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라는 말은 그리 좋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중요한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지만, 그 안에 감춰진 진실을 꺼내 마주해야 할 때면 견디기 힘들 트라우마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블랙박스를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살다가, 뒤늦게 그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없었던 상처가 생겨나고 이후의 인생은 어쩌면 평생토록 매우 혼란스럽게 살아야 한다.
입양아는 결국 친부모를 찾아 떠나갑니다.
얼마 전, 여러 자녀를 입양해 키우고 계신 지인을 만났다.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입양아는 결국 자기 친부모를 찾아 떠납니다."
자기를 왜 그렇게 했는지 어릴 적 '블랙박스'를 찾아서 열어보고 싶다는 거다. 그것을 찾아 열지 않고서는 자기 존재가 극복이 안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입양한 자녀를 성인이 될 때까지 잘 돌봐주셨으나 두 아들은 실제로 집을 떠났다고 했다.
친부모를 찾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더 큰 상처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평생을 믿고 의지했던 보호자가 양부모였다는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의 충격,
'나는 버림받은 아이였구나'라는 가슴 아픈 진실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양부모의 헌신과 사랑에 깊은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이제는 서로가 '남처럼' 느껴지는 어색한 관계가 자신을 괴롭혀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그들은 자신의 뿌리, 그 블랙박스 속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온전한 자아를 찾을 수 없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성경 속 모세도 마찬가지였다. 갈대상자에 실려 나일 강에 떠내려가던 아기 모세는 이집트 공주에게 발견되어 왕궁에서 자라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그는 이후 깊은 혼란에 빠졌다.
그의 내면의 방황은 결국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고, 왕자에서 도망자 신분이 된 그는 광야로 숨어 들어갔다.
신을 찾는 원초적 갈망이 인간에게 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친부모보다 더 깊이 자신을 규정하는 분, 곧 신앙으로 믿는 하나님을 찾는 갈망이 있다.
'내가 왜 아픈지'
'내가 왜 힘든 지'
'어쩌자고 여기까지 떠밀려 왔는지'
'그러면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니까...'
여기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기에 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다.
버려졌다는 기억보다 붙들어온 손길이 더 크게 남을 수는 없을까?
내가 그 입장을 헤아리지 못해서 나오는 질문일까? 나의 교만한 조언일까? 아니면 인간으로서 누구나 극복해야 할 과제일까?
분명한 것은, 블랙박스 속 어둠이 나를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새롭게 빛나는 존재로, 고귀한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