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설교하기 (아가 1:1-4)
아가서는 ‘우아할 아’(雅)에 ‘노래 가’(歌) 영어 성경에서는 Song of Songs, 품격 있는 노래, 가장 뛰어난 노래, 아가'서'(書)로 끝나니까 아름답고 고결한 노래를 모아 놓은 책을 뜻합니다. 그 노래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왕과 시골의 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거든요. 아가서 하면 주로 솔로몬의 ‘연애 시’로 알고 있습니다. 막상 읽어보면 술람미 여인의 목소리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합니다. 그럼 둘이 연애하는 이야기가 왜 정경에 들어가야 했었는가? 왜 이 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하는가?
그래서 아가서를 읽더라도 반드시 개요를 알고 읽어야 합니다. 아가서의 구조와 목적을 알고 익는 순간, ‘아, 그래서 이 책이 성경이구나!’하는 은혜가 되기 시작됩니다.
러브스토리가 왜 성경에?
아가서를 정경에 넣은 이유는요, 영혼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영혼? 솔로몬. 솔로몬이 어떻게 성장하지요? 사람이 성장하려면 연애를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안 하면 안 돼요. 반드시 해야 됩니다. 좋아하는 감정을 나누면서 울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울려보기도 하고, 사랑을 주기도 하고, 구하기도 하고, 상대의 가치관이 어떤지, 그 가치관이 미래를 함께 할 수 있을지를 봐야 하지요. 사귀면서 일어나는 행복, 갈등, 기쁨, 상처, 그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인간에 대해 깊이 깨달으면서 배우자 상도 뚜렷해집니다. 즉 사랑은 인생의 모든 영역을 성숙하게 만드는 스승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중에 모든 것이라고 아가서는 노래합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만나면서, 여인이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찾게 되거든요. 하나님이 솔로몬을 깨우기 위해 보내신 영적인 교사가 술람미 여인이었던 겁니다. 70절은 여자의 목소리, 40절은 솔로몬, 나머지 7절은 둘이 합창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시선을 통해서 자신의 아름다운 가장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아가서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그래서 청년 때 전도서, 룻기, 아가서는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열정과 열심을 다해 살아도 채워지지 않고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는 그 허무함, 그 공허함, 그 외로움, 두려움을 느끼며 내뱉는 그 한숨에서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을 찾게 되지요. 나의 그 한숨이 나를 만들 때 불어넣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생기였습니다. 이게 전도서였고요. 룻과 보아스가 만나고 결혼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연애 감정이 느껴지는 게 아니었지요. 물론 배우자 상도 보이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삶에는 어떤 축복이 있는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이것이 룻기였습니다.
아가서 설교를 주저하는 이유
아가서는 강단에서 많이 소외됩니다. 설교자들이 본문으로 선택하기를 주저합니다. 해석도 어렵고 룻기의 타작마당 사건에 비하면 이건 대놓고 민망한, 소위 야한, 직설적인 구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가서를 할까 말까 지금이라도 바꿀까? 이걸 어젯밤까지 고민했어요. 그러나 아가서가 소외되면 모든 남녀 간의 사랑이 소외됩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채 결혼하고, 부부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마음을 닫은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와 예수님, 나와 교회가 이렇게 아름답고 뜨겁게 사랑하는 관계이다”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남녀의 농밀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과 교회를 그만큼 깊이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렸지요? 학부 야간 수업 마치고 그 밤에 주님 너무 만나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오늘도 보여주실 그 사닥다리를 기대하면서 한밤중 기도하러 교회로 달려갔었잖아요. 그 기분이 마치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 설렘과도 같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문 들어갑니다. 2절부터 찐하게 시작합니다.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누가 말한 걸까요?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말한 겁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는 많습니다. 주님을 노래하며, 주님 보기를, 말씀 듣기를, 예수 닮기를 갈망하며, 주님께 입술을 내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만 뜨겁게 사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말 자주 합니다. 바로 ‘뜨겁게’가 입맞춤입니다.
