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지 않아도 행복은 온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또 다른 하루가 왔다. 2월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봄을 꿈꾸게 하는 3월이 오기에 새삼스레 설렌다. 해가 길어지고 새들은 일찍부터 바쁜 하루를 시작한다. 몸이 뻐근하고 개운치 않아도 시작된 하루를 반갑게 맞는다. 새벽까지 자다가 깨면 한두 시간씩 잠이 안 온다. 눈을 감고 자려고 할수록 잠은 멀리 도망가고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힘들어 일어나서 이것저것 들춰 본다. 낮에 할 일도 없는데 밤이라고 할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에 괜한 유튜브나 틀고 본다. 끝이 없이 나오는 여러 가지를 다 볼 수 없고 그럴듯한 것을 켜놓고 보다 보면 눈이 피로해진다. 잠은 오지 않아도 눈을 감아본다. 핸드폰을 손으로 잡고 있는 것조차도 싫어 책 읽어주는 채널로 들어간다. 눈을 감고 귀로 듣다 보면 자장가가 되어 잠이 오기 때문에 밤에 잠이 안 올 때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하늘은 아주 높고 청명하다. 아침을 먹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세상은 온통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어도 넓은 들판이 마음까지 시원하다. 공원 중간에 움푹 파인 곳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썰매를 타는 모습을 보니 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마음은 아직 청춘인가 보다. 아이들 중에 혹시 아는 얼굴이라도 있을까 둘러보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사람들이 걷기 좋게 산책로를 깨끗하게 눈을 치워 놓아서 걷기 아주 편하다. 영상 온도라도 밖이라 추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겨울 외투에 털모자까지 쓰고 나왔는데 걷다 보니 덥다. 모자를 벗고 코트 지퍼를 내리고 걸으니 상쾌하다.


공원 한가운 데에 있는 호수는 꽁꽁 얼어서 물을 볼 수는 없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정겹다. 자연은 그래서 언제나 사랑을 받는다. 때가 되면 옷을 입고 꽃을 피우고 곱게 물들이다가 허물을 벗고 봄을 기다린다. 성급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다. 올 때를 알고 갈 때를 알고 순서를 지키며 반항하지 않고 순종한다. 인간은 욕심과 오만으로 뜻을 거스르고 탓을 하는데 자연은 그렇지 않아 좋다. 너무 춥고 길이 미끄러워서 꼼짝 않고 집에만 있었더니 정신적으로 피폐되어가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나와서 걸으니까 좋다.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오면 이런 좋은 공원이 있는데도 자주 오지 못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몇 번 와보지 못하고 일 년이 지난다.


공원이 크고 아름다워 여러 가지 행사로 늘 바쁜 공원인데 코로나로 인하여 한동안 한적했지만 머지않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리라 믿는다. 여름에는 호수에서 오리들이 헤엄을 치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바비큐를 한다.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특별한 날은 노래와 춤과 음식으로 시민들이 하루를 즐긴다. 밤에는 불꽃놀이를 하며 아름답고 신비로운 불꽃을 보며 함성을 지르며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30년이 넘어 나무들도 자리를 잡고 여기저기 깊은 숲을 이루고 넓은 운동장이나 들판에서 젊은 사람들은 운동을 한다. 한참을 걸어서 언덕 위에 서서 바라보는 공원은 정말 믿음직하다. 사시사철 깨끗하게 다듬어 놓은 공원을 걸으며 이런 곳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공기도 좋고 교통도 편리하고 군데군데 간이의자가 놓여있어 힘들면 쉬어가고 여름에 더우면 쉼터에 앉아서 호숫가에서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는 것도 좋다. 가까이 있어 아무 때나 올 수 있기 때문에 먼 곳으로만 가곤 했는데 어쩌다 한 번씩 이렇게 와서 보면 새로운 매력에 푹 빠진다. 공원 저편에는 차들이 오가고 그 옆으로 쇼핑몰이 보인다. 이렇게 걷다가 필요한 게 있으면 잠깐 들려서 장을 보기도 하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급하게 가야 할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 천천히 구경하며 걷는다. 쭉 뻗은 산책로 옆에 커다란 전나무들이 서있고 군데군데 꽃사과 나무와 마가목 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한적한 시간에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가까이에 있는 초등학교가 보인다. 세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시어머니께서 잠깐 방문하셨다. 아침에 다들 나가고 시어머니 혼자 집에 계시다가 아이들 쉬는 시간쯤 길을 건너 학교 운동장 옆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신다. 아이들을 보면서 언덕에 서 있으면 아이들은 할머니한테 뛰어가 한바탕 재롱을 부리고 친구들에게 뛰어가곤 했다. 아무도 없는 아들 며느리 집에 오셔서 쓸쓸하셨겠지만 학교가 가까이에 있어 나름대로 손주들과의 추억을 이야기하시던 생각이 난다. 할머니 치마폭에서 장난치던 아이들은 마흔이 넘고 큰 손자는 11살이다.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눈이 녹아 여기저기 고여있는 곳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집을 향한다. 오늘도 세월의 한 페이지를 수놓는 하루가 간다. 지나간 것은 추억이라 아름답고 오늘은 나와 함께 하기에 사랑스럽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어느 날의 미래였듯이 오늘이 가면 과거의 하루가 된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새들은 한가롭게 창공을 나른다. 아무런 일이 없는 조용한 날 속에 아름다운 평화가 마음에 차분히 깃든다. 요란하지 않아도 행복을 만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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