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가져다주는 행복

by Chong Sook Lee



구름이 비를 잔뜩 품고 있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데 정말 비가 올 것인지 변덕 많은 이곳의 날씨는 알 수 없다. 이곳에 오던 날 열흘간 날씨로는 매일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던 날 밤에 눈 비가 온 것 외에는 매일 화창한 날씨였다. 이제 4일 후에는 눈 쌓인 에드먼턴으로 돌아갈 텐데 비가 와도 상관없다. 간밤에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잠을 깨고 한동안 잠을 설쳤다. 잠이 안 올 때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바쁘다. 밤에는 잠을 자고 낮에는 활동해야 하는데 뜬금없이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 아직 바람은 불지만 집안은 평화롭다.


커피 향이 감돌고 토스트와 계란을 먹으며 뒤뜰을 바라보는 평화로운 아침이다. 비가 온대도 여전히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예쁜 꽃들이 다 떨어지겠지만 피지 않은 꽃들이 피고 작은 꽃들이 자랄 것을 생각하면 비가 와도 바람 불어도 상관없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자연이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어 살아가게 한다. 매일이 햇볕 나고 비가 안 오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은 사막이 된다. 비가 오는 것이 싫은 사람도 있고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곳도 있으니 세상은 공평하다.


내가 사는 곳은 매일 눈이 온단다. 아침마다 친구가 보내주는 사진을 보니 그곳은 그야말로 한겨울이다. 그곳은 눈이 오지만 여전히 땅속으로 봄이 기어 온다. 해마다 이맘때 눈이 와서 봄을 늦추는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추운데 비가 온다면 세상이 다 얼어붙을 것이다. 자연이 다 알아서 하는데 인간은 안달한다. 지금은 꽃 필 생각도 못하는 그곳이지만 한꺼번에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봄여름이 같이 오기에 세상은 더 눈부신 곳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람이 불어 꽃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바닥에 둥글어 다니고 나무들이 좌우로 춤을 춘다. 해가 보인다. 언제 구름이 꼈었나 할 정도로 화창하다. 빅토리아 주지사가 머무는 곳으로 가본다. 온갖 꽃과 나무로 예쁘게 단장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한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은 정원 길을 따라 걸으며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바라본다. 하늘이 파랗고 뭉게구름이 뽀얗게 피어난다. 바다 건너에 있는 미국 산이 보인다. 하얀 눈이 쌓인 산들이 보이고 꼼짝하지 않고 서있는 배 한 척이 바다 위에 떠 있다.


(사진:이종숙)


팜 트리가 여기저기에서 자라고 커다란 선인장도 정원에 의젓하게 앉아 있다. 목련꽃이 활짝 피어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활개를 펴고 자란다. 걷다가 힘들면 쉬었다 가라고 여기저기 의자가 있어 살며시 앉아서 바다를 바라본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곳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갖으며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꼬마 아이가 어느새 자라 짝을 만나서 부모의 품을 떠나 기특하게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3년 전 딸 결혼식에 다니러 온 뒤 처음으로 하는 방문이다. 멀리서 온 사돈과 함께 걸으며 통역 앱을 쓰며 웃으며 이야기하던 때가 생각난다. 헤어질 때 둘이 행복하게 살 거니까 걱정 말라며 포옹해 주었더니 사부인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던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자식을 낳아 키워 시집 장가보내는 부모 마음은 만감이 오가고 서운하지만 그들의 행복만을 바란다. 엊그제 일 같은데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처럼 앞으로 오는 세월 또한 빠르게 왔다 갈 것이다.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생각 밖으로 너무나 날씨가 좋아 기분 좋게 구경을 한다.


추운 겨울이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지루해하던 차에 결혼기념일도 다가오니 딸이 놀러 오라고 해서 온 여행인데 날씨도 좋고 딸이 잘해주니 너무 좋다.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딸과 사위에게 너무나 고맙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온갖 좋은 곳을 찾아서 지극정성으로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닌다. 안방을 내주고 삼시세 끼 맛있는 집밥을 해주며 우리가 편하게 돌보아주는 딸이 있어 행복하다.


어릴 적 내가 저희들에게 하던 대로 한다. 자상하고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니 더 바랄 게 없다. 이제는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게 우리 둘만 건강하게 하루하루 살면 된다. 부모님이 연로하신 모습에 마음이 아팠는데 백세 시대가 되어 지금의 나의 나이는 장년이라고 한다. 늙어간다는 것이 두렵고 처량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과정이다. 젊음이 영원하다면 삶은 사막처럼 메마를 것이다. 경쟁 속에서 서로를 이기려 하고 서로가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며 한시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욕심 없이 마음을 비우며 살아가는 시기이다. 등에 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손에 쥐고 있는 많은 것을 놓아주며 가슴에 쌓인 힘든 것들을 풀어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은 만들고 갖고 즐기다가 때가 되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지나간 세월도 보이고 앞으로 오는 세월도 보이는 듯하다. 몇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꿋꿋이 서있는 나무처럼 비바람에도, 폭풍우에도 넘어지지 않고 자손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자연을 보며 한가롭게 산책을 하고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하루를 즐기는 지금 나는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평화가 주는 행복을 누리며 오늘 하루를 보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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