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길, 대간길의 매력]
[백두대간 16차 트레킹] 속리산 종주(밤티재-문장대-신선대-천왕봉-장각동) 기행문
글/사진. 구자룡(대간길 문화인류학자)
속리산 국립공원은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다. 특히 법주사는 속리산이 있기에 더욱 유명할지도 모른다. 법주사, 문장대, 장각폭포, 선유동계곡 등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장소들을 다녔지만 속리산 주 능선을 종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백두대간 구간 중에서도 암릉 구간이 있어서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데 백두대간을 함께 트레킹하고 있는 동료들 모두 나이가 들어가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위험한 구간을 가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에 속리산 종주를 결심하게 되었다.
위험한 구간이 몇 군데 있긴 했지만 예상보다는 위험하지 않았다. 계획한 밤티재에서 문장대와 천왕봉을 거쳐 장각동으로 안전하게 내려왔다. 비록 예상한 시간보다는 조금 더 소요되었지만 무난한 산행이었다. 가벼운 복장과 장비로 빠르게 통과하는데 의의를 두고 ‘가볍게 멀리’ 가는 트레킹이 되도록 아침 일찍 만나서 해가 넘어가기 전에 하산을 완료하는 계획이었지만 하산에 시간이 많이 걸리먼서 땅거미가 진 이후 장각동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했다.
일정 : 2018년 11월 5일(월요일)
참석 : 구자룡, 박용상, 이경화
트레킹 코스 : 속리산 밤티재 ~4.6km~ 문장대 ~1.1km~ 신선대 ~2.3km~ 천왕봉 ~4.0km~ 장각동
산행거리 : 약 12km(9시간)
속리산 종주(밤티재-장각동) 산행기록(램불러)
백두대간이란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항상 마음이 설렌다. 지난여름 결과적으로 무더위와 태풍 사이를 절묘하게 피해서 다녀온 오대산 구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잠시 잊고 있던 백두대간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비록 차량으로 지나쳤지만 진부령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 이정표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면서 '언젠가는 이곳에 와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DMZ의 일부 구간(고성, 인제)과 백두대간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10월 초 한국관광공사의 도움으로 고성과 인제, 그리고 양구 일대의 DMZ 지역을 답사하면서 백두대간에 대한 염원은 더욱 깊어졌다. 진부령은 현재 기준으로 백두대간의 북진 종점이자 남진의 출발점이다. 사실 진부령에서 북쪽으로 향로봉으로 연결되는데 이 구간은 군사지역으로 일시 개방되었다는 소식도 있지만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아마도 현재는 갈 수 없겠지만 머지않아 저 멀리 백두산까지 걸어서 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남과 북을 잇는 백두대간 전체 구간(약 1,400km)을 종주하는 트레일을 만들어 인류문화유산으로 길이길이 보전하면 좋겠다. 다음에 와야 할 진부령에서 미시령, 그리고 미시령에서 마등령도 기대되는 구간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통일되기 전에 그리고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남쪽 백두대간(약 700km)의 주요 구간들을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든다. 그리고 함께 걷는 동료들 모두 나이가 들어가니 갈수록 나빠질 체력을 고려해서 난이도가 높은 구간을 먼저 산행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피소나 야영을 할 수 없는 구간 중 국립공원인 속리산을 이번에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속리산의 문장대는 가본 적이 있지만 백두대간으로 이어진 종주구간은 모두 처음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 구경을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산천 구경을 하며 즐기는 트레킹 스타일을 추구하기에 주변의 풍경은 매우 중요한 선택 기준 중 하나이다. 특히 백두대간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사진가의 열망도 있었다. 그 백두대간으로 달려간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두대간(금강산), 2018 © 추보 구자룡
인제 대암산 용늪에서 바라본 백두대간(설악산), 2018 © 추보 구자룡
