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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19. 2020

늑대 길에서 만난...  숲 속의 삶

늑대길이 있는 숲 속(사진:이종숙)




오늘은 늑대가 되기로 했다. 숲 속에 산짐승들이 만들어 놓은 늑대 길로 걸어 가본다. 내가 늑대가 되어 여기저기 살피며 걸어본다. 깨끗한 산책길로 걸으면 쉽고 편하지만 때때로 오늘처럼  속이 궁금해지면  숲을 지나 강가 절벽을 둘러보고 싶어 늑대 길로 들어선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지나가는 나의 옷을 잡아당기고 머리를 기지만 오늘은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이다. 새로운 길로 가려면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 강물이 힘차게 내려가고 오리들도 물길을 따라 한가로이 헤엄을 치며 어느새 강 하류 쪽으로 가고 있다. 쓰러진 채 몇십  동안 숲에 누워있는 나무에 연두색 이끼가 카펫처럼 자란다. 생과 사의 모습이 숲 속에 있다. 죽어가는 나무와 새로 자라는 나무가 그들 나름대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름 모를 산나물과 잡풀들이 공생하고 굵고 가는 나무들과 크고 작은 나무들이 산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몇십 년 아니 백 년도 넘게 한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나무가 있고 등이 굽어 휘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웃들과 사이좋게 서 있는 나무도 있다. 풍파에 시달려 아예 뿌리가 빠져 옆으로 길게 누워있는 나무는 걸어가는 이들의 의자가 되기도 하고 낭떠러지에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가늘고 작은 나무들은 더 많이 자라기 위해 준비하고, 서 있는 채로 병이 들은 나무들은 군데군데 예쁜 버섯을 키우며 할 일을 계속한다. 찢어지고 꺾어진 나무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편안히 쉬고 누군가의 손에 지팡이가 되기를 바라며 조금씩 말라가고, 누군가의 손에 잘려 땔나무가 될 것이다. 숲 속에 와서 보니 나무의 종류도 많고 색깔도 여러 가지로 나름대로의 매력을 보이고 있다.  


빨간색과  누런색  그리고 검은색의 나무가 있다. 회색과 밤색 나무가  있고 어떤 것은 푸른색이 돌기도 하는 등 참으로 각양각색 이건만 그 누구 하나 똑똑하다고 나서지도 않는다. 부족하다고 밀치지도 않고, 잘났다 뽐내지도, 못났다 무시하지도 않는다. 아무런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숲 속의 세상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오묘함 속에 수백수천의 세월을 갈고닦으며 살아 움직인다. 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많은 짐승들의 삶터가 되고 그들의 편안하고 재미있는 놀이터를 제공한다. 새들은 나무 사이로 날아다니고 다람쥐들은 나무들을 오르내리며 재주를 부린다. 오랫동안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발길로 만들어진 산길은 다져지어 사람들이 다니는 오솔길이 되어 나도 걸어본다. 어디가 발원지 인지 알 수 없는 계곡물이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른다.


지나가던 나뭇가지들이 하나 둘 모여서 물 한가운데에 나무산을 만들어 물은 내려오다가 빙 돌아가기도 하고 넘어가기 도 한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세월 동안 깎이고 허물어져 살 속을 허옇게 드러낸 절벽 옆에도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숲 속에 머문다. 나무가 너무 많아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 있고 나무 하나 없는 메마른 벌판에 사람 키 만한 풀들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잎을 전부 털어버리고 발가벗고 서 있는 나무가 있고, 몇 개의 메마른 이파리를 달고 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는 나무도 있고, 바짝 말라 붙은 단풍잎들을 모두 간직한 채 봄을  는 나무도 있다. 밤새 어두웠던 숲이 햇살을 받아가며 환해지고 나뭇잎도, 산길도 새날을 반기며 활기를 되찾는다.



숲 속에도 그들만의 삶이 있다.(사진:이종숙)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 누군가가 매어놓은 밧줄을 잡고 오르내리며 따뜻한 그 마음에 나의 감사함을 전한다. 뿌리를 감추지 못한 나무들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계단이 되어 한몫을 단단히 하고 힘들면 쉬었다 가라며 그늘까지 제공해준다. 숲 속에는 여러 동물들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갈래길이 있다. 길인 것 같아 가다 보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낭떠러지나 계곡물로 연결되어 다시 되돌아 가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나무들이 울창한 곳은 햇빛도 차마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나무 사이로 윙크를 하고 어두운 숲 속을 밝혀준다. 숲 속을 걷다 보면 움푹 파여 자칫 잘못하면  빠질 수도 있는 구멍들이 군데군데 있지만 누군가가 나뭇가지나 돌로 메워 놓아 빠지거나 넘어지는 사고를 피할 수 있다. 뒤에 오는 사람들에 대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친절한 배려로 숲 속의 질서는 무너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 같다.


인적이 드문  숲 속은  들짐승들이 돌아다니기도 하여  약간은 긴장이 되지만 알게 모르는 설렘으로 흥분도 된다. 깊은 숲 속에 좁은 산길을 걷다 보면 길을 잃을 수 있고 낯선 사람을 만나 해침을 당할 수도 있어 언제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매일의 생활이 똑같은 도시를 벗어나 숲 속에 들어오니 별천지 같기도 하고 신천지 같기도 하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하지 못한 것과 가 보지 못한 곳들이 수없이 많지만  이 깊어가는 아름다운 이 계절에 이곳을 찾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기적이다. 알면서 하지 않고, 원하면서 거부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이토록 가까운 곳에 이처럼 좋은 곳을 모르고 여행은 먼 곳으로만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며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재미없는 도시라고 투덜거렸던 나였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무엇이 되었든 내가 찾아내고 알아내야 한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 조정이 된 뒤 집에서 2-3주 쉬고 있는데 신문광고에 국비로 가르치는 간호보조원 학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이곳에서의 경험과 학력을 필요로 한다지만 한국 경력을 이력서에 써가지고 당연히  안될 줄 알면서도 그냥  밑져야 본전이라는 뱃장으로 신청을 했는데 생각지 않게 통과가 되었다. 사람들이 안될 거라고 했지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안된다고 하더라도 잃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20명을 뽑는데 몇백 명이 응시를 하여 몇 번의 시험과 인터뷰를 거쳐 합격이 되었다. 나중에 병원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공부를 해놓으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간호 상식을 배울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한번 시도해 본 것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학교를 끝내고 자격증을 받고 병원에서 2년 동안 일을 하며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배웠다.


힘은 들었지만 학교에서 배운 여러 가지 상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사춘기도 수월하게 넘기게 되었다. 내가 사람들의 말만 듣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간호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 일 것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면 되지만 뭐라도 배우면 나쁠 것은 없다. 하늘은 높고 파랗다. 남편과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를 하며 숲 속을 뒤지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다 보니 산책길로 연결된 다리가 보인다. 지난번 오리 한쌍이 사랑을 나누던 강가이다. 살다 보면 생각지 않은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을 때 지체하지 말고 바로 해야 한다. 늑대  무섭다고 머뭇거렸다면 오늘 숲 속에서 만난  나무들의 삶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봄의 파란 하늘이 내게 준  속 고귀한 선물에 감사하며 내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숲을 찾고 숲과 대화하고 싶다.


늑대 길에서... 삶의 기쁨을 찾았다.


오리들이 한가하게 논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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