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불안을 이기는 방법

두려워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

by 추성은

그리스도인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열심'으로 살고 있고, 그것이 참 믿음인 줄 안다. 사회 정치적으로 종교 스캔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기 열심, 자기 믿음은 겉으로 보기엔 신실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라는 조직 내에서 봉사 또는 어떤 일을 맡게 됨에 따라 일종의 보람, 사명감을 찾게 된 것만 같다. 그래서 열심히 살게 되고, 내가 살아있게 해주는 것 같아서 처음엔 너무도 기쁘다.

하지만 이런 자기중심적 신앙생활은 결국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점점 악해지고, 이때부터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내가 짓는 모든 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죄가 인간의 본성과 외로움이 만난 결과이다. 즉 인간은 외로울 때 죄를 짓는다.


인간은 같이 있어도 혼자다

혼자 외롭게 사는 사람만 죄를 범하지 않는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큰 범죄들의 대부분은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지른다. 범죄자들 대부분은 자녀, 부모, 가족이 있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데 죄를 짓는다.

성경에서 보면 이런 인간의 본성이 잘 드러난다. 부족할 것 없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함께 있던 하와도 순간적으로 혼자가 되었을 때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 순간 혼자된 가인 역시 동생을 죽였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가족과 동료가 있다 하더라고, 인간은 결국 혼자 남겨지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혼자 있을 때 하는 생각과 행동, 그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는 정작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산다. 자녀에게는 잔소리로 들릴까 봐, 부모님께는 걱정 끼칠까 봐, 배우자에게는 미안해할까 봐 말을 삼키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이는 순간, 우리는 홀로 남겨지는 것이다.

자녀들 바쁜 일상에 방해될까 봐, 귀찮게 할까 봐 전화조차 못 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바로 그 외로움이다. 자녀들 역시 부모님께 할 말을 못 하고, 부모는 또 자녀들에게 할 말을 못 하니 서로가 외롭다.

결국 인간의 본성에는 이러한 외로움이 기본값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약속이 두려움을 덮는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두려움으로 흘러가게 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가장 많이 하셨다. 하지만 이 말씀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는 여전히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이때 흔히 듣는 말이 "끙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이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성격을 고친다고, 바꾼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그건 신이다. 하나님만 두려움이 없다. 인간이라면 외롭고, 두렵고, 연약한 게 너무나 당연하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이사야 41:10)고 하신 것은 두려운 그 자리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두려움을 덮어주신다는 의미다. 외로움, 두려움은 성격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주신 말씀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이 느끼는 외로움, 두려움, 그 고립감은 결코 자책할 일이 아니다. 무섭고 떨리는 순간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한 발, 한 발, 여러분을 내딛게 할 것이다.

두려움 없는 것이 좋은 신앙이 아니다. 아픔은 극복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이루실 기대와 소망을 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했으면 좋겠다.

주님 품에 안기려, 달리기를 멈추지 말기를,

주중에 일하다 힘들면 주일날만 기다리며, 예배드릴 날만 생각하며 버티기를,

우리에겐 일주일 중 가장 기쁜 날이 주일이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외로움은 결국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못한 채, 두려움에서 자신을 지키려 애쓰며 나만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넘치고도 남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지금보다 더 뜨겁게 사랑하자고 전하고 싶다.


우리가 행한 일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 옆에 동일하게 달렸던 강도. 두 사람 모두 죽음 앞에 외로움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죽음을 기다렸던 예수님께 예상치 못하게 강도가 말을 걸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이 강도는 용기가 나서 예수를 찾은 게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하여 예수를 불렀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눅 23:41) 자신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경험했다. 그리고 예수 앞에 회개함으로 자신의 구원을 요청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눅 23:42)

예수님은 마지막 숨이 다 할 때까지도 자신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셨다. 대신 당신을 찾은 이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셨다.


자기 구원이 아닌 자기를 찾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고통을 잠시라도 견뎌내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하시리라"(눅 23:43)


주님은 때로 두려움으로 나를 깨우시고, 약속을 기억하게 하셔서 당신께 나오게 만드시는,

때론 눈물로, 때론 한숨을 주시고 자신을 부르짖게 만드시는,

외롭고 두려운 순간에도 "주님은 의롭습니다!"라는 고백이 피어나게 하신다. 그렇게 두려움은 감사와 찬양으로 변화되고, 은혜가 나를 다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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