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날아다닌다. 새들은 노래하고 녹음이 짙어 간다. 같은 캐나다 하늘 아래인데 한쪽은 눈이 오고 다른 한쪽은 여름을 향해 간다. 부활절 연휴라서 학교도 직장도 문을 닫는다. 딸과 사위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바닷가로 가자고 앞장을 선다. 날씨는 화창해도 바람은 차다. 바닷가로 간다기에 두툼하게 입고 따라가 보니 역시 바람이 차다. 파도가 치고 저 멀리 수평선에 배 한 척이 떠있다. 오리들은 헤엄을 치며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잡아먹느라 바쁘다. 그 속에 먹을 것이 많은가 보다. 금방 누가 까먹은듯한 게껍질이 바위 위에 뒹굴어 다닌다. 아마도 해달의 짓이 분명하다. 조개와 게 그리고 파래와 다시마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바다 생선이 많다.
모래사장은 없고 바윗 돌이 많은데 자칫 잘못하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다. 어디서부터 떠내려온 나무들인지 바윗돌 위에 누워서 꼼짝하지 않는다. 아마도 오랫동안 그곳에 머무를 것 같다. 작고 길고 짧은 나무들은 비바람과 태풍에 시달리고 단련되어서 무척 단단하다. 바닷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날아갈 듯 하지만 언제 다시 올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멀리 보이는 곳까지 걸어갔다가 가까운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바닷가 가까이에 사는 집들이 엄청 크고 멋있게 지어졌다. 여러 가지 종류의 꽃나무들과 크고 작은 나무로 장식을 한 정원은 지상천국이나 다름없다. 숲 속의 정원은 사슴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전깃줄을 담 위로 걸어놓은 것이 보인다.
높은 곳도 쉽게 넘나드는 사슴들의 행패로 여러 가지 작물과 꽃들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숲이란 산짐승들이 사는 곳인데 돈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짓고 그들의 영역을 차지하며 생겨나는 불협화음이다. 도시인들은 자연을 찾아 개발하고 새로운 건물을 지으며 자연 속으로 들어온다. 산짐승들은 그들의 삶터를 잃고 도시로 나온다. 숲 속으로 들어가니 바람이 전혀 없고 오히려 덥다. 모자를 벗고 한참을 걷는다. 하늘로 솟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서있고 수많은 들풀들이 땅을 덮어 흙이 보이지 않는다. 딱따구리가 벌레를 잡아먹느라 뚫어놓은 구멍이 많은 나무가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 참새 같은 작은 새들이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인사를 하고 살찐 다람쥐가 나무를 옮겨 다니며 운동을 한다.
꽃도 나무도 다른 색과 모습으로 유혹하며 눈길을 끈다. 늦게 핀 벚꽃이 도도한 자태를 자랑하며 팔을 벌리고 피여 있고 이파리가 빨간 나무는 꽃처럼 피어난다. 눈을 돌릴 때마다 현혹하는 자연에 빠져 한없이 걷는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리고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네 사람들의 소유인 수많은 배들이 어딘가로 떠나는 날을 기다리며 선착장에 묶여 있다. 떠나기 위해 살고 돌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바람은 자고 햇살은 눈부시다. 이곳에 온지도 어느새 8일째다. 거리가 조금씩 눈에 익고 이곳의 기후도 적응되어 간다. 지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며 좋은 하루를 기원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이곳에 와서도 사는 데는 문제없을 것이다.
(사진:이종숙)
내가 사는 에드먼턴은 건조하여 아무리 추워도 두꺼운 잠바 하나 입고 걸으면 추위를 모른다. 바다가 가까운 이곳은 의외로 바람이 차다. 그래도 봄이라고 사람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다니는데 우리는 너무 추워 여전히 겉옷을 벗지 못하고 다닌다. 바람은 찬데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 습하기 때문에 모든 식물이 잘 자라는 것 같다. 아무 때나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비를 말린다. 햇살이 강하게 내려쬐지 않아 피부를 태우지 않고 온도가 사람들 살기에 알맞아서 이곳에 와본 사람들은 다시 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올 때마다 이사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데 막상 살아보면 불편한 것도 생길 것이다. 나이 들어 새삼스레 오랜 세월 동안 살던 곳을 떠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요즘 안 그래도 친구 하나가 밴쿠버로 이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대단한 결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가고 오고를 멈추고 정리를 해야 할 나이에 이삿짐을 싸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지친 목소리로 전화를 하였다. 좋은 곳이 있으면 며칠 여행을 하면 되는데 거의 반세기 넘게 살아온 이곳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이사를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아무리 자주 만나지 않고 살지만 오랜 세월 함께한 사람은 말을 안 해도 마음이 통하는 법인데 아름다운 곳이라고 낯선 땅에 이사를 간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다.
40년 전, 앨버타에 대공황이 와서 경기가 하락하여 살벌할 때 많은 사람들이 토론토나 밴쿠버로 이사를 갔다. 집이나 살림을 다 놓아두고 직업을 찾아 모르는 곳으로 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은 우리로서는 무모한 모험이었기 때문에 떠나지 않고 살았다. 여전히 지금도 그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데 그곳에 처음 가서 고생한 이야기는 처절하다. 해가 뜨기 전에 칠흑 같은 새벽에 지렁이를 잡아야 했고 영어도 안되고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몸으로 때우는 노동이었다.
그때 다른 곳으로 간 사람이나 앨버타에 남은 사람이나 이제는 모두 70이 넘은 나이다. 다른 곳으로 가기보다 살고 있는 곳에서 마무리할 일만 남았다.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 하고 타향이다. 이민 온 뒤로 제2의 고향이 되어 살아온 곳은 이제 고향이 되었다. 겨울이 길고 춥다지만 봄 여름 가을은 세계 어느 곳 보다 아름답고 살기 좋다. 어디를 가도 장단점이 있고 좋은 곳을 찾아 여행하며 살면 된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지난날들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많은 세월이 오고 갔다. 가는 세월을 잘 보내고 오는 세월을 반갑게 맞으며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의 여정이라 믿는다. 잘 살아왔다. 수고했다. 앞으로도 잘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