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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보 구자룡 May 06. 2024

우복동, 용유동, 동천석, 시비공원, 그리고 원적사

속리산둘레길

우복동(牛腹洞)은 정감록에 나오는 조선십승지의 하나이다. 소의 배속처럼 사람이 살기 편안하다고 하여 복지로 알려져 있다. 청화산인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청화산은 내선유동과 외선유동을 위에 두고, 앞에는 용유동을 가까이 두고 있는데, 수석의 기이함은 속리산보다 훌륭하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 같은 험한 곳은 없다. 흙으로 된 봉우리에 둘린 돌은 모두 밝고 깨끗하여 살기가 적다.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을 가린 곳이 없으니 거의 복지(福地)다."라고 되어 있다. 


청화산 남쪽이 우복동이고 그 밑에 병천이 있고 광정마을이 있고 병천의 남쪽에 도장산이 있다. 그 사이 협곡이 쌍용계곡이고 이 물이 흘러 영강이 되고 낙동강이 된다. 영강의 발원지는 청화산 원적골 혹은 속리산 장암리(화북면)가 될 수 있는데 어딘지는 명확하지 않다. 청화산에는 원적사가 있고 남쪽 도장산에는 심원사가 있다. 모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골짜기에 절을 지었을까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다. 


여하튼 이런 곳이 어디에 있냐면 바로 속리산 국립공원을 끼고 있다. 그 중심에는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가 있다. 상주시 화북면과 문경시 농암면이 원적골 시냇물과 농암천(영강)을 기준으로 나누어져 있어 어디가 상주인지 어디가 문경인지 헷갈리는 곳이다. 이곳에 터를 잡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는데 더욱 특이한 것은 양 면의 주민들 간에 보이지 않는 선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자연은 하나인데 행정이 둘로 나누어지면서 사뭇 다른 정서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 외지인 혹은 관계인구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봄날 가볍게 근처를 산책하고자 2023년 11월 '국가숲길'로 지정된 속리산둘레길의 상주길 13구간의 일부 구간을 걸었다. 출발지는 동천석. 동천석은 용유구곡의 출발지로 조선 명필 봉래 양사언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속리산둘레길로 지정되기 전부터 용유구곡길로 알려져 있던 길이다. 일부 구간은 겹친다. 이번에는 가벼운 산책이라 동천석에서 출발하여 시비공원을 지나 화북면 보건소까지 걸었다. 대략 2km 구간이다.



초서체로 동천이라 새긴 동천석(봉래 양사언)

  



최근 국가숲길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정비한 둘레길이다. 잘 정비되어 있고 일부 구간은 데크로드가 있다. 이 정도의 산책길이라면 참 잘 만든 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숲 내음과 철쭉꽃 향기를 만끽했다. 영강의 발원지로부터 서서히 물길이 된 용유계곡 그리고 멀리 속리산 자락까지 탁 트인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마침 도로옆 영산홍이 붉게 피어 더욱 화사하게 느껴졌다. 


철쭉
각시붓꽃




호젓한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비공원이 시작된다. '시비공원'이 뭔지 이번에야 알았다. 옆에 난 지방도를 따라 5년째 지나다니고 있지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밭 한가운데 큰 비석이 있어서 참 할 일 없는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비석과는 관계없이 속리산 시비공원은 지역의 여러 단체가 조성한 것으로 애국시, 탈속시, 유람시 등 요산요수하는 강호제현들의 흥취를 돋우는 공간으로 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공원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뒤에 숨어 있어서 찾는 이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시비공원을 지나면서 길을 잃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둘레길은 온 데 간데없고 갑자기 길이 막혔다. 아무런 안내표지판이 없다. 시비공원이 끝나는 지점과 솔향기펜션이 이어지면서 길이 끊겼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어서 도로로 나왔고 마침 도로는 아스콘 공사를 하고 있어서 열기 나는 아스콘을 발고 도로를 가로지르고 다시 가로지르고 동네 어귀로 들어섰다. 지방도로 여서 그런지 인도가 없다. 짐작건대 시비공원에서 상주문장대야영장으로 이어지는 곳이 사유지여서 둘레길로 정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제주 올레길도 사유지를 경유하는 길들이 있는데 여기도 좀 더 소통을 통해 도로가 아닌 산을 따라 옆으로 길을 냈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 같다. 짧으면 100미터, 길어야 500미터 이내 같은데...

이렇게 후기를 올린 이후 다시 자동차로 여기를 지나가면서 유심히 보았는데 시비공원에서 속리산자연펜션으로 나 있는 용유계곡 옆 좁은 도로를 따라 용유교까지 둘레길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산책을 할 당시에는 도로포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복잡하고 위험한 상황이었고 그래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선입견이기는 하지만 이 지역을 대충 알고 있는 사람으로 솔향기펜션 뒷쪽으로 둘레길이 이어져 있을 것 같았기에 도로 건너편의 포장길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용유 1길로 접어들면 한적한 시골길이다. 잘 가꾼 연수원의 조경수와 길 옆 소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가는 길에 모란꽃이 피었다. 부귀화라고도 한다. 그리고 들판에는 양배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용유교에서 다시 둘레길을 만나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  


모란(목단)




가볍게 산책하는 즐거움을 주었지만 끊어진 둘레길을 지방도로를 가로질러 다녀야 하는 불편이 따른 코스다. 겨우 2km 구간인데 이려면 속리산둘레길이 208km라고 하는데 조금은 걱정이 된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둘레길이 용유계곡으로 틀어 이어져있다. 둘레길 안내 표지석이 갈림길마다 세워져 있기는 했지만 시비공원은 생각보다 넓은 면적이라 어느 위치에서 길을 찾는가에 따라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리산과 청화산, 우복동과 용유동, 그 속에 삶의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이곳에서 잠시 머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트랭글앱을 동천석이 조금 지난 지점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2km가 되지 않음


그리고 속리산둘레길도 좋겠지만 이곳에는 우복동천이란 말이 있다. 속리산~청화산~도장산을 연결하는 국내 최장 원점회귀 등산코스(37.8km)다. 이 코스 중 속리산 천왕봉에서 문장대를 거쳐 밤티재까지는 산행을 했었다. 언젠가 나머지 구간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차량으로 청화산 아래 원적골에 있는 원적사를 찾았다. 시비공원에서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에 있다. 동천석을 지나 거꾸로 옛이야기나라숲을 지나 광정마을을 지나 계속 올라가면 나온다. 상당히 가파른 곳에 있다. 대략 4km 거리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만 있다. 포교를 위한 절이 아니라 수행하는 도량이라서 그런지 지방도로에서는 안내표지판조차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조용하다. 덩달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긍냥화가 꽃을 피워도 찾는 이가 없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다. 대웅전 앞에서 멀리 남쪽으로 바라보면 도장산이 보인다. 원효대사도 이곳에 절을 짓고 아마도 도장산으로 가서 심원사를 짓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절 밖에 보기 드문 흰민들레가 활짝 피었다.  


금냥화
흰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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