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길도, 돌아오는 길도 다 행복하다

by Chong Sook Lee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집을 떠나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참 행복이다. 꽃이 만발하고 초록색의 숲이 우거지고 새들이 노래하는 별천지같은 빅토리아에서 계속 산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랜만에 찾아가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 떠나오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보란 듯이 피고 지고 하늘로 치솟은 나무들이 세상을 내려다본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산을 바라보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곳을 떠나와 집으로 와보니 역시 집이 최고다라는 생각이 든다. 딸이 사는 곳이 아무리 좋고 편하고 아름다워도 내가 사는 집으로 돌아오니 정말 좋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보면 내가 사는 집이 소중한 것을 안다는 말을 하나보다.


아직 이곳은 누런 잔디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보여 삭막한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기저기 파릇파릇한 새싹을 키우는 태양의 열은 봄을 만든다. 떠나 있는 동안 이곳에 온 눈 소식을 매일 들어서 얼은 땅을 헤치고 나오는 튤립이 얼어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새파랗게 자라서 자리를 지키며 꽃봉오리를 만들고 있다. 아무리 춥고 눈이 와도 봄이라는 계절은 생명을 낳는다. 화단가에 자라는 부추도 한 뼘 이상 자라 있고 이름도 모르는 화초들이 손톱만큼 자라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봄이 왔다. 어찌 보면 바다가 있어 바람 부는 빅토리아 보다는 건조한 이곳이 더 따사로운데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눈을 감으면 꽃들이 보이고 산과 바다가 보이고 딸의 모습이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한동안 이렇게 지내다가 이곳에 꽃이 필 즈음에는 잊힐 것이다.


한국에 다녀오면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이 생각나듯이 몸은 이곳으로 왔지만 마음은 아직도 빅토리아에서 딸과 생활하는 것 같다. 아침 햇살이 맑고 곱다. 참새들이 우리를 환영한다 고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화초들은 봄을 맞고 자라고 새들은 집을 지키며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삶이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변화를 찾아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집으로 가는 길은 늘 즐겁다. 동물들도 세상을 돌아다니며 떠돌며 사는 것 같아도 날이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인간이나 짐승 모두 방황하다가 마지막에는 집을 향하는 귀소본능이 있다. 떠나기 위해 기다리다가 떠나고 돌아오기 위해 살고 기다림과 그리움의 반복 속에 삶은 이어진다. 오랜만에 떠나보니 여행의 필요성도 알게 되고 돌아오며 내가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도 실감한다.


떠나도 돌아올 곳이 없다면 참으로 무섭고 두려울 것이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한 번 떠나면 돌아올 수 없기에 죽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란다.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가면 안과 밖이 연결되어 떠날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며 인사하고 손을 흔들고 들어간다. 줄을 서서 차례가 되면 소지품을 널찍한 플라스틱 통에 다 꺼내어놓고 신분 확인을 하고 차례를 기다린다. 시계도 풀고 벨트도 빼고 신발도 벗으라면 벗어서 검사기를 통해 문제가 없으면 통과시킨다. 그런저런 일을 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손으로 잘 가라고 손짓을 한 뒤에 검사대를 떠나면 기다리는 사람은 집으로 가고 떠나는 사람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걸어가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산다. 모든 만남과 이별은 다음을 기약하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여행을 하고 산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 식구들과 이별을 하고 밖에 나가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산다. 그런 하루가 모여 십 년이고 백 년이고 살다가 삶의 여행이 끝날 때 우리는 죽음의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가야 한다. 가는 목적지를 모르지만 때가 되면 누구나 가는 길이기에 거부할 수 없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고 슬퍼도 혼자만의 길이다. 우리가 모르는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다시 온 곳으로 가는 것이다. 태어나 너무나 크고 밝은 세상에 겁이 나서 주먹을 쥐고 크게 울며 세상을 살아가고 '살아보니 좋더라' 하며 손을 펴고 편안히 눈을 감고 떠나는 것이다. 사노라면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더라도 참아가며 사는 이유는 잘 가기 위함이다.


힘든 것 생각하면 일분일초도 견디기 어렵지만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으며 살아간다. 떠나면 특별한 것이 기다릴 줄 알지만 여행 또한 삶이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한다. 집 떠난 사람은 모든 것이 부족하여도 집으로 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여행을 하고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집은 나를 기다리고, 나를 환영하고, 나를 감싸주며 나를 편하게 한다. 집이 있기에 떠나고 싶고, 집이 있기에 돌아오고 싶고, 집으로 돌아왔기에 행복하다. 인간은 어느 날 이 세상 여행을 끝내고 떠나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여행을 하며 산다. 집을 떠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갈 곳이 있는 사람의 행복을 만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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