여자가 먼저 사랑 고백을 한다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가 먼저 반응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 품에 안기려 달리기를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의 면류관을 위해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말씀 앞에서, 기도 가운데, 주님께 입술을 내미는 사랑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내뱉는 나의 한숨이 창조주가 나를 지으실 때 불어주신 생기잖아요. 기도할 때, 찬양할 때, 여러분이 리더로서 말씀을 전할 때, 제가 설교할 때,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나오는 모든 호흡이 그분과의 친밀한 교감입니다. 그 숨결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 고백이 뜨거운 입맞춤처럼 주님을 향한 갈망이 다시 타오르기를 축복합니다.
읽을 동안 술람미 여인이 되어야 한다
아가서를 읽을 때 여러분은 철저히 술람미 여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인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그리움은 나의 신앙이고, 그녀의 포옹은 은혜의 경험입니다. 예수님 사랑이 여러분 살려주신 적도 많고, 못해도 안아주신 적 얼마나 많아요. 지금도 붙잡아 주고 계시잖아요. 그 신랑을 통해 사랑받는 존재에서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된 겁니다. 예수께서 먼저 나를 찾아오셨고, 이제는 내가 주를 찾는 자가 된 겁니다. 입술을 여는 자로 변화된 겁니다. 아멘. “나를 입 맞추소서. 당신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좋습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밖에 없지요.
3절,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솔로몬 정도 된 왕을 누가 싫어하겠어요. 일단 외모부터 빼어났을 겁니다. 사무엘상에서 아버지 다윗의 용모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삼상 16:12) 솔로몬이 다윗과 누구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밧세바잖아요. 예뻤겠어요 안 예뻤겠어요? 다윗이 괜히 흔들렸겠어요? 그러면 솔로몬은 진짜 잘생겼단 말이에요. 말도 잘하고 글도 너무 잘 쓰고, 성전도 잘 건축하고, 다 잘해. 그러니까 여자들도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왕자는 이래야 된다”라는 걸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질투를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인정했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그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훌륭한 왕,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그에게 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영국에 다이에나 왕세자비 우리가 다 좋아했잖아요. 술람미 여인은 사랑을 ‘소유’로 여기지 않고, 사랑받는 이의 가치를 ‘인정’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예수의 이름, 교회를 향한 마음도 그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이 하신 구원사역에 감격하여 인류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에 내가 독점할 수도 없고, 무한한 사랑이기에 치열한 경쟁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침노해서 빼앗을 자리가 아니라, 이미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열려 있는 곳입니다. 아멘.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떠올렸을 때, 나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까? 너무 부끄러워지고 이런 식으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확 드는 거예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 교회를 살리는 일이라면 뭐라도 하고,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3절,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이름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 세상에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향기, 즉 은혜의 말이 나오고, 복음을 전하고, 겸손의 열매가 드러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는 사랑이 이뤄지는 은밀한 곳에서
4절,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왕의 궁에는 많은 여인들이 있지만, 그의 방으로 초대받는 이는 단 한 사람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고, 그분이 나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사랑받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 그것이 ‘그의 방’입니다. 그 방은 숨는 곳이 아닙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구경하는 신앙을 원치 않으십니다. 입맞춤처럼 그렇게 가까이에서 나의 호흡을 느끼고 싶어 하십니다.
성막의 넓은 뜰을 지나, 번제단에서 속죄물을 드리고, 물두멍에서 손을 씻은 후, 마침내 성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소 더 깊숙한 곳에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할 때,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깊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속삭이는 기도조차 들릴 수밖에 없는, 하나님과 단둘이 마주하는 그 방에서, 영혼이 다시 숨을 쉬게 됩니다.
4절,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여인들의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축하하며 부르는 합창입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 마음은 자연스레 감동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의 말과 행동, 겸손과 은혜가 향기로 퍼져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혼자만의 기쁨이 아닙니다. 보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는 향기로운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의 인생은 포도주보다 달콤합니다. 여러분의 기도, 찬양, 말, 행동, 숨결까지 모두 주님과의 사랑을 나타내는 향기로운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가서 말씀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을 향한 마음이 술람미 여인의 마음처럼 진실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피어나게 하시고, 주님께 향기로운 사랑의 고백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독점하거나 경쟁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과 나누는 기쁨과 겸손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주님의 방으로 초대하시고, 단둘이 마주하는 깊은 기도의 자리에서 영혼이 숨 쉬게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숨결이 주님을 사랑하는 교감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 입술을 내밀며, 하나님만 뜨겁게 사랑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향기로운 입맞춤으로 친밀함을 나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