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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밸류닥터 구자룡 Dec 31. 2020

<사람향기 그리운 날엔> 국수를 먹자

[북리뷰]

<사람향기 그리운 날엔(증보판)<, 오태진, 나남, 2014.



<훔치고 싶은 한 문장>


"국수는 저마다 무의식적 자아와 연결돼 있는 음식이다."



 <리뷰>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글의 내용에 공감이 되어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랬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음식(특히 국수)에 대해 쓴 글들에서 눈물이 가려 글을 읽기 어려웠다. 특히 2부에서 시를 매개로 한 글에서 과거로 돌아가게 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볼 수 있게 하는 글들로 긴 여운을 남긴다. 


어릴 적 어머니가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고 콩가루를 뿌려가며 넓게 펴는 묘기를 펼칠 때 묵묵히 지켜봤다. 반으로 접고 또 접고 또 접어 칼로 썰 때 꼭 지켰다. 끄트머리 일부를 잘라 주실 때까지. 그것을 소죽 끊이는 아궁이에 들고 가 구우면 부풀어 오르면서 맛있는 과자가 된다. 어려운 시골 살림에서 구경하기 어려웠던 과자를 그렇게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고향 의성에서 어머님이 해주시던 국수는 이름하여 '건진국수'라고 한다는 것을 서울에 와서 알았다. 그 건진국수는 먹기 쉽도록 그냥 물에 넣었다가 건진 것이다. 그냥 물에 삶아서 건졌기 때문에 영양가가 있다. 잔치국수에는 멸치로 육수를 내니 그나마 영양가가 있겠지만 건진국수에는 밀가루만 있다. 배고픔과 간장 맛으로 먹었다. 아내가 이것을 이해하는데 10년은 걸린 것 같다. 그런데 그 국수 맛이 그립다. 구순이 다 되어 가는 어머님이 어느 순간 힘에 부쳐 홍두깨를 사용하지 못하면서 어머니표 국수는 사라졌다. 다만 의성의 하나로마트에는 포장되어 있는 칼국수를 판다. 전국에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의성에서만 아는 사람만 사는 그런 제품을 사서 간혹 끊여 먹곤 한다. 국수는 어머니의 손맛을 누리는 것이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원래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부분은 1부 길 위에서의 여행 칼럼이었다. 백두대간 관련 포토에세이 집필을 준비하면서 글을 쓰는 준비운동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오래전에 구입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다시 처음부터 읽었는데 1부의 내용에서 다양한 여행의 소재와 글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2부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글들이었다. 목적에 없던 2부에서 한 방 먹었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데... 


저자는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자신의 코너가 있고 여행의 경험을 수필로 정리하는데 탁월한 역량이 있는 분이다. 이 책은 연재된 칼럼을 책으로 역은 것이다. 칼럼과 에세이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써 볼 요량으로 공부하는 마음으로 구입했었던 책이다. 이번에 마음먹고 잡은 책인데 왜 이제야 완독 하게 되었는지 후회막급이다. 물론 전에 읽었다면 이번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은 50대 이후 세대가 읽으면 공감백배, 감정몰입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MZ세대가 읽으면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세월의 무게가 담겨있다. 짧은 글이라 해도 가볍게 읽을 내용은 아니다. 그렇다고 향수에 젖을 필요도 없다. 그냥 담백하게 느끼면 그만일 것이다.


이 책의 소재와 글은 지금부터 대략 7-8년 전, 그리고 일부는 13년 전의 내용이다. 글을 쓴 날자가 있기 때문에 그 날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는 재미도 있다. 10여 년 전을 기준으로 강산이 한번 바뀌는 시점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본다. 소개된 여행지의 여러 곳을 나도 가봤다. 내가 느꼈던 부분과 어떻게 다른지, 그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글을 쓰면 좋을지 공부가 된다. 


이 책을 통해 느낀 점은 우선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무며 꽃이며, 또는 지명이나 현판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현장에 있는 느낌이 든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듯 여행기는 디테일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글쓴이의 삶의 숨결이 들어있다는 것을 느꼈다. 에세이이기에 글쓴이의 숨결을 느끼려고 책을 읽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나는 강사라는 직업상 자꾸 훈계형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습관이 있다. 이 습관을 버려야 한다. 내 느낌을 적어야 한다. 힘을 빼야 한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이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p.7. 에세이가 글쓴이의 삶의 숨결이라면 사진 역시 그러리라 생각했다.


p.287. 공자는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랴"라고 했다.


p.316. 국수는 위안의 음식이자 소통의 음식, 교감의 음식이다.


p.320. 국수를 먹는 것은 고향에 가는 것, 옛 고향집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누리는 것이다.


p.322. 국수는 저마다 무의식적 자아와 연결돼 있는 음식이다. 국수 국물의 멸치 향은 어린 시절 고향 냄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 허기질 때 문득문득 국수가 생각난다.


p.394. 도시를 벗어나려고 산에 오르면서도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챙겼는지 확인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떨어져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랑이 더욱 애틋하고 절절한 법이다. 단절이 있어야 소통이 아름답다.


p.422. 중년들은 시고 아리고 매운 삶을 짊어지고 가느라 몸과 마음이 온통 생채기 투성이다. 고단한 불모의 시대에 감정은 무뎌가고 욕망은 말라 간다. 모든 게 심드렁하고 시큰둥하다.


p.443. 음식은 어머니이고 고향이다. 모성이고 향수다.


p.490. 우연인 것 같아도 필연이고 운명인 것이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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