처음 속리산 종주를 계획하면서 밤티재에서 갈령까지 생각을 했다. 약 16킬로미터에 10시간 이상 소요된다는 정보가 많았다. 많은 종주 등산객들이 이 구간을 다녔기에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물과 점심(간편식), 간식, 방한 옷가지만 작은 배낭에 넣고 간다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앞섰다. 고난이도의 구간이라 산행 방식을 이번에는 바꾸기로 했다. 그동안 20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백패킹으로 다녔던 대간길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가볍게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다만 밤티재-문장대 구간은 암릉지대로 약간의 험로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 이화령에서 조령산을 지나 조령 3 관문으로 이어진 암릉구간에서 겪었던 악몽이 스멀스멀 나타나며 그때 성황당 옆에서 혼자 밤을 지새웠던 경화가 걱정이 많았다. 회사일로 체력소모가 많았다고 한다. 조령산에서의 경험은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그 당시 예상하지 못한 암릉지대의 난관 앞에 오후 6시면 도착해야 할 조령 3 관문에 경화 혼자 도착했고 나머지는 그 어느 중간지점에서 밤 10시가 넘어 트레킹을 중단하고 길가에 야영을 했었다. 그 중간지점이 성황당과 불과 몇 백 미터 전이라는 것을 다음날 하산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코스를 지나간 등산객들의 후기에 암릉지대와 밧줄을 타고 올라가고 또 내려가야 하는 구간이 연속된다는 정보를 올려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악몽 같은 암릉지대를 통과했지만 그 과정에서 용상이는 큰 사고를 당할 뻔했고, 경화는 일시적으로 혼자가 되었었다. 바로 그런 암릉지대를 통과해야 하는 코스다. 대간길이기에 이 정도는 꼭 가보고 싶은 코스이기도 했다.
우리의 체력은 우리가 잘 알고 있기에 처음 계획을 세웠던 갈령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피앗재까지 가서 쉰섬 마을(상오 2리)로 내려오거나 피앗재 가기 전 만수동과 장각동 연결 길을 찾으면 장각폭포 방향으로 중간 탈출하는 계획으로 수정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마지막으로 천왕봉에서 하산 코스를 고민해서 최종 결정하기로 하고 하산 후 숙영 예정지인 장각폭포에서 아침 7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함양과 대구에서 올라온 용상과 경화가 미리 도착하여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이어서 서울에서 내려간 나와 조우하면서 후배들이 끓여준 라면으로 허기와 한기를 달랬다. 코스에 대한 고민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여기서 확정을 짓기로 결정했다. 천왕봉에서 바로 장각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확정하고 차량 한 대를 장각동(상오 3리)에 주차하고 밤티재로 향했다. 산천 구경도 하면서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도 도란도란하면서 즐기기에 무난한 계획을 마지막으로 세웠다. 소수 인원으로 자유롭게 다니는 트레킹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령산 암릉구간, 2015 © 추보 구자룡
밤티재에서 문장대로 올라가는 코스 중 문장대 못 미쳐서 대략 2킬로미터 구간이 암릉 지대였다. 대체로 안전한 산행을 위해 밧줄이나 철계단 등 안전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지만 이 구간은 이런 구조물이 많지 않았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통과해야 되는 곳도 있었다.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워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야 겨우 지나가는 곳도 있었다. 칼바위 같은 뾰족한 바위를 건너뛰어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몸의 균형을 잃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곳을 통과하는데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바위를 옆으로 지나가야 하는 곳에서 앞서간 용상이가 등산화를 믿고 발바닥으로 걸어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그럼도 불구하고 내 생각으로는 몸을 낮추어 바위에 붙어가면 될 것 같아 기어서 가려했는데 그게 가능하지가 않았다. 전진도 어렵고 후진도 어렵고 무릎은 아파오고 이런 게 바로 진퇴양난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겨우 용기를 내어 용상이의 도움을 받아 짧은 다리로 옆에 있는 나무 위에 발을 올려놓고 지나올 수 있었다. 이 구간이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걱정을 많이 했던 그리고 출발하면서 자꾸 되돌아 가겠다고 했던 경화는 별로 어려움 없이 잘 지나왔다. 엄살이었나? 암릉구간을 지나오고 보니 조령산 암릉구간과 비교하면 크게 위험하지도 힘든 구간도 아니었다.
