해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데 내 방식대로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연로하신 부모는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몇 년 만에 한번 찾아가서 딸이라고 이래라저래라 하며 온갖 잔소리를 한 나 자신이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다. 물건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자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시끄럽게 텔레비전을 켜고 보지도 않으면서 앉아서 꾸벅꾸벅 졸으시는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한심하기만 했다. 그런데 세월이 가고 지금 내가 그런다.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를까 봐 가까이 보이는 곳에 두다 보면 어질러지지만 그게 편하고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바쁘지 않다 보니 아무 때나 끄덕거린다. 낮에 낮잠을 자고 밤에 몇 시간 자다 보면 새벽에 깨어서 텔레비전을 켜고 이것저것 찾아서 본다. 부모님이 하던 그대로 나도 하는 것을 보며 자식이 부모의 나이가 되어야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음을 실감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아이들은 당연히 부모를 인생의 멘토로 믿고 따르지만 사춘기를 거쳐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부모도 보통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나름대로 경험하고 배우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목적과 고집이 생기며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강요당하거나 침범당하기 원치 않는다.
이제 아이들이 성장하여 가정을 꾸미며 나름대로 그들 방식대로 살고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을 본다. 그런 것을 보면 부모님의 삶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하고 질책하던 것이 정말 죄송하다. 나이가 들어도 다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는데 내 방식대로 생각하고 걱정하고 화를 낸 것이다.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많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자신의 주장을 굳이 내세우며 언쟁을 할 필요는 없다. 삶은 어차피 성공도 실패도 없고 정답이 없는 것이다. 잘났다고 나설 필요도 없고 못났다고 무시할 필요도 없다. 나이가 들어 더 많이 알고 더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알던 것을 잊게 되고 할 수 있던 것을 못하게 된다. 인생이란 어차피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