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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18. 2020

나의 원수 민들레... 나의 사랑 민들레 김치






납작하게 땅바닥에 앉아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는 이곳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원수 덩어리다. 약을 치고 칼로 파내어도 없어지지 않고 돌아서면 방긋이 웃고 앉아있다. 쫓아다니며 죽여도 여전히 퍼져나가는 민들레는 컴퓨터에서 말하는 악성코드이다. 날씨가 좋거나 나쁘거나 지칠 줄 모르며 번식하는 민들레의 끈질김은 고무줄보다 더 강하다. 싫다고 하면 더 많이 보이고, 저리 가라 하면 더 가까이 온다. 예뻐해 달라고, 더 사랑해 달라고,  피해 가면 좋다고 달려들며 노란색 예쁜 꽃을 피우며 사랑을 요구한다. 잔디밭에 민들레가 하나 둘 눈에 띄면 부엌에 들어가서 칼을 가져온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편한 운동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민들레 살생을 위해 완전 무장을 한다. 편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칼을 잡은 손에 힘을 다해 땅속 깊이 파내어 민들레 뿌리를 완벽하게 뽑아낸다.


굵고 하얀 뿌리가 열무처럼 길게 따라 나온다. "그래 이거야, 이놈의 뿌리가 이렇게 다 나오도록 칼을 깊이 넣어야 해. 이것을 좀 보라고 내가 네놈 때문에 정말 미친 다니까". 하며 민들레를 칼로 뽑아낼 때마다 혼잣 말을 한다. 땅 좋고 빛 좋은 곳에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자라는 것이 민들레의 특성이 다. 봄을 제일 먼저 맞는 것도, 맨 나중까지 남는 것도 민들레다. 마른땅에도, 젖은 땅에도 뿌리를 내린다. 모래밭에도 물가에도 진디 밭에도 뿌리를 내린다. 죽임을 당해도 끝없이 퍼져나가 더 많이 번식하는 민들레는 여기에 사는 우리의 원수이자 사랑 덩어리이다. 원수가 되고 사랑이 되는 데는 특별한 우리들 만의 이유가 있다. 봄이면 산나물을 먹고 자란 우리들인데 이민 와서 산나물을 먹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냉이와 달래 그리고 쑥과 이름 모를 나물은 봄 언덕의 파란 풀 사이에서 남몰래 자란다.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돼서 남편이 고향에서 사업을 하게 되어 시골로 내려갔다. 서울에서 자란 나는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 무쳐주신 산나물을 먹을 줄만 알았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았다. 그저 퍼렇게 생긴 것은 시금치 정도로만 알고 살았다. 하루는 옆집 아줌마가 나물을 뜯으러 가자고 하여 바구니를 들고 따라 나갔는데 막상 들판에 가보니 그냥 파란 들판만 보일 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줌마는 땅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뜯어서 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내 눈에는 다 같은 풀로만 보였다. 아무리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찾아보려 했지만 다 풀인 것 같아서 빈 바구니만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한참 뒤에 내 텅 빈 바구니를 본 아줌마는 나물을 하나도 못 뜯은 내가 불쌍했던지 자기 바구니에서 냉이와 달래를 한 움큼 집어서  내 바구니를 채워주어서 그날 저녁 된장국을 맛있게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산나물을 못 알아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잔디를 망치는 민들레만큼은 귀신같이 찾아내어 뽑아버린다. 눈이 녹은 잔디에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민들레이니 남편과 나는 저녁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칼을 들고 뒤뜰을 돌아다닌다. 어린 손주들이 맨발로 뛰어놀기 때문에 웬만하면 약은 안 뿌리고 우리가 칼로 뽑아낸다. 손도 부르트고 허리도 아프지만 그리 많지 않으니 심심풀이로 천천히 한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서면 나오는 민들레가 원수 같다. 특히 이웃집에서 민들레 씨가 날아오면 걷잡을 수 없는데  우리 옆집 사람은 잔디를 전문업체에 맡겨 관리하기 때문에 다행이다. 나는 그런 지독한 민들레가 싫다.  그래서 악착같이 뽑아버리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은 민들레를 캐서 맛있는 김치를 만든다. 민들레로 김치를 만드는 것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닌데 민들레가 몸에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여름 한철 열심히 민들레를 캐다가 김치를 만들어서 겨우내 밑반찬으로 냉장고에 넣어놓고 조금씩 먹는다. 같은 민들레라도 누구의 손에 뽑혀버리고, 누구의 손으로는 맛있는 김치로 새로 탄생하는 묘한 의미가 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깨끗한 민들레가 지천이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요즘에 나오는  민들레를 캐다가 김치도 만들고, 뿌리는 말려서 겨울에 추운 날 차로 마시면 구수하고 맛있지만 천성이 게으른 나는 생각을 전혀 안 한다. 나에게 변함없는 친절을 베풀어주는 한 친한 친구가 있다. 그녀는 부지런하고, 깔끔하고, 싹싹하고, 친절하여 늘 고맙게 생각하며 가까이 지내는데 해마다 민들레 김치를 담아서 가져다주어 맛있게 먹는다. 줄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지만 한 번도 내가 민들레 김치를 담아서 가져다주지 못했는데 그 친구가 가져다줄 때마다 나는 맛있게 먹는다. 그 많은 민들레를 하나하나 캐어서 다듬고 씻어서 맛있게 만들어 혼자 먹기도 아까울 텐데 손이 큰 그 친구는 아까운 줄 모르고 나한테 주고 나는 미안하지만 뻔뻔스럽게 받아먹는다. 어제 한인회에서 이곳에 사는 한인들에게 마스크 공급이 있다 하여 갔는데 이 친구는 영락없이 맛있는 민들레 김치를 한 항아리 가져다주었다.


골프를 잘 치는 그녀는 골프장에 가서 골프 치면서  골프장 근처에 있는 숲 속에서 틈틈이 민들레를 캔다. 지금 캐는 민들레는 연하고 깨끗하다. 냉이나 달래가 귀한 이곳에 그나마 민들레가 흔하니 알뜰한 살림꾼인 그녀는 골프보다 민들레 캐는 재미가 더 좋단다. 커다란 비닐봉지로 한가득 채워 집에 와서 남편과 다듬는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플 텐데 커다란 양푼에 하나하나 손으로 집어서 행여나 잡풀이라도 들어갈세라 눈을 크게 뜨고 깨끗이 씻은 다음 미리 준비해 둔 양념을 부어 김치를 만든다. 너무 심하게 비비면  풀내도 나고,  쌉쌀한 맛이 나오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애기 다루듯 살살 양념을 섞는다. 커다란 봉투로 하나였던 민들레는 숨이 푹 죽어서 몇 분의 일로 줄기 때문에 한 접시 얻어먹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한 항아리를 받았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귀한 민들레 김치인데 이렇게 앉아서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받아먹어서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나는 너무 맛있다. 밥도둑 민들레 김치로 겨울 동안 잃었던 입맛을 되찾고 살맛이 난다. 웬만한 정성과 사랑 없이는 담을 수 없는 민들레 김치를 그렇게 많이 남에게 줄 수 있는 그녀의 사랑은 얼마나 깊을까? 때로는 언니 같고, 엄마 같고, 동생 같은 그녀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마움을 전해 본다. "친구야!!! 고마워 사랑해  맛있게 먹을게". 나의 원수인 민들레는 그녀의 손을 통해 민들레 김치로 되어 나의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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