속리산 암릉지대를 통과하며, 2018 © 추보 구자룡
암릉지대를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화북지구와 성불사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계곡 깊은 곳은 붉게 물든 단풍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산행을 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지만 미세먼지의 여파로 사진이 좀 흐리기는 하지만 눈으로 조망하는 풍경은 가히 최고다. 화북지구에서 문장대로 올라왔다면 아마도 단풍터널을 지나왔을 것 같다. 몇 해 전 캠핑으로 왔을 때 선후배들과 이 코스로 문장대를 오르면서 느꼈던 찬란한 단풍이 그려진다. 암릉 사이사이에서 조망되는 문장대의 뒷모습도 일품이다. 문장대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진 암릉이 병풍을 두른듯하다. 어찌 보면 정면으로 보이는 문장대는 표지석도 있어서 다들 기념사진을 찍지만 가까이에 있기에 그 웅장함을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산세가 험한 이곳이 문장대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속리산 화북지구 방향(성불사와 오송골 단풍), 2018 © 추보 구자룡
속리산 암릉구간에서 바라본 문장대와 관음봉, 2018 © 추보 구자룡
속리산 문장대에서 바라본 밤티재 방향의 암릉구간, 2018 © 추보 구자룡
속리산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어 구봉산이라 한다. 신라시대 때부터 속리산으로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여기도 속설이 하나 있는데 3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두 번 올랐으니 극락 가려면 한번 더 올라야 하나. 속리산의 주 능선 남북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간다. 남쪽 대간 중에서는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곳이다. 큰 암봉이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帶)라고 했던 문장대(文藏臺)는 조선 세조가 요양 차 왔다가 이 곳에 올라와서 오륜 삼강(五倫三綱)을 명시한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문장대(해발 1,054m)는 속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이다. 여기서부터 속리산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해발 1058m)까지 3.2킬로미터의 능선으로 이어져있다. 1,000미터를 오르내리지만 완만한 경사라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걷고 있는데 60대 할머니 한 분이 가볍게 걷는 것을 보고 이 구간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걷겠다고 나선 우리들의 마음을 질책하는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BPL(Backpacking Light), 즉 경량 백패킹의 역사에서 장거리 트레일의 레전드인 게이트우드(Emma Rowena Gatewood, 미국, 1888~1973) 할머니가 떠올랐다. 1955년 67세의 나이로 3,500km의 아팔라치안 트레일을 여성 최초로 종주했다. 스니커즈 운동화에 허름한 보따리를 어깨에 맨 채 말이다. 지금 우리의 장비와 나이를 생각하면 날아다녀야 할 판인데… 대간길에서 만난 그 할머니의 밝고 쾌활한 걸음걸이가 눈에 선하다.
속리산 주능선(문장대에서 천왕봉 조망), 2018 © 추보 구자룡
속리산 천왕봉(남쪽 형제봉 방향), 2018 © 추보 구자룡
문장대에 바로 아래에는 1975년부터 문장대휴게소가 설치되어 등산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했으나 속리산의 생태 복원 차원에서 2008년 철거되어 지금은 등산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토지주와 건물주의 반대로 소송까지 가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에는 통신탑과 송전탑을 철거하여 완전한 제모습을 찾게 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잘한 일 중의 하나다. 그런데 여기서 남쪽으로 1.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신선대휴게소가 있다. 신선대((神仙臺, 해발 1,026미터)에 왜 휴게소가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등산객으로 영업을 하시는 주인께 직접 물어보는 것은 걸례 일 것 같아 질문을 하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짐작이 된다. 아마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휴게소 운영을 했지 않을까. 용상이의 추측이다. 지금의 주인께서 영업을 그만둘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문장대휴게소 철거할 때 왜 신선대휴게소 철거는 논의가 되지 않았을까? 검색을 해보았지만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휴게소에서 주류를 판매하고 테이블에서 마시는 그곳 앞쪽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산행시 음주를 금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도 동동주 한 사발에 도토리전으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백두대간의 여러 구간 중에서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 설악산 등에는 대피소가 설치되어 있다. 조난과 당일 산행이 어려운 구간을 대비하고 대피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속리산 역시 종주산행을 고려한다면 대피소 하나 정도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필요성과 아울러 만약 필요하다면 그 지점이 어디여야 하느냐는 논란이 될 것이다. 신선대는 원래 신선이 놀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지 않는가. 이곳에 대피소를 만들면 멋진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현재 생업을 하는 곳에 대해 관계자가 아닌 등산객으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현재의 휴게소는 국립공원에 있어야 할 시설이 아닌 것 같다. 언젠가 논의가 된다면 백두대간 길의 멋진 대피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속리산 신선대 휴게소, 2018 © 추보 구자룡
속리산(俗離山)은 한반도 12종산 중 하나이고, 대한 팔경에 속하고 소금강산, 광명산, 지명산, 미지산, 구봉산, 형제산, 자하산 등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여 구봉산으로 많이 불렸으나 삼국시대부터 속리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766년 진표율사가 구봉산에 들어가기 위해 보은에 이르렀을 때 들판에서 밭갈이하던 소들이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고, 이를 본 농부들이 크게 감화되어 스스로 낫으로 머리를 자르고 '세속을 떠나' 출가하여 진표율사의 제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세속(俗)을 떠나(離) 이곳(山)으로 들어오니 그 후로 사람들이 이 산을 '속리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조선 선조 때의 시인 백호 임제는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離俗 俗離山)라는 시구를 썼다고 한다.
사람이 산을 떠나 세속을 이루든, 세속이 산을 떠나든,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속리산으로 평일(월요일) 이른 시간에 찾아갔는데 이곳에도 사람들로 넘쳐났다. 주말에 등산객들이 많을 것 같아 또 여러 일정 조율이 되지 않아 평일에 찾았는데 역시 대한민국은 등산 공화국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40대 여성들이 많다는 점에 또한 놀랐다. 대부분 문장대만 등정한 사람들로 보였다. 법주사나 화북지구의 단풍구경과 문장대 산행은 하루 일정으로 멋진 계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가지고 간 원터치 전투식량을 옆 자리의 중년 여성들에게 자랑도 하고, 또 다른 옆 자리의 등산객들로부터 커피 타 먹을 뜨거운 물을 조금 얻기도 하고 아직 산중 인심은 좋았다. 속리산은 그렇게 사람들을 품어주었다.
속리산 장각계곡, 2018 © 추보 구자룡
백두대간을 다니면서 먼 거리를 가는 방법 중 하나가 백패킹을 하는 것이다. 국립공원이 아니 곳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야영할 수 있는 그런 곳들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법의 경계에서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체력과 안전 문제로 그리고 여가활동으로 이용하고 있다. 속리산은 백패킹을 하기 어려운 곳이다. 또 12킬로미터의 장거리와 암릉구간이 있어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갈 수 없기에 종주구간을 통과하여 하산한 후 산 밑에 있는 야영장에서 캠핑을 하기로 결정했다. 실은 이틀 전 주말에 이곳에서 많은 동료들이 캠핑을 했었다. 우리는 이 캠핑에 참석할 수 없었기에 같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차량으로 가기에 캠핑 장비를 챙겼다. 화로대와 숯, 장작만 있으면 멋진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이미 어두워져서 경치는 볼 수 없었지만 바로 옆에 냇가가 있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단풍이 있었으니 선경이 따로 없었다. 겨울 대비를 철저히 했는데 전날과 달리 바람이 없고 따뜻해서 밤을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늘의 캠핑 요리사는 용상이. 화로대에서 노릿 노릿하게 익은 돼지 목살 바비큐를 안주 삼아 세월을 보냈다. 경화가 준비해온 반찬으로 저녁과 아침 식사를 하고 겨울 지리산 종주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했다.
상주문장대야영장(저녁), 2018 © 추보 구자룡
상주문장대야영장(아침), 2018 © 추보 구자룡