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 도덕산]
서울과 인접한 광명 하안동.
이곳에 들어온 지 30년이 되었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엄청난 눈이 내린 적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내 도로에 쌓이는 눈을 치우고 또 치웠던 기억이 난다.
돌아서면 또 쌓이고 치워도 치워도 끝나지 않았던 추억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당시의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출근하고 없다.
창 밖으로 보이는 도덕산은 설산으로 변해 있었다.
마침 오전에 다른 일이 없어서 눈꽃을 구경하기로 했다.
카메라를 들고 등산화에 아이젠에 스패츠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나섰다.
실은 며칠 전에 봄을 맞으려 산책했던 바로 그 산이다.
봄인 줄 알고 있었는데 다시 겨울이 되었다.
그리고 눈 구경이 흔하지 않은 도심인지라 마냥 신기하여 발걸음이 바빠졌다.
동네 산책길에 설경을 촬영하기 좋은 곳을 알고 있기에 더욱 급해졌다.
지난번 산책길 코스에서 반대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핫스폿이 있는 곳이 가깝기 때문이다.
전에는 혼자만 알고 있었는데 바로 가림터널 옆의 메타세콰어길이다.
이제는 반듯하게 이정표까지 생겼다.
새롭게 등장한 출렁다리도 있다. 워낙 내세울 것이 없어서 설치한 것일까.
구경거리 하나 더 생긴 정도의 가치가 있는 곳이다.
좀 색다른 느낌은 난다.
보통 산책할 때는 그냥 지나치는 곳이다. 딱히 출렁다리를 건너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좀 유명해졌는지 이 다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도덕산 정상의 도덕정이 있다.
봄에 철쭉이 피면 전체가 꽃동산이 된다.
그보다는 여기에서 멀리 관악산이 조망된다.
남현동에서 연주대로 이어지는 사당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 서울대 쪽 및 금천구의 여러 아파트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숨겨둔 비경이 하나 있다. 능선길의 쉼터인 오두막이다.
지난주 봄을 미리 맞으려고 왔을 때도 기대에 부응해 줬다.
운무가 낀 날이 가장 아름다웠다.
설경은 어떨지 기대가 컸다.
비경은 사라지고 너무 밋밋하여 셔터 누르기 아까울 정도라 아쉬움이 가득했다.
다 때가 있다는 말이 맞는 말인 듯하다.
대신 하산길에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을 만났다.
능선길에 좀 큰 참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주위를 휘몰아치는 바람으로 둥그런 원이 그려졌다.
눈과 바람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언제가부터 이런 자연의 힘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열악한 환경, 즉 도저히 생명이 살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끈질진 생명력을 발휘한 나무나 식물을 보면 감동이 절로 밀려온다.
오늘은 비록 생명은 없지만 자연과 시간이 만든 작품 앞에서 그런 경외감을 느꼈다.
마지막 한 컷은 멀리 개와 산책하는 어느 주민이 차지했다.
피사체가 없으면 아무런 느낌이 없는 공간이지만
개와 사람의 움직임이 하얀 눈밭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잠깐의 생각으로 바로 한 컷. 더 이상은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이것을 살린 것만으로도 즐거운 도덕